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 아픈 죽음과 부조리의 소식을 들어야 하는 세상. 그 속에서도 항상 ‘더 나은 것’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힘내, 행복은 마음속에 있어”라는 위로는 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모든 것이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건져 올린 시니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덕목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위로일지도 모를 테니.

 

산다는 것은, 역시 산 사람과 싸운다는 것

아포칼립스에서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멸망한다. 그것은 자연재해, 핵전쟁,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한 육체의 파괴 혹은 변형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다룬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정작 이겨내야 하는 것은 재해,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리마스터링 버전 커버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유저들에게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으라는 미션을 부과한다. 하지만 게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유저가 결국 싸워야 하는 것은 좀비(여기서는 감염자)가 아닌 사람이 된다. 이 점은 게임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의 딸을 죽이는 자는 그들이 필사적으로 피해 도망쳤던 좀비가 아닌 무장한 군인이었던 것. 이 게임에는 방대한 러닝타임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살아남은 다른 이들과의 디테일한 전쟁이 포함되어 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프롤로그, 관련 장면은 5:06부터 등장한다

이 공식은 좀비 영화의 원조 격인 영화 <28일 후>에도 적용된다. 살아남은 주인공 짐과 셀레나, 그리고 소녀 해나에게 봉착한 가장 끔찍한 사태는 좀비의 습격이 아니다. 무장 군인들이 여성을 성 노리개로 삼기 위해 감금하고, 짐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 <28일 후> 오프닝 몽타주

이 메시지는 영화의 오프닝 몽타주에서 아주 확실하게 나타나는데, 실제 여러 나라에서 자행된 광기 어린 폭력 장면이 컷 바이 컷으로 넘어간다. 놀랍게도 그 안엔 우리나라 경찰이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도 있다. 픽션으로 구성된 아포칼립스는 사실 현실 세계의 단면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픽션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극한 절망과 슬픔은 우리가 현실에서 충분히 겪고 있는 것들이다. 네이버 웹툰 <하이브>, 벌레들이 점령한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이과장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에겐 회사에 출근하는 것과 벌레 굴에 들어가는 게 별로 다른 일이 아니야.”

우리 사회는 특히 ‘인간관계’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약하다는 딱지를 붙이길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의 혀와 눈, 그리고 손은 어쩌면 좀비의 그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잔인할지 모른다. 우리가 대항하는 이가 직장 상사든 부모님이든 학급 친구든지 간에 상관없이, 관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하지 말자. 쓰러졌다고 해서 비난하지 말자. 나약해서가 아니다.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는 필요 없다

우리는 “삶에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병든 사람들을 보며,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고통을 우리의 감사로 바꾸는 잔인한 방법을 줄곧 배워 온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회한은 감사할 줄 모르는 ‘투덜거림’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삶은 감사와 동정이 아닌, 오직 연대로 이루어진다.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로 돌아와 보자. 딸을 잃고 살아가는 주인공 조엘에게 살아있음은 지옥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소녀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동료로서 그 지옥을 함께한다. 처음 그가 엘리에게 느끼는 감정은 죽은 딸로부터 이어지는 부성애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연대감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남는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 보내고 온갖 부조리를 목격하며 살아남는 시대, 어떻게 남겨진 삶에 ‘감사’할 수 있을까. 오로지 매 순간을 연대하고 의지하여 버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큰 덕목이자 목적이 된다.

<더 로드> 스틸컷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삶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영화 <더 로드>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의 나열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 신에서 우리는 감독이 남기는 일말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아버지가 죽고 홀로 남은 아들을 도와주는 이들에게는 딱히 이렇다 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이 부자를 끝까지 쫓아왔고, 왜 이 소년을 도와주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엄청난 동기 없이도 이들은 단지 산 사람에 대한 연대만으로 다시 걸어 나간다. 함께 살아있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더 로드> 엔딩 신

이 세계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행복해야만, 이유가 있어야만, 감사할 수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삶에는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다는 것.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질긴 연대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희망과 사랑이 피어오른다는 것을 전해온다. 결국 아포칼립스는 재앙과 두려움, 분노와 죽음을 통해 삶 자체로 회귀하며 우리를 시니컬하게 위로한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충분하길 바란다고.

 

메인 이미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