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제작된 SF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는 우주 전쟁이나 광선총이 등장하는 여느 SF와는 다르다. 가까운 미래사회의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어두운 측면을 풍자한 드라마인데, 앤솔로지(anthology)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에피소드마다 스토리와 출연 배우가 상이하여 어떤 에피소드를 먼저 보든 상관없다. 각 에피소드는 한 시간 분량이라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 중 어떤 에피소드를 먼저 봐야 할 지 고민이 된다면, 주저 없이 시즌 3의 네 번째 에피소드 <산 주니페로(San Junipero)>를 감상하길 권한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에미상 2관왕에 오른 바로 그 에피소드이다.

벨린다 칼라일의 ‘Heaven Is a Place on Earth’(1987)이 흐르는 에피소드 소개 영상

(이 기사에는 <산 주니페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술 발전의 긍정적 영향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촬영된 산 주니페로 전경

<블랙 미러>의 대부분 에피소드들이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꼬집은 것과는 달리, <산 주니페로>는 기술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조명한다.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인 ‘죽음’을 아름답게 관리하면서 희망을 주는 기술을 상상한다. 에피소드 제목인 ‘산 주니페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산 주니페로>의 엔딩 장면

 

극적인 시계열 구성과 반전

원래 <산 주니페로>는 시즌 3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기획되었으나 네 번째로 연기되었다. 스토리 구성과 시계열 배치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던 탓이다. 1987년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시작하여 1980년, 1996년, 2002년으로 타임슬립 하면서 길거리의 영화 포스터나 배경 음악도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스토리 구성과 반전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요소가 되었다.

<산 주니페로>의 오리지널 스코어

 

사운드 트랙

우울한 감성의 앰비언트(Ambient)와 1980년대의 팝 음악의 대비는 드라마의 백미다. 영화 <블랙 스완>(2010)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음악 감독 클린트 맨셀(Clint Mansell)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으며, ‘Heaven Is a Place on Earth’(벨린다 칼라일), ‘Walk Like an Egyption’(뱅글스), ‘Don’t You’(심플 마인즈), ‘Addicted to Love’(로버트 파머)와 같은 1980년대 히트 팝송을 망라했다.

19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 로버트 파머의 ‘Addicted to Love’(1985)

 

두 배우의 커플 연기

드라마는 1987년을 배경으로 레즈비언 커플의 사랑을 다루며 시작한다. 연애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순진하고 수줍음 많은 ‘요키(Yorkie)’가 산 주니페로라는 해변 휴양지에서 활달한 파티걸 ‘켈리(Kelly)’를 만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요키 역의 맥켄지 데이비스는 <마션>(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 출연한 캐나다 배우이고, 켈리 역의 구구 음바타로는 TV 드라마 <닥터 후>에 처음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어 최근에 할리우드에 주연 배우로 나서기 시작한 신예 영국 배우다.

에미상 시상식에서 두 배우의 수상소감

<산 주니페로>는 2017년 프라임타임 에미 2관왕, BAFTA(영국 아카데미) 2관왕을 시작으로 수상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블랙 미러>는 시즌 2까지 영국 채널4가 제작하여 방영하였고, 시즌 3부터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으면서 시즌 4까지 온라인 서비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