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I Was Shot By Billy Kidd’ 


수려한 외모보다는 개성 있는 얼굴의 배우. 1984년생인 폴 다노(Paul Dano)는 올해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얼굴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진한 순수함이 비친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있는 듯한 선한 부드러움도 녹아 있다. 그러나 정작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는 영화 속에서 주로 ‘루저(loser)’이거나 ‘광인’이었다. 그의 얼굴에 보이던 천진함과 부드러움은 금세 다른 종류의 것이 되고, 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품은 얼굴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2004)의 폴 다노(왼쪽)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2004)에서 그는 방구석 루저 3인방 중 하나인 ‘클릿츠’를 연기하며 너디(nerdy)한 매력을 뽐냈다. 이를 시작으로 <미스 리틀 선샤인>(2006)에서는 파일럿이 될 때까지 묵언을 선언하고 수첩과 펜으로 가족들과 소통하는 아들을,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서는 타락한 종교인 ‘일라이’와 그의 쌍둥이 형제 ‘폴’까지 1인 2역을 소화하며 텅 빈 두 눈에 서늘한 광기를 담아 천재적인 연기를 뽐냈다. 구태의연한 장식을 걷어내고 힘을 뺀 연기가 되려 큰 에너지를 발휘하는 경우, 말하자면 폴 다노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다.

그에게는 ‘지질함’과 함께 ‘맞는 연기의 대가’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유튜브에서 ‘paul dano’를 검색하면 그가 영화에서 맞는 장면만을 골라 짜깁기한 영상 ‘paul dano’s greatest hits’가 나올 정도다. 폴 다노의 맞는 연기는 가엾을 만큼 구차하고도 너절한 인간의 나약함의 표현이지, 으레 영화라는 미명하에 멋들어지게 포장된 액션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Paul Dano’s Greatest Hits
<와일드 라이프> 스틸컷


사실상 <데어 윌 비 블러드>로 큰 주목을 받았던 폴 다노는 이후로도 주조연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그는 올해 <와일드 라이프>라는 작품을 통해 각본가 및 연출가로 데뷔했고 이 작품은 올 초 선댄스영화제에 소개됐다. 이런 그를 보면 폴 다노는 스타가 되는 것에 관심두기 보다, 영화와 연기를 향한 고민을 거듭하는 배우라는 확신이 든다. 그의 관심은 주로 호감을 주지 못하는, 멋도 없고, 한심하거나, 결핍이 비이성으로 촉발된, 이상한 인물에 향해 있다. 이런 캐릭터들에 끌리는 그의 작품선택 기준도, 그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싶은 감독으로의 열망도 모두 그의 깊은 고민이 남긴 행보가 아닐지. 루저와 광인 사이를 오갔던 배우 폴 다노의 몇 가지 작품을 소개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2006) 

<미스 리틀 선샤인> 스틸컷


괴짜 대학 강사 ‘리차드’(그렉 키니어), 이 주째 같은 저녁 메뉴를 준비하는 ‘쉐릴’(토니 콜레트),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앨런 아킨),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 묵언 수행을 선언한 아들 ‘드웨인’(폴 다노), 게이 애인에게 차여 자살을 기도했던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 통통한 몸매지만 미인대회 출전에 분주한 7살 막내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까지.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버스에 탑승해 여정을 떠난다. 서툴기 짝이 없고 정상적이지 않은 각자가 모여 이상한 가족의 조화를 보여줄 때,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 중 버스 신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데어 윌 비 블러드> 스틸컷


지독한 알콜 중독자에 무일푼의 광부 ‘다니엘’(다니엘 데이 루이스)은 어느 날 석유 유전을 발견하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이 꿈은 탐욕과 폭력으로 바뀌고, 교회를 앞장세운 주민들과 대결하게 된다. 폴 다노는 동네 사람들을 홀리는 종교인 역을 맡아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호연을 펼친다. 특히 집회 설교 신(scene)과 볼링장의 구타 장면에서 폭발하는 광기는 유명하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밀도 높은 연기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집요한 연출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21세기의 클래식으로 남을 걸작이 되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교회 신

 

 

<프리즈너스>(2013) 

<프리즈너스> 스틸컷


어느 날 ‘켈러’(휴 잭맨)의 딸이 사라지고 곧 유력한 용의자 ‘알렉스’(폴 다노)가 붙잡힌다. 그러나 용의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용의자를 의심하는 켈러와 제3의 범인을 찾아가는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의 추적이 시작된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등 작년 한 해 중요한 감독으로 급부상한 드니 빌뇌브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서늘한 긴장을 긴 러닝타임에 촘촘히 쌓아 올린 서스펜스 속 세 배우의 연기에 주목할 만하다. 폴 다노는 이 작품에서 휴 잭맨의 ‘용의자’로 찍히면서 고문을 당하는 괴로운 연기를 펼쳤다.
 

로키에게 추궁당하는 알렉스

 

 

<스위스 아미 맨>(2016) 

<스위스 아미 맨> 스틸컷

 
‘행크’(폴 다노)는 무인도에 표류하며 집에 돌아갈 모든 희망을 잃었다. 하지만 어느 날 ‘매니’(다니엘 래드클리프)라는 이름의 시체가 해변으로 떠밀려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둘은 빠른 속도로 친구가 되고 무인도의 삶은 ‘만능 매니’로 인해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이 영화는 서사적으로 거의 모든 클리셰들을 빗겨가며 유일무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시체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뿐 말도 하고 맥가이버 칼처럼 온갖 기능을 수행한다. 이 영화에 즐비한 엉뚱한 유머 중에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방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드러나 있다. <스위스 아미 맨>의 폴 다노는 자존감이 결여된 인간의 성장을 그려내며 종국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스위스 아미 맨> 트레일러

 

 

Writer

예측 불가능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을 닮은 영화를 사랑한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지금에 도착한 필자가 납득하는 유일한 진리는 '영영 모를 삶'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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