카페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인생이 무엇인지 이야기했고, 쓰고 그렸으며 음악을 즐겼다. 그래서 카페는 탄생한 이후 줄곧 문화의 발상지였다. 굵직한 자취를 남긴 예술가들이 사랑한 카페를 소개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카페 토르토니’

카페 토르토니 전경 by. Miguel Vieira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1858년에 문을 연 카페 토르토니(Cafe Tortoni)가 있다. 이곳은 19세기 양식으로 꾸민 인테리어를 온전히 간직했다. 수많은 예술가가 이 카페의 단골이었는데, 특히 탱고 뮤지션이자 배우였던 카를로스 가르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인 알폰시나 스토르니 등이 자주 찾았다. 이를 증명하듯 카페 안에는 보르헤스를 닮은 밀랍인형과 알폰시나 스토르니를 기리는 작은 무대 ‘알폰시나 홀’이 있다. 알폰시나 홀에선 밤마다 탱고 공연이 벌어져 남미의 정취를 더한다. 낯선 땅에 도착한 프랑스 이민자가 연 카페 토르토니, 유럽과 남미 문화가 뒤섞인 이곳이 예술가에게 어떤 영감이 되어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알폰시나 홀 모습, 이미지 출처 ‘viajeras’ 

카페 토르토니 홈페이지 

 

 

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

이미지 출처 ‘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720년 개업한 카페 플로리안(Cafe Florian). 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 만큼 이곳을 찾은 예술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조르주 상드 등 문인은 물론 루소, 스탕달과 같은 철학자, 바그너, 리스트, 모네 등 음악가와 화가까지, 분야를 막론한 예술가들이 카페 플로리안에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예술과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곳을 거쳐 갔을 것만 같다.
최근 카페 플로리안에 방문한 자들은 이곳이 다른 카페보다 메뉴 가격대는 높지만, 품은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평을 내놓는다. 비싼 커피 가격은 300년 동안 이어져 오는 역사에 발자국 하나 찍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카페 플로리안 메뉴 ‘Colazione Casanova’ 이미지 출처 ‘Aussie in France’ 

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파리 ‘카페 드 플로르’

카페 드 플로르 외관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1880년대 오픈했다. 파리는 카페의 도시라 불릴 만큼 유서 깊은 카페가 많은데, 카페 드 플로르는 그중에서도 좀 더 젊고 분방한 곳이었다. 메뉴 가격이 저렴했던 카페 드 플로르는 누벨바그 영화감독과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이 카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사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계약 결혼으로 맺은 부부였던 두 사람은 카페 드 플로르를 작업실 겸 응접실처럼 이용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이곳에서 집필하고 친구들과 토론했다. 거의 온종일을 카페 드 플로르에서 보냈다고 하니, 두 사람에게 이 카페가 어떤 의미였을지 가늠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헤밍웨이, 기욤 아폴리네르, 피카소, 에디트 피아프 등 여러 예술가가 카페 드 플로르에서 시절을 풍미했다. 예술가는 떠났지만 그들이 잠시 머문 공간은 남았다. 그곳을 찾아 예술가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일은 평범한 자가 누릴 기쁨이겠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카페 드 플로르에서
이미지 출처 ‘tripadvisor’ 

카페 드 플로르 홈페이지 

 

 

서울 ‘학림다방’

학림다방 내부 이미지 출처 ‘학림다방’ 홈페이지


가까운 곳엔 학림이 있다. 1956년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서 개업한 학림다방, 그 이름은 문리대 축제 ‘학림제’에서 따왔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학림다방은 한국 근현대를 제대로 목격한 장소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학림에 모여 민주화운동을 계획했고, 전혜린, 천상병, 이청준, 김승옥, 황지우 등 여러 문인은 학림을 아지트로 삼았다. 황지우는 <활엽수림에서>라는 시에 학림다방 이야기를 담았으며, 문학평론가 황동일은 아예 이곳만을 위한 글을 쓰기도 했다.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학림다방은 여전하지만 또 새롭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 지금 유행과는 거리가 먼 테이블과 찻잔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50년 전 서울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여느 카페보다 훌륭한 커피 맛과 잘 갖춰진 주전부리 리스트를 보고 있자면, 학림다방이 시대와 함께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서울에 이러한 공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때때로 위안으로 다가온다.

학림다방의 치즈케이크와 레귤러 커피 한 잔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서간 서성거리고 있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학림에 대한 이러한 느낌을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중략)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

- 문학평론가 황동일의 글 발췌

학림다방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via ‘Indepen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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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