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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BACON, <Self-Portrait>(1969)

 

막살았던 남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막살았다. 나는 이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사랑에 집착한다거나, 기꺼이 자신의 몸을 팔고(그는 자신의 작품이 테이트모던 등에 팔린 이후에도 매춘을 멈추지 않았다), 여성의 속옷을 입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등 그의 성적 취향에 근거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VIM 표백제로 양치를 하고, 신발 광택제로 머리를 염색하는 것과 같은 기행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이미 생전에 들뢰즈와 같은 저명한 철학자나 평론가로부터 충분한 평을 얻었고,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확인했고, 그들을 위한 충분한 피드백과 인터뷰를 남겨 두었다. 즉 미술 평론계가 베이컨이라는 작가를 소비하는 방식은 ‘답정’(답은 정해져 있어)의 매뉴얼과도 같다. 1970년대 초 한 프랑스의 한 예술지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생존해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 로스코, 요셉 보이스와 같은 이들이 모두 살아있던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그는 ‘생전에는 불우하고 가난했지만, 죽고 나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그런 평범한(?) 작가가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그는 돈 한 푼 모으지 않고 그 돈으로 최선을 다해 술을 마셨고 남자를 만났다. 우선 베이컨의 ‘몸’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혹은 이 글을 읽는 동안 베이컨의 그림에 등장하는 몸을 살점, 고깃덩어리, 감각 덩어리, 고통 덩어리, 그것도 아니면 기존의 관습적 인식을 거부하는 ‘시지각적 오류 덩어리’라고 환원시켜 봐도 좋겠다.

2017년 BBC에서 방영한 프랜시스 베이컨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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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BACON,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figures>(1944)

 

프랜시스 베이컨과 영화

영화계가 이런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베이컨의 시각적 강렬함을 느낀 이상 감독이든 배우든, 혹은 필름 자체든 베이컨이라는 개미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에일리언의 입만 한껏 강조된 얼굴 형상은 베이컨의 일그러진 인물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온 것이다. 또한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셉션>의 세계관을 구상할 당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요소를 얻었다. 데이빗 린치는 <앨리펀트 맨>, ABC 티비 시리즈 <TWIN PEAKS> 등에 이르기까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에서 인물상이나 사물, 전체적인 구도 등 생경한 느낌을 포착해 오마주한다. <쉘로우 그레이브>,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같은 영화로 유명한 대니 보일 역시 자신의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의 색감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배트맨> 속 조커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관계가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나이트>를 구상할 당시 베이컨의 작품 속 인물들로부터 조커 분장에 대한 크리에이티브를 얻으려 한 것은 급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꼭 <배트맨>의 고전 팬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를 사랑한다. 그리고 1989년 팀 버튼이 연출한 <배트맨> 속  ‘조커의 미술관 등장 신’,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베이컨의 작품을 보며 조커가 부하에게 남기는 말이 참 멋지다. “Whoa, I kind of like this one, Bob. Leave it(이건 맘에 들어. 그냥 놔둬).” 조커라는 캐릭터와 “Leave it.”이라는 표현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조커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베이컨의 그림 값이 치솟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아니면 영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바람 잘 날 없게 만들었든지.

<배트맨>(1989)의 조커 등장 신
데이빗 린치의 HOMAGE TO BACON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

 

자아의 한계를 맞닥뜨리게 하는 ‘지표’

베이컨의 작품이 주는 불편함 혹은 기괴함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어떻게 유효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얘기하려던 이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다. 그는 작품이 캔버스 위에 재현해야 하는 것은 대상이나 풍경, 감정이 아닌, 그것들 자체를 야기하는 운동성 혹은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들뢰즈는 몬드리안처럼 기하학적인 패턴을 사용하는 암호화의 방식으로 숨지도 않고, 잭슨 폴록처럼 구상을 포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날것의 감각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베이컨의 작품을 제시했다. 물론 베이컨 역시 우연적, 우발적 행위를 좋아했다. 헝겊으로 문지르거나 물감을 뿌리는 식의 행위(베이컨은 이를 ‘GRAPH’, ‘DIAGRAME’이라 불렀다)를 곧잘 했다.

그러나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애써 그린 교황이나, 도축 고기, 자화상, 연인의 모습 위를 덮어버리는 이러한 우발의 흔적(DIAGRAMME)은 단순히 아래의 이미지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용도가 아니었다. 무(無) 자체인 화이트 캔버스 위에서조차 지울 수 없는 머릿속 신기루, 즉 환영(幻影)을 내쫓는 것이었고, 사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실마리였다. (“The diagram is a possibility of fact - it is not the fact itself.”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p110)

들뢰즈의 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레이어가 엉킨 베이컨의 작품을 통해 어떠한 환영에서도 자유로운, ‘개념적 미니멀리즘’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지표일 수 있다. 베이컨의 자아와 초상에 관한 <Bacon: Portraits and Self-Portraits>라는 책이 있다.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 책의 서문을 썼고,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ooking at Bacon’s portraits, I am amazed that, despite their ‘distortion’, they all look like their subject. I could put it differently: Bacon’s portraits are the interrogation on the limits of the self. Up to what degree of distortion does an individual still remain himself? Where lines the border beyond which a self ceases to be a self?”

(베이컨의 초상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것이 ‘왜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닮아있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베이컨의 초상은 자아의 한계 지점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지점의 왜곡까지 인물이 ‘자신’이라는 개체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어느 경계선에 이르러야 자아는 본인 스스로이길 중단하는가?)

즉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자아의 경계가 어느 지점인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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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베이컨의 작업 스튜디오

 

만들어진 캐릭터

그러나 사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몇 줄의 비평으로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막살았다. 그의 주변엔 루치안 프로이트나 자코메티처럼 잘 나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베이컨은 백수 노름꾼에, 알콜중독자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영국 연방 왕국이 주는 메리트 훈장, 컴패니언 훈장 등을 모두 거절하고 작품을 팔아 번 큰돈은 모두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시는 데 써버렸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의 그림만큼 기괴하고 음울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몇 미술상이나 옥션은 그의 작품이 내뿜는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훼손되지 않도록 다분히 계산적이고 정치적인 속셈으로 베이컨을 우울하고 강박적인 캐릭터로 묘사하고 홍보했다. 데이비드 실베스터(David Sylvester)처럼 베이컨에 관한 전시 큐레이팅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평론가들은 그가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그의 연인이었던 조지 다이어의 일화를 그린 영화 <LOVE IS THE DEVIL>에 자신과 베이컨의 인터뷰가 인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도 했다.

 영화 <Love Is the Devil>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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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IS BACON, <Three Studies of George Dyer>(1966)

위 그림은 <Three Studies of George Dyer>의 다섯 점 중 하나다. 1966년 그려진 이 트립틱(triptych, 세 폭짜리 그림)은 작년 소더비 경매에서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다. 작품의 모델이 바로 영화 <LOVE IS THE DEVIL>에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조지 다이어다(극 중에선 다니엘 크레이그가 조지 다이어 역을 연기했다).

 

역설의 카타르시스

우리는 레이어가 마구 뒤엉킨 그의 작품으로부터 모든 게 벗겨지고 녹아내린, 해체된,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형태의 인간, 그리고 그 존재의 욕망을 볼 수 있다. 한껏 헝클어진 베이컨의 작품으로부터 묘한 평온을 얻을 수 있다.

비극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슬픈 만큼 울며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100 만큼 슬플 때 겨우 짬을 내야 70 정도 울 기회가 주어진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오래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솔직한 천재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한 베이컨의 두 연인과 불우한 유년을 보낸 그에겐 정말 무례한 표현이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축복일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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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1969)

 

메인 이미지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George Dyer>(1969)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Writer

언어만으로 꽃과 대화하던 시절,
그 시절의 언어를 되찾을 방법으로 미술을 본다.
Flower Vowels라는 영상팀에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Flower Vow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