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와 숫자들. 왼쪽부터 송재경(9, 보컬), 유정목(0, 기타), 꿀버섯(4, 베이스), 유병덕(3, 드럼)

리더이자 보컬 ‘9’를 중심으로 ‘0’부터 ‘8’까지의 다른 숫자들이 더해지고 빠지는 동안, ‘9와 숫자들’은 인디 음악계에 하나의 독자적인 등식이 됐다. 포크, 록, 신스 팝 같은 장르 규정이 불필요한 멜로디를 만들고 깊고 진한 메시지를 더해온 결과다. 그렇게 데뷔 앨범 <9와 숫자들>부터 <유예>, <보물섬>으로 이어진 이들의 음악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평단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바라던 상(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도 거머쥐었다. 2집 이후 꼭 2년 만에 발표한 정규 3집 <수렴과 발산>은 그동안 꾸준하게 위로와 공감의 음악을 만들어온 이들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그리고 9와 숫자들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더 옳은 것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우리들의 도시에서 9와 숫자들, 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집 앨범 이후 2년 만에 3집 <수렴과 발산>을 발표했어요. 물론 그 사이에 미니앨범 <빙글빙글>, 멤버들 싱글도 냈고요. 그러고 보니 정말 바빴겠는데요?

송재경(이하 ‘9’) 외국에 가서 2년 정도 있으면서 재충전을 했다, 이런 것 없이 계속 공연하고 작업하고 그랬어요. 개인적인 근황이랄 게 없었어요. 올해 초까지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공연이 거의 일상이었죠.

유정목(이하 ‘0’) 2014년 11월에 발매한 <보물섬> 이후부터 해온 공연이 거의 30회에 육박해요.

유병덕(이하 ‘3’) 1년이 약 52주인데 공연이 30회면 거의 매주 아니면 격주로 한 것이더라고요. 팬분들은 만날 때마다 그래요. “자주 할수록 우리는 좋다. 공연 많이 해달라.” (웃음)

 

11월 9일 선공개한 곡 '싱가포르' 반응이 좋아 더욱 기대를 했을 것 같아요. 정규 3집 발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어떤 것 같나요?

9 솔직히 말하면 평단은 약간 시큰둥한 것 같고요. (웃음) 평론하시는 분들은 아직 평론할 거리를 찾지 못하신 것 같아요. 노래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요. 1집 때는 평단에서 시끌시끌 했거든요. <유예> 때부터 여기저기서 많이 언급이 되었고요.

0 특히 <유예>에서 정규 2집 <보물섬>으로 넘어오면서 저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폭이 확 넓어진 것 같아요.

9 <보물섬> 발매 당시에는 2곡을 선공개 했는데, 그 중 ‘보물섬’은 아주 록적인 요소가 강한 화려한 곡이었고, ‘커튼콜’은 굉장히 댄서블한 임팩트가 강한 곡이었죠. 그래서 이번에 공개한 ‘싱가포르’에 대한 반응은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음악을 오래 들어온 팬들은 앨범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주거든요. 2집 때와 비교하면 듣기 편하고 예쁜 멜로디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반면에 좀 약한데? 밋밋한데? 하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래도 막상 앨범 전체를 놓고 보니 다양한 스타일의 곡이 있어서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매번 내놓는 앨범은 당연히 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를 텐데, 3집은 좀 더 확연히 이전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보다 대중적이랄까, 사뭇 편안해 졌어요.

9 의도적으로 더 쉬운 언어를 택했어요. 그걸 모르실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곡들은 노랫말도 짧고 구성도 간결해요. 보통 가사는 A4 한 장을 채울 정도로 길게 쓰는데, 이번에는 반복도 사용하면서 간결하게 줄였어요. 구성이 바뀌어도 저희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훼손되지 않으니까요.

0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연주를 한 것 같아요. 사운드도 정말 좋게 나왔고 완전 만족해요. 특히 조화로운 사운드를 내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9 이전에는 결과물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과정에 대해서는 간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악기와 악기의 관계나, 곡에 담긴 연주의 의미 같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멤버 각각의 스타일이나 역할을 잘 드러낼 수 있게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각자가 튀기 보다는 더욱 조화를 이룬 것 같아요.

사운드뿐 아니라 메시지 또한 의미심장해요. 특히 타이틀곡 '엘리스의 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가 수몰되고 있다는 남태평양 섬나라 엘리스 제도, 투발루에 관한 이야기죠. 명시적으로 투발루의 상황을 소재로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 사실 저는 온실가스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에서야 관심을 갖다가, 우연히 투발루 이야기를 접했어요. 그런데 투발루라는 나라의 운명이 굉장히 문학적이고 상징적으로 느껴졌어요. 보통 100년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인간의 수명을 비유하잖아요. 100년 안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나라 전체가 가라앉을 거라는 이야기가 인간의 운명론하고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영감이 확 오더라고요. 그것으로부터 받은 영감이 이번 앨범 전체를 감싸 안는 정서가 되었어요.

 

투발루에 관한 곡이지만 더 넓은 메시지로 확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엘리스의 섬’뿐 아니라 ‘전래동화’ ‘드라이플라워’ 같은 수록곡 가사를 보면 <수렴과 발산>의 부제인 ‘Solitude And Solidarity’ 즉, '고독과 연대'를 고스란히 뜻하는 것 같았고요.

9 너무 시시콜콜하고 개인적인 주제보다는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어요. 그동안 저희가 해온 음악이나 과거를 돌아보면 고독, ‘Solitude’에만 너무 집중해왔던 것 같아요. 개인의 삶을 반성하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물론 좋은 자세죠. 그때의 음악은 약간의 위로와 공감을 주었겠죠. 이번에는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힘을 보탤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앨리스의 섬’ 노래 가사에 ‘묻지 않았지만 난 이미 대답했어’라는 부분이 있어요. ‘묻다’라는 것이 영어로 하면 ‘Ask’인데, 이 영어단어에는 ‘부탁한다’는 뜻도 있거든요. 묻지 않았지만 대답했다는 말은 누군가가 부탁해서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자연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한 거예요. 예를 들어 촛불 들고 광화문에 나가는 사람들은 일당 받으려고 나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분노든, 공동체 의식이든, 정의든 간에 각자의 발로로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로부터 오는 혜택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세대가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제가 생각한 연대예요.

 

'엘리스의 섬' 티저 영상이 무척 흥미로워요. 일러스트도 좋았고 특히 내레이션에 드러머 유병덕 씨 목소리도 반가웠고요. 뮤직비디오와는 다른 내용인데, 티저 영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거예요?

9 작업하면서 곡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다 같이 영상을 떠올리게 됐어요. 앨리스의 섬 이야기는 상징적인 의미지만, 어쨌든 그 이야기를 명확히 알면 곡을 들을 때 훨씬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러스트는 제 군대 후배가 작업한 거고요. (웃음) 내레이션에 3 목소리도 좋았죠.

▶ '싱가포르' TEASER [바로가기]

곡들의 의미나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그렇고, '이 사람들, 정말 올곧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들 생각은 어때요?

9 보이는 메시지는 순하고 착하고 예쁘고 이런 거지만 실제로 그건 그런 이상을 향해서 가고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은 우리한테 결핍되어 있는 거예요.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숨기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밖으로 내세우며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거죠. 올바른 메시지를 노래에 담다 보면 실제로 그 방향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 같아요. 언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거죠.

 

최근 영향 받은 뮤지션이 있나요?

9 레너드 코헨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능을 지닌 사람이에요. 가사를 아주 잘 쓰고, 훅과 멜로디도 뛰어나고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레너드 코헨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예요. 작년부터 유독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지난 달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요즘 더 열심히 레너드 코헨을 파헤치고 있어요. 그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을 예정이에요.
▶ Leonard Cohen ‘Suzanne’ Live [바로가기]

 

최근 데뷔한 ‘검은잎들’의 EP <메신저>를 ‘9’ 송재경 씨가 프로듀싱했어요.

9 프로듀싱 작업은 사서 하는 고생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물론 대박을 향한 야망도 있지만, 록밴드가 신인 때부터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음악활동 하면서 얻은 것들을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작업했어요.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 더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검은잎들 같은 경우는 아주 좋은 싹이었죠. 그래서 더욱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9와 숫자들은 다른 프로젝트도 틈틈이 했어요. 작년에는 ‘0’ 유정목, ‘3’ 유병덕 씨가 유닛 ‘병목현상’으로 노래도 냈고요. 송재경 씨도 정규 앨범 직전 솔로 싱글을 냈어요. 또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0 저는 ‘전자양’이라는 밴드도 같이 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 정규앨범을 낼 예정이에요.

9 2015년 단독 콘서트 <몽땅쇼>에서 비틀즈, 산울림,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케미컬 브라더스를 ‘구틀즈’, ‘구울림’ 이런 식으로 패러디하고, 저희 음악을 편곡해서 불렀던 적이 있어요. 그게 재미 있었고 반응도 좋아서, 다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트리뷰트 앨범을 만들어볼까 해요.

팬들은 <유예> 때처럼 LP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9 LP 발매 계획도 있죠. 이제 LP의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소장뿐 아니라 감상하기에도 정말 좋죠. 작년에 핑크색 LP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몇몇 팬들은 <유예> LP 때문에 턴테이블도 사셨대요. 이번에 만약 앨범 자켓처럼 민트색 LP로 만든다면… 이미 다 팔린 기분인데요?

 

3집 수록곡 중에서 멤버들 각자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아주세요.

0 저는 계속 바뀌는 편이에요. 그래서 마음 속에서 한 번도 1순위를 했던 적이 없는 곡을 고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웃음) ‘이별중독’, ‘싱가포르’, ‘안개도시’는 1등을 한 적이 없던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제 취향이에요. 듣는 분들마다 ‘최애곡’이 다 다르더라고요. 곡들마다 각각 다른 매력이 있고요. 그게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3 저도 그때그때 좋아하는 곡이 바뀌지만, 3집 앨범을 낸 후에 계속 공연 준비하고 합주하면서 가장 좋았던 곡이 ‘평정심’이었어요. 연주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익혀 나간 간 곡이어서 더 좋더라고요.

4 ……

9 꿀버섯은 저한테 연결되어 있어요. 제가 대신 다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9와 숫자들 이전부터 따지자면 멤버들이 함께 해온 지도 10년 가까이 되네요. 그동안 호흡을 맞춰온 서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9숫 네 명이 완전 다 달라요. 한의학 사상(四象)부터 따지면 태양인, 소음인 등 체질도 다 달라요. (웃음)

0 멤버가 아니었다면 분명 부딪혔을 거예요. 멤버라는 가까운 관계 안에서 서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비슷해진 것 같아요.

9 성격은 완전히 다르죠. 그렇지만 삶의 가치관이 비슷해졌다는 걸 느껴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좋아하는 음식이나 영화 같은 취향은 달라도 괜찮은데, 가치관이 아예 다르면 같은 음악적 뱡향으로 나아가기 힘들거든요. 9숫이 지금까지 뒤처지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건 서로의 가치관이 잘 어우러진 덕분이에요. 공통의 가치를 갖게 된 건 하나의 밴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자 원동력인 것 같아요.

 

슬슬 라디오 출연도 하고, 한창 바쁜 것 같아요. 특히 공연 스케줄이 내년 초까지 빽빽한데, 다가올 1월 홍대 무브홀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더라고요. 원래 9와 숫자들 팬들의 충성심이 높기도 하지만, 기분 좋을 것 같아요.

0 앨범 내고 첫 공연이라 더욱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아요. 공연이 매진되면 기분은 당연히 좋죠. 그건 동시에 다음 공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저희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더욱 열심히 해야죠.

3 새 앨범을 내고 갖게 된 첫 공연이어서 걱정도 많았는데, 반전이었죠. 많은 관심 주셔서 정말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9 앨범 작업할 때만 해도 발매하고 나면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앨범 내고 나니까 바로 다음 앨범 만들고 싶어져요. 벌써부터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어요. 다음엔 좀 더 ‘록’적인 걸로요.

0 얼마 전에 시규어 로스 공연 보다가 생각난 건데, 옛날에 우리 ‘그림자 궁전(9와 숫자들의 전신 격인 밴드)’ 할 때처럼 프로젝트로 한 곡씩 내봐도 재밌을 것 같아. 제목을 9분 34초로. 9분 34초짜리 곡을 만드는 거지.

9 공구삼사(0934)? 그건 우리 다음 <몽땅쇼> 할 때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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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와 숫자들 '앨리스의 섬' MV  
인터뷰 유미래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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