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동부의 비밥(Bebop)이 융성할 때 캘리포니아에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있었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는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자연환경을 반영하듯 가볍고 경쾌한 스타일의 재즈였고, 스탄 게츠, 쳇 베이커, 제리 멀리건, 스탄 켄튼과 같은 백인 스타들을 낳았다. 1950~60년대 성황을 이루었던 재즈 클럽, 로스앤젤레스의 ‘Shelly’s Manne-Hole’와 샌프란시스코의 ‘Black Hawk’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 블루 노트, 버드랜드와 같은 재즈 명소들이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에 비하면, 서부 지역의 재즈 열기는 더 빨리 쇠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틀 동안 공연했던 당시의 블랙 호크
재즈 클럽 블랙 호크가 있던 장소는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텐덜로앵 지구(Tenderloin district)에 있던 재즈 명소 블랙 호크(Black Hawk)는 1950년부터 영업을 시작하여 1963년에 문을 닫았으며, 지금은 건물이 다 헐린 채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In Person Friday and Saturday Nights at the Blackhawk>(1961), 몽크의 <At the Blackhawk>(1962)와 같은 라이브 음반들이 이곳에서 녹음되었다. 이제는 2012년에 설치된 기념 동판만이 이 장소가 재즈 명소였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블랙 호크가 있던 자리에 설치된 동판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지역에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음반의 산실이었던 컨템포러리 레코드(Contemporary Records)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컨템포러리의 붙박이 재즈 드러머 셜리 맨(Shelly Manne)이 부근에 재즈 클럽 ‘Shelly’s Manne-Hole’을 열었다. 컨템포러리 레코드의 활동이 1960년대 중후반부터 위축되면서 이 유명한 재즈 클럽은 1974년에 문을 닫았지만 이곳은 할리우드 명사들이 자주 찾던 단골집이었다. 이곳에서 녹음한 유명한 라이브 음반으로는 빌 에반스의 <Shelly’s Manne-Hole>(1963)이 유명하다. 지금은 현대적인 건물로 재건축되어 카후엔가 거리(Cahuenga Boulevard) 도보 위의 기념 동판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재즈 명소 Shelly’s Manne-Hole(1970)
이미지 출처 L.A. Public Library
Shelly’s Manne-Hole이 있던 장소는 재개발되며 사라졌다(2009)
카후엔가 거리 도보의 ‘Shelly’s Manne-Hole’ 기념 동판


두 곳의 재즈 명소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재즈 드러머 셜리 맨은 캘리포니아의 재즈 신을 이끌던 리더였다. 뉴욕 52번가의 인기 스윙 드러머였던 그는, 1950년대 초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부인과 함께 말을 키우는 전원생활에 빠졌다. 딕시랜드, 스윙, 비밥, 아방가르드 등 모든 장르 연주가 가능한 전천후 드러머로 컨템포러리 레코드와 독점 계약하면서 주요 녹음 현장에 참여했다. 그는 재즈 클럽 ‘Shelly’s Manne-Hole’을 운영하면서 전도유망한 뮤지션들을 발굴하여 ‘Shelly Manne and His Men’이라는 콤보 이름의 하우스 밴드로 연주 활동을 펼쳤다.

셜리 맨
TV <Jazz Scene USA>에 출연한 Shelly Manne and His Men


그의 라이브 음반은 재즈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네 장의 LP로 출반된 <At Blackhawk>(1959)와 두 장의 LP로 출반된 <At Manne Hole>(1961)은 최상 평점을 받는 앨범인데, 특히 <At Blackhawk>는 퀸텟 연주의 완결성, 레코딩 테크닉, 레퍼토리의 구성 면에서 재즈 라이브 음반의 걸작이다. 60여 년 전 재즈 클럽 블랙 호크에서 3일 동안 녹음된 실황이지만 마치 당시의 클럽 안에 앉아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최상의 음질을 자랑한다. 2010년에는 4장의 CD로 구성된 <Complete Live at the Black Hawk> 음반으로 재발매된 바 있다.

<At Blackhawk> 1집에 수록한 ‘Blue Daniel’
햄프턴 호스, 레이 브라운 등과 함께 한 실황(1970)
할리우드의 유명 재즈클럽 Manne-Hole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상이다


셜리 맨은 영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드럼 연주나 작곡에 관여한 영화만 해도 1백여 편에 이른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감독 헨리 맨시니와도 자주 일을 하였는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나 <핑크 팬더>에서 그의 퍼커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다방면에서 의욕적인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4년 갑자기 찾아온 심장마비 때문에 6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로스앤젤레스시는 할리우드 예술협의회(Hollywood Art Council)와 함께 그가 사망한 9월 9일을 ‘Shelly Manne Day’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