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화제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었다.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총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이 작품에서 샐리 호킨스는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 ‘엘라이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샐리 호킨스가 그간 작품 속에서 맡아온 역할은 길거리에서 거칠게 자란 하녀(<핑거스미스>)이거나, 특출난 것 없는 평범한 동생(<블루 재스민>), 류머티즘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저는 화가(<내 사랑>) 등 어쩐지 결핍되고 불완전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어딘가 그늘지고 유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고 꼿꼿한 내면을 소유한 작품 속 캐릭터들은 매번 샐리 호킨스의 섬세한 연기와 완벽히 동화하며 관객들에게 쉬이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 왔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개봉과 함께, 샐리 호킨스의 연기가 빛나는 전작들을 몇 편 꼽아보았다.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ㅣ2008ㅣ감독 마이크 리ㅣ출연 샐리 호킨스, 에디 마산, 엘리어트 코원

샐리 호킨스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상을 안겨준 영화 <해피 고 럭키>. 그가 연기한 ‘포피’는 긍정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서른 살의 교사다. 포피의 특기는 낯선 이에게 끊임없이 말 걸기, 안 좋은 상황이 와도 쿨하게 넘겨 버리기, 주말이면 밤새 클럽에서 놀기 등. 여기서 느껴지듯 포피는 그야말로 대책 없이 밝고 즐거운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의 이런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인 마인드와 쓸데없는 오지랖은 되레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불편함을 주기도 하는데, 포피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주변인들과 빚어지는 충돌을 통해 관객은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샐리 호킨스는 이 희한하고도 유별난 여주인공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그해 골든글로브, LA비평가협회상, 뉴욕비평가협회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전미비평가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ㅣ2013ㅣ감독 우디 앨런ㅣ출연 케이트 블란쳇, 알렉 볼드윈, 샐리 호킨스

상위 1%의 화려한 삶을 살던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하루아침에 이혼과 파산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여동생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뉴욕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명품숍 하나 없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으로, 극과 극의 생활을 하게 된 재스민은 모든 상황이 낯설고 암담하기만 하다. 영화는 재스민의 화려했던 과거와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며 허영으로 가득 찬 그의 밑바닥 인생을 집요하게 비춘다. 샐리 호킨스는 ‘유전자가 좋은’ 언니와 달리, 특출난 건 없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즐기는 동생 ‘진저’로 분해 인간적이고 공감 가는 연기를 펼쳤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언니의 대조군이 되기 위해 설계된 듯한 이 캐릭터는 영화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생동감과 입체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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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Maudieㅣ2016ㅣ감독 에이슬링 월쉬ㅣ출연 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최고의 ‘나이브 아트’ 화가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의 운명 같은 사랑과 가난하지만 찬란했던 화가로서의 삶을 다룬 실화 영화. 생선과 장작을 팔며 외로운 삶을 살던 ‘에버렛’(에단 호크)이 사랑스러운 여인 '모드'를 만나 서로를 길들이고 또 물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샐리 호킨스는 가족들의 구속과도 같은 보살핌을 벗어나 에버렛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그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 모드를 연기했다. 류머티즘 관절염 때문에 등이 굽고 다리를 저는 등 몸은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꼿꼿하고 강인한 내면을 지닌 모드의 모습은 샐리 호킨스가 아니고서는 그토록 리얼하고 감동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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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ㅣ2017ㅣ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ㅣ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리차드 젠킨스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구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과열된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야간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는 수조에 갇힌 괴생명체에게 묘한 호감을 느낀다. 함께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러나 실험실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괴생명체를 해부해 우주개발에 이용하려 하고, 엘라이자는 그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 ‘엘라이자’ 역을 맡은 샐리 호킨스의 열연. 그는 한마디 대사도 없이 작은 표현이나 몸짓, 침묵의 분위기로 많은 감정을 전달하며, 외롭고 힘없는 여성에서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는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엘라이자의 여정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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