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50년대 녹음한 재즈 음반의 상당수느 노먼 그랜츠(Norman Granz, 1918~2001)라는 이름이 프로듀서로 등장한다. 5개의 재즈 전문 레이블을 창설하고 재능 있는 재즈 뮤지션들을 모아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사적 재즈 음반들을 녹음한 인물이다. 흑인 차별이 엄중했던 시절, 백인임에도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그는 재즈 음악사의 가장 성공적인 임프레사리오(Impresario) 즉, 기획자, 프로듀서, 매니저로 남아 있다.

그는 원래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증권 중개인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징집되어 공군의 위문 부서에 소속되면서 재즈 뮤지션들과 연을 맺는다. 제대 후 300달러를 빌려 고향 로스앤젤레스의 필하모닉 음악당에서 재즈 공연을 하는 ‘JATP(Jazz at the Philharmonic)’를 주관하면서 음악 인생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데, 이때가 1944년 6월이었다. 그가 재즈 음악사에 공헌한 업적을 살펴보자.

 

JATP(Jazz at The Philharmonic) 운영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음악당에서 열린 첫 공연 이후, JATP는 장소와 관계없이 그가 주최한 재즈 공연의 브랜드가 되었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JATP 공연은 계속되었고, 1983년 동경 공연이 마지막이니 약 40년 동안 지속한 셈이다. JATP 공연 레코딩은 2010년 미국 국회의사당에 연구 보존하기로 결정될 정도로 중요한 재즈 사료다. 1950년 JATP 잼 세션 실황을 보자. 전성기 때의 레스터 영(색소폰), 엘라 피츠제럴드(스캣), 버디 리치(드럼)를 볼 수 있다.

JATP Jam Session 'Blues for Greasy'

 

재즈 뮤지션의 잼 세션 영화화

노먼 그랜츠는 1944년 <라이프(Life)> 지의 사진가인 존 밀리(Gjon Mili)와 함께 재즈 뮤지션들의 잼 세션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Jammin’ the Blues>를 제작하였다. 레스터 영, 레드 칼렌더, 바니 케셀, 일리노이 자켓, 카운트 베시 같은 당대 톱 클래스 뮤지션들의 연주 영상을 담았다. 이 영화 또한 1995년 미국 국회도서관에 영구 보존되었으며, 영화의 스틸 컷은 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 작품답게 재즈 관련 포스터나 서적에 자주 인용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었다.

재즈 다큐멘터리 <Jammin' the Blues>

  

인종 분리 공연장에서의 공연 거부

그는 흑인과 백인의 좌석을 분리한 공연장에서는 절대 공연을 하지 않았다. 공연 계약 이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도 손해를 감수하고 공연을 취소했다. 그는 흑인과 백인 뮤지션에게 같은 액수의 급여를 지급한 최초의 프로듀서였고, 호텔 숙박이나 락커룸 이용 또한 흑인과 백인 뮤지션을 똑같이 대우했으며 이와 관련한 법적 소송도 마다치 않았다. 인종분리정책(Racial segregation)이 엄격했던 1940년대부터 말이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발굴과 <Song Book> 기획

노먼 그랜츠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1917~1996)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수년간 끈질기게 설득하여 1956년 마침내 그의 매니저가 된다. 두 사람은 계약서 한 장 없이 오랜 기간 신뢰로 형성한 끈끈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였고, 엘라 피츠제럴드는 기대에 부응하여 정상에 오른다. 노먼 그랜츠가 창설한 버브(Verve) 레이블에서 출반한 엘라 피츠제럴드의 <Song Book> 시리즈 8장은 재즈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 되었다. 1994년 고급 박스셋으로 재발매한 시리즈(사진)는 이듬해 ‘그래미어워드’ Best Historical Recording 상을 받았다. 이 중 ‘White Christmas’의 작곡자로 유명한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재즈 스탠다드를 집대성한 <Ella Fitzgerald – Sings The Irving Berlin Songbook>을 들어보자.

<Ella Fitzgerald - Sings the Irving Berlin Songbook> 중 'Let's Face the Music and Dance'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발굴

▲ 캐나다 오타와 국립아트센터에 있는 오스카 피터슨의 동상

노먼 그랜츠는 1949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라이브 피아노 연주에 감탄한다. 그는 바로 공연장으로 택시를 돌렸고, 그 날부터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2007)의 매니저가 되어 평생을 같이한다.

미국 남부에서 흑인 탑승금지 택시를 탔다가 총을 겨눈 백인 경찰 앞을 막아선 노먼 그랜츠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택시 뒷좌석에는 오스카 피터슨과 엘라 피츠제럴드가 겁에 질린 채 앉아 있었으며, 이 일화는 오스카 피터슨의 자서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스카 피터슨은 이후 200건의 레코딩과 13개의 그래미를 수상한, 최고의 재즈 트리오 ‘Oscar Peterson Trio’를 구성하게 된다.

Oscar Peterson Trio ‘You Look Good to Me’

 

재즈 레이블 ‘Verve’와 ‘Pablo’의 창설

노먼 그랜츠는 ‘Clef’, ‘Norgran’, ‘Down Home’, ‘Verve’, ‘Pablo’ 등 5개의 재즈 레이블을 창설하여 19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후반 재즈 전성기의 중요한 레코딩들을 남겼다. 1956~1959년 미국에서 발매한 재즈 음반의 절반이 그의 손을 거쳤다. 노먼 그랜츠는 1960년 하나로 통합한 Verve 레이블을 MGM에 매각하였고, 1973년에 창설한 Pablo 레이블을 1987년 Fantasy 레코드에 매각한 뒤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스위스에서 남은 생애를 보낸다. 그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사 모으는데 남은 정열을 바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카소 작품들을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그의 생애를 주변인들의 회고를 통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자.

사망 후 출간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에서는 노먼 그랜츠를 “The Man Who Used Jazz for Justice(정의를 위해 재즈를 활용한 사나이)”라고 정의했다. <가디언(The Guardian]>지는 “The Man Who Made Jazz the Sound of America(재즈를 미국의 소리로 만든 사나이)”라고 칭했다. 그의 평생 파트너였던 오스카 피터슨은, “He’s not a performer, he’s not a composer, he’s not even a musician, but Norman Granz is Mr. Jazz.(그는 연주자도, 작곡자도 뮤지션도 아니었지만, 재즈 그 자체였다)”라는 말로 평생의 친구였던 노먼 그랜츠를 향한 애정과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