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선과 선원들(왼쪽부터 장도혁(퍼커션), 단편선(보컬, 기타) 최우영(베이스), 장수현(바이올린))과 공연장에서의 단편선

클래식, 집시 음악, 포크 팝 등을 한데 모아 이른바 사이키델릭 포크 록을 하는 실험적 집단 ‘단편선과 선원들’. ‘회기동 단편선’이라 불리는 선장과 같은 배에 탑승한 세 명의 선원 장도혁(퍼커션), 최우영(베이스), 장수현(바이올린)이 모여 단편선과 선원들이 됐다. 2013년부터 활발히 노를 저어온 이들은 전에 없던 파격적이고 격렬한 음악으로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긴다. 그 충격은 예상치 못한 것을 경험했을 때의 당혹감으로 시작해 이내 흥분, 감격, 놀라움 같은 감정적 전율로 이어진다. 이들의 음악을 정확히 묘사하려면 독특한 단어들이 가감없이 이어질 것이다. 특히 선장 단편선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긴 머리칼을 허리춤까지 늘어트린 채 맨발로 무대에 선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전방위한 감정을 말로 풀어내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사람들은 그 형용할 수 없는 마력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이렇듯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전방위한 이미지를 지닌 단편선은 스스로도 ‘잡식성 음악가’라 칭하며 온갖 전방위한 음악을 보내왔지만, 그가 이것들을 함부로 고르지 않았음을 안다. 그 선곡들에 한가지 주제로 포획할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즐거운 음악과 길게 덧붙인 글로써 음악가의 열정을 정성스레 증명하고 있으니까.

 Danpyunsun Says,

“오랫동안 음악에 관한 글을 써왔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로는, 그것을 대부분 그만두었다. 타인의 음악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간만에 음악에 관한 글을 써보니 역시 부끄럽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특히 밴드 음악은 레코딩에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이후에 바꿀 수 있는 게 제한된다는 뜻이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수월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글에 관해서는, 그런 판단이 아직 없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나의 수준 때문이지만, 한편으론 음악보다 글이라는 형식이 더욱 비물리적이며, 관념적인 탓도 있다 생각한다. 관념은 한없이 가벼워 쉽게 날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훨씬 더 무겁게 사람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신시사이저, 그리고 샘플링이 보편화한 현대의 음악은 이전 세대의 것과 비교해 훨씬 비물리적이며, 관념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드럼머신의 반복적인 비트를 들으며 여전히 물리적이고 동물적인 울림을 느끼지 않는가?)

6곡을 골랐고, 딴에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진 선곡이지만, 그 일관성을 부러 드러내려 하진 않았다.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혹여 글로서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지만 않았으면 한다.”

 

1. D.D Dumbo ‘Satan’ MV (2016)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올리버 휴 페리(Oliver Hugh Perry)의 1인 프로젝트, 디디 덤보(D.D Dumbo)의 데뷔 앨범 <Utopia Defeated>에 실린 싱글. 나는 '동시대성'이 느껴지는 이 싱글을 좋아한다. “음악적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해낼 것인가?”는 근대 이후의 아티스트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 특히 유튜브, 스포티파이 같은 도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 모든 시점의 음악과 접속할 수 있게 된 현대의 청취 환경을 고려할 때, 그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의 네트워크 환경이란 기본적으로 무시간성, 무국적성, 무지역성을 특질로 가진다. 따라서 공간과 시점에 따른 차이는 전보다 줄어들게 되며, 그것은 일견 자유를 증진하지만 한편 차별화의 어려움을 가져오게도 한다.)

디디 덤보는, 그러한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요인을 통제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재능을 가진 음악가다. 디디 덤보의 세계에는 첫째로, 이전의 토킹 헤즈(Talking Heads)가 그랬듯 1세계 외부의 음악적 요소들을 스펀지 같이 빨아들여 솜씨 좋게 녹여내는 자유분방함이 있으며, 둘째로 옛 사이키델릭 록에서부터 신스팝과 디스코까지, 레트로한 장르들의 클리셰를 명민하게 활용함으로 얻어지는 친숙함과 안정감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즐거운 절충주의. (친숙함 또는 익숙함이란 종종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로서 기능하지만, 팝 음악에선 아주 중요한 가치. 일단 익숙함이 없다면 팝 음악 자체가 성립되질 않는다.)

 

2. Ennio Morricone ‘Metti una Sera a Cena’ Live (1969)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오랜 팬으로서, 'very best of' 같은 방식으로 그의 대놓고 거장다운 음악들만 주로 소비된다는 건 아무래도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초기부터 죽 훑으면 아방가르드부터 소울, 심지어는 록까지 건드리지 않은 음악이 없을 정도인데, 그중 오늘의 선곡은 엔니오 모리꼬네 식 이지리스닝의 정수인 ‘Metti una Sera a Cena’, 한국어론 ‘어느 날, 저녁의 만찬’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 OST다.

이지리스닝 계열의 곡들이 그렇듯, 이 곡은 혁신적이거나 인상적인 아이디어들로 가득하기보다는 아름답고 단아한 음악의 정경을 차분하게 들려주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피아노가 제시한 하나의 동기(motif)가 점차 발전하여 이내 관현악과 함께 장관을 이뤄내는 광경을 맞이할 때 밀려오는 그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한 감정이란 음악의 손을 꼭 붙잡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을 정도다. '만찬'이란 제목에 이리 어울리는 곡이 얼마나 더 있을까.

비디오는 1969년의 오리지널 대신 2004년 엔니오 모리꼬네의 뮌헨 콘서트 실황을 담은 DVD <Morricone Conducts Morricone>의 것. 레스 백스터(Les Baxter)나 에스퀴벨(Esquivel) 풍의 스페이스 에이지 팝 색깔이 짙은 오리지널보다 더욱 경쾌한 사운드로 레코딩되었다. (오리지널은 오리지널 나름의 맛이 또한 훌륭하다. 특히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련한 스캣에 귀 기울일 것.) 악기들을 연주하는 모습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들으면 그 역시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다.

 

3. Minutemen ‘This Ain't No Picnic’ MV (1984)

이 심플한 2분짜리 펑크록의 우월함은, 베트남전이건 노동자 계급이건 무엇이건 배경지식 하나 없어도 그냥 듣고 비디오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와 그들의 태도,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데서 비롯한다. ("이건 소풍 따위가 아니야!!!"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는 가운데 분노로 가득 차 꽉 쥔 주먹을 허공으로 연거푸 날려대는 기타리스트를 보라.)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음악은 무엇일까? 물론 펑크록이다. 음악으로서건, 스타일로서건, 태도로서건, 한국에는 펑크가 너무나도 적다. 펑크록 레전드이자 포스트-하드코어, 포스트-펑크의 발판을 마련한 밴드 중 하나인 미닛멘(Minutemen)의 이 음악이 멋지게 느껴진다면 ‘This Ain't No Picnic’을 수록한 더블 앨범 <Double Nickels on the Dime>을 발매하기 1년 전에 낸 EP <Buzz or Howl Under the Influence of Heat>도 꼭 들어봤으면 하는 바람. 15분 동안의 ‘대미친’ 펑크록이 말 그대로 쏟아진다.

 

4. The Knife ‘Without You My Life Would Be Boring’ MV (Shaken-Up Version) (2014)

얼마 전 화제였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프로모션 비디오. 국비 2억 7천만 원을 지출해 만든 결과물이 그 꼴이라는 데 모두 경악했으나 아마 배로 예산을 투입했어도 더 낫진 않았을 것. 일단 결재권자의 '미감'이 문제인 탓이다. 하지만 비디오에 대한 비판 중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춤을 추게 된다'는 내러티브가 유치하다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음악이 주술로서 기능해 군중을 집단적 환락으로 이끈다는 식의 내러티브는 오래된 음악의 원형적 서사 중 하나인 까닭이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

스웨덴의 일렉트로닉 듀오 더 나이프(The Knife)의 2013년 앨범 <Shaking the Habitual>에 수록한 ‘Without You My Life Would Be Boring’을 투어에 맞춰 리메이크한 버전에 따라붙은 이 비디오는, 그런 원형적 서사를 현대적으로 잘 풀어낸 작업 중 하나다. 굳이 장황한 설명 없이도 잘 짜인 미술이 개별 인물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들이 다양한 인종과 성별, 계급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눈에 특히 띈다. (이런 스타일의 비디오가 특이하진 않을지 몰라도, 나는 한국에서 이와 같은 비디오가 나올 것이라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물론 노골적으로 국제주의를 외치고 있는 듯한 더 나이프의 음악적 비전과도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5. Françise Hardy ‘Viens’ MV (1972)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오래 고민하고 결국 답하지 못하겠지만, 프렌치 팝 앨범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ise Hardy)의 <La Question>이라 답할 것이다. 이 앨범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혼자 독점한 듯한 고결함과 고고함을 품은 레전드 싱어,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공인 베스트. ‘Viens’는 이 앨범의 첫 트랙이다.

"오라(viens). 배처럼 항구로 오라. 떠나고 싶다면, 당신은 어디서부터 떠나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오라. 나의 심장은 항상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나는 자주 불타올랐으나, 고통을 겁내진 않는다."

"오라"라는 구절로, 예의 처연하면서도 품위 있는 목소리의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노래를 시작할 때, 그 단호하면서도 환하게 빛나는 감정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음악에도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비디오. 시대의 한계를 감안한다 해도 조금 심한 수준. 게다가 1970년대면 이미 프렌치 뉴웨이브 한창때인데 시대의 한계를 굳이 감안해야 하나 생각도 들고. (결국은 비디오 제작이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바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MTV 시대 이전과 이후를 보자면, 그러니까 마돈나(Madonna)가 큰일 낸 게 정말로 맞다.)

Francoise  Hardy 'Viens' MV

 

6. Otomo Yoshihide ‘ENSEMBLES parade 2009’ 퍼레이드 영상 (2009)

작곡가이자 턴테이블을 비롯한 각종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 공연기획자이자 활동가, 그리고… 일본의 음악가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의 커리어를 한 줄로 간결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게 느껴진다. 아방가르드 록 밴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의 리더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외 수많은 프로젝트로도 독특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2003년에는 한국 프리재즈 계의 거성 박재천, 미연과 <Loose Community>를 작업하기도 했다.)

‘ENSEMBLES parade’는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업 중 하나. 퍼레이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일본 이바라키 현에서 활동하는 여러 그룹이 각자 출발해 거리행진을 하며 미토 아트센터로 결집, 다 같이 모여 오토모 요시히데의 지휘(?)를 각자 마음대로 해석해 내고 싶은 소리를 낸다. 최소한의 룰만을 공유한 채 마음대로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화성이나 박자, 선율 같은 근현대 서양음악의 기초질서는 지켜질 리 만무하고, 대신 덩어리진 소음들이 미토 아트센터 앞 공원을 가득 메운다.

이 퍼레이드는 물론 현대음악의 한 형태로 해석될 것이며, 해체(deconstruction)나 재전유(re-appropriation) 같은 친숙하지 않은 용어로 가득한 비평을 적어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엘리트주의적이기보다는 아마추어적이고,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표정에 웃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요새는 드물게만 존재하는 천진난만함 같은 것일 테다. 포퓰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겠으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음악의 오래된 기능 중 하나다. 그것을 오토모 요시히데는 소음으로 해내고 있다. 소음이 공원 안 모든 이의 기쁨을 끌어내는 순간, 이 음악은 아름다움으로 수렴된다.

▲ Part 1 
▲ Part 2

 

음악가 단편선은?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회기동에 있는 대학에 다녔다. 2006년부터 ‘회기동 단편선’이라는 1인 포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장수현(바이올린), 최우영(베이스), 장도혁(퍼커션)과 함께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2014년 발표한 정규 1집 <동물>로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 12월 디지털 싱글 <국가>를 발표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그밖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의 생활협동조합인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영위원을 역임했고, 음악과 함께 다양한 글을 쓰며 전방위 활동 중이다.

▲ 단편선과 선원들 ‘국가(National Anthem)’ MV

단편선과 선원들 홈페이지 [바로가기] 

단편선과 선원들 페이스북 [바로가기]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