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예술이 존재하는 한, 그 한계는 언제나 ‘그 이상의 것’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여기, 말을 걸지 않기에 더욱 고마운 음악들이 있다. 언어로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선율로 담아 선물해주는 음악이 있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부디 인생에 단 몇 분의 시간을 내어 귀를 열어주길, 무릎 꿇고 간청하고 싶은 그런 음악이 있다. 언어, 그 이상의 것을 담은 포스트 록 연주곡들을 소개한다.

사실 말은 이렇게 비장하게 했으나 포스트 록 연주곡들을 소개하는 것은 굉장히 버거운 일이다. 오로지 그 느낌만을 온갖 형용사를 통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몬 레이널즈는 ‘기타를 음색과 질감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는 음악’이라는 학술적인 말로 이 곡들을 설명했다. 그냥 설명 따위 옆에 비껴두고 바로 귓구멍에 대고 음악부터 들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으니 고민을 이어가다가, 다소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이 음악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것보다는 항상 이미지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통칭 ‘속옷밴드’의 공연장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의 음악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친구가 단순히 선율만 듣고 그 제목을 정확하게 맞추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는 “한 곡이 왜 이렇게 길어?”라고 물을 만큼 (속옷밴드는 공연에서 멘트를 거의 하지 않고, 뒤돌아 앉은 채, 묵묵히 연달아 몇 곡씩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음악에 대해 ‘1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곡의 제목을 맞춘 것에 제법 우쭐해 하며, 그 음악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이미지가 나를 때리는 것 같아!”

그렇다. 속옷밴드의 음악을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미지적 묘사가 필요하다. 그들의 음악은 선명하다. 선율은 선명한 색깔이 되고, 모양이 되어 다가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을 들음과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선율은 언어라기보다는 이미지가 되어 더욱 깊은 음악의 맛을 선사한다.
층층이 쌓여가는 기타 사운드, 그리고 ‘이게 기타 소리란 말이야?’라고 생각할 만큼 다양하고 독특한 연주들이 모양으로 변형되어 새로운 감각을 전달한다. 분명 음악을 재생했는데, 스토리가 있는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경험이 틀림없다.

속옷밴드 ‘폭우’

이 글에서 소개하는 ‘폭우’라는 음악은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곡이다. 여기에는 짧게 보컬 사운드가 들어가는데, 사람의 목소리조차 하나의 음이 되어 어우러지는 서늘한 기괴함에 몸이 떨려온다. 비에 젖은 옷을 말리지 못한 채 어두운 침실에 누워있는 그런 모습과 감각이 떠오른다.

 

왕원

속옷밴드의 음악이 통렬한 감각으로 이미지를 전달해주는 쪽에 가깝다면, 차이니즈 슈게이징의 대표라고도 불릴 수 있는 밴드, 왕원(惘闻, Wang Wen)의 음악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왕원의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팬들은 이를 가지고 ‘배려하는 음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들의 곡을 듣다 보면 그것이 굉장히 일리 있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왕원 ‘Lonely God’


왕원의 ‘Lonely God’이라는 곡을 들어보자. 이미지, 감정, 느낌을 일방향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맞추어 선율을 해석하게끔 만든다. 누군가는 이 음악을 듣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가장 행복했던 학창 시절을, 누군가는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있자면 내가 기억하는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다른 의미로 아름답고 운명적이다.
가사 있는 음악이 다소 직선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공감을 깊게 끌어낸다면, 이러한 연주곡들은 폭넓은 경험을 포용함으로써 공감보다는 ‘영감의 감각’을 완성해낸다.

 

노 리스펙트 포 뷰티

노 리스펙트 포 뷰티 ‘I am a shadow’


이쯤에서, No respect for beauty의 ‘I am a shadow’란 곡을 소개한다. ‘서정적이면서 회화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이 곡은 9분 남짓한 러닝타임동안 여러 음악적 변화구를 만들어내고, 마지막 5분에 가서는 모아두었던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그것은 세포를 깨워주는 황홀경에 가까우며, 듣고 있는 리스너들을 영감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이 곡은 폭발적인 이미지와 함께 선율이 온몸 구석구석을 강하게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다시 한 번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본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면, 언어 이상의 것이 되어주는 것들은 곧 세계의 한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영감의 영역이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사운드는 결코 하나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의 깊이, 경험의 깊이로 우리를 이끌어내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지평을 한 뼘 더 늘려준다.
그래서 여기, 기타의 선율만으로 더욱 통각적이고 더욱 서정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음악들을 펼쳐보았다. 직접적으로 닿는 음성이나 시각적 연출이 더 이상 위로로 다가오지 않고 버겁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다면, 이 음악들이 ‘말’없이 건네는 뜨거운 키스를 받아보시길.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