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의 ‘블랙 팬서’로 유명한 채드윅 보즈먼은 연기 경력이 길거나 많지 않지만, 유난히 ‘최초’라는 타이틀의 인물 혹은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다. ‘블랙 팬서’ 역할만 해도 솔로 무비 주인공으로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초 흑인 슈퍼히어로다. 초창기에는 시나리오 작가, 연극 연출가, 극작가로 출발했고 단지 배우들과의 작업을 잘 이해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지만, 2003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배우로 데뷔하더니 어느새 연기로 인정받는 최고의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최초’와 ‘최고’를 장식했던 그의 연기를 돌아본다.

<블랙 팬서> 스틸컷

 

<42>

42 | 2013 |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 | 출연 해리슨 포드, 존 C. 맥긴리, 채드윅 보즈먼

<더 익스프레스>(2008)에서 이미 미식축구 선수 역을 맡으며 스포츠 선수 연기를 경험한 채드윅 보즈먼은 첫 주연작에서 미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메이저리거로 여겨지는 ‘재키 로빈슨’을 연기하게 된다. 183cm의 훤칠한 키에 다부지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균형 잡힌 체격을 가진 그이기에, 야구뿐만 아니라 미식축구, 농구, 육상, 수영 등 모든 종류의 운동에 뛰어났다는 재키 로빈슨의 이미지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2> 스틸컷

“맞서 싸울 용기도 없는 선수를 원하십니까?”

“아니지. 맞서 싸우지 않을 배짱이 있는 선수를 원해.”

(중략)

“세상에 두 가지를 알리면 우리가 승리하는 거야. 자네가 훌륭한 선수이자 위대한 야구 선수라는 것.”

“제게 유니폼을 주시고 등에 번호를 붙여 주시면 제가 그 배짱을 드리죠.”

영화 <42>, 재키 로빈슨과 그를 영입하려는 야구단 단장 ‘브랜치 릭키’(해리슨 포드)의 대화 중에서


영화의 제목 ‘42’는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그를 연기한 채드윅의 악의 없어 보이는 순수한 표정과 이글거리는 진지한 눈빛은, 미국 역사 흑인 차별이 여전히 법이었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만연해 있던 당대의 인식과 조롱에 맞서고, 실력과 열정으로 자신을 증명한 재키 로빈슨의 인내와 용기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영화 <42> 예고편

 

<마셜>

Marshall | 2017 | 감독 레지날드 허들린 | 출연 채드윅 보즈먼, 댄 스티븐스, 스터링 K. 브라운, 소피아 부시

<마셜>에서는 같은 ‘최초’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인물은 연기했다. 바로 서굿 마샬이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대법원 판사다. 서굿 마샬의 출신지인 볼티모어에서는 인종의 벽을 넘은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을 ‘볼티모어-워싱턴 서굿 마샬 국제공항’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마셜> 스틸컷

이 작품에서 채드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종 문제에 보수적이었던 지역 코네티컷으로 파견된 서굿 마셜의 젊은 변호사 시절을 연기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투옥된 흑인 운전기사의 변호를 맡는다. 채드윅이 블랙 팬서 배역으로 주목을 받았고 <지옥에서 온 전언>(2016)과 같은 액션 스릴러물에도 잘 어울렸기 때문에 액션 장면 없는 그의 연기가 언뜻 생소할 수도 있지만, <갓 오브 이집트>(2016)에서도 지혜의 신 ‘토트’를 연기하는 등 달변과 영리한 엘리트 이미지에도 잘 맞아떨어지는 그이다.

<마셜> 공식 예고편

 

<제임스 브라운>

Get On Up | 2014 | 감독 테이트 테일러 | 출연 채드윅 보즈먼, 데이빗 앤드류 내쉬, 넬슨 엘리스, 비올라 데이비스, 옥타비아 스펜서

채드윅 보즈먼은 급기야 영화 <제임스 브라운>을 통해 전설적인 가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한다. 영화의 원제 ‘Get On Up’은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 속 가사를 차용한 것으로, ‘소울의 대부’라는 이명처럼 깊은 소울은 물론 작금 다양한 블랙뮤직의 모티프를 제공할 정도로 끼와 재능이 넘쳤던 제임스 브라운 특유의 흥이 잘 느껴지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제임스 브라운> 스틸컷

특히나 채드윅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잘 활용해, 평상시 익살맞고 자신감 넘치면서도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와 진지한 열정을 쏟아내는 그만의 제임스 브라운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

<제임스 브라운> 예고편

채드윅 보즈먼이 연기한 제임스 브라운, 재키 로빈슨, 서굿 마샬 등은 하나같이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다. 단순히 대단한 것만이 아닌 인종차별로 얼룩진 미국 역사에 ‘최초 흑인’이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을 안은 이들이다. 물론 우리의 의식,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인종에 대한 분별적인 인식과 차별을 온전히 떨치기 위해, 이와 같은 타이틀은 온전히 역사의 타이틀로만 남겨야 할 것이다. 미국 대중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대부로, ‘최초 흑인’이라는 타이틀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제임스 브라운처럼 채드윅도 곧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로 ‘최고’ 연기들을 잔뜩 이어나가길 기대해본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네이버 파워블로그를 수상했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아주경제>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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