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많다. 흥미로운 서사, 매력적인 인물, 빼어난 연기, 아름다운 영상, 창의적인 편집과 카메라. 혹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결, 자꾸만 시선을 끄는 몇 가지 색채, 어둠의 공간에 새어드는 한 줄기 빛 등등. 이런 서술은 단편적인 열거에 지나지 않지만 사실은 어떤 영화가 가진 큰 매혹의 지점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총합이 다시 영화이기도 해서, 이들 요소 중 하나에 초점을 둔 영화감상도 꽤나 흥미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다. 이미지의 작화에 능한 많은 감독이 있지만 빼곡한 대사들로 영화를 세공하는 감독들도 있다. 이런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새로운 힘을 가졌다. 지금부터는 ‘대사’라는 요소를 흥미롭게 활용한 수다쟁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이들은 말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대사만이 힘을 갖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있건 없건, 그 의미 없는 대화들을 굳이 스크린 속으로 데려오면서 영화가 단단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좋은 말들은 누구에게나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소수의 관객을 엉뚱하게 감화시키며, 각자의 경험치에 따라 여러 갈래의 해석을 남기기도 한다. 다시 영화적 효과로 접근해 본다면, 한 마디로 설명이 불가한 다면적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좋은 교구가 되는 것도 대사요, 간단한 이야기를 결코 간단치 않은 실제 삶으로 데려와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대사다.

영화는 자기계발서도, 계몽 우화의 변종도 물론 아니다. ‘대사’가 어떤 울림이나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관객이 있다면 제발 지금이라도 버리길 바란다. 영화는 혹자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앞잡이가 되겠다 선언한 적이 없다. 아래에 소개할 영화들은 관객을 웃게 할 수도, 머릿속을 헤집을 수도 있는 영화들이다. 두 가지 모두 ‘즐거움’을 주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우디 앨런 <애니홀>(1977)

우디 앨런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늘 수다스럽다. 그의 영화를 다만 두세 편만 봐도 우디 앨런이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전직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던 그는 천부적인 달변가다. 늘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그가 하는 말들이 모조리 암담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자조적인 유머와 심사가 꼬인 불평들은 대부분 폐부를 찌르는 허수들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펄프픽션>(1994)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B급 영화계의 탕아 쿠엔틴 타란티노. 저급한 코미디를 지향하는 타란티노의 영화는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영화다. 누군가 내게 “이 정도로 쓸데없는 싸구려 수다가 과연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0.1초가 흐르기 전에 대답할 것이다. 네, 필요합니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라면 무조건적으로.

 

로만 폴란스키 <대학살의 신>(2011)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하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실내풍자극이다. 케이트 윈슬렛, 조디 포스터,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네 배우의 끝을 모르는 언쟁이 폭소를 유발한다. 애들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고 그 언쟁은 애들 싸움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구질구질해진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

가장 낭만적인 수다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 ‘나는 너를 알고 싶어.’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해.’ 그 무수한 말들은 서로를 향한 애정의 시선을 남긴다. 정해진 주제 없이 잡다한 영역을 넘나드는 대화가 이 세상 모든 남녀들이 수천 년 역사에서 누려온 로맨스의 본질은 아닐까.

 

아쉬가르 파르하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일상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지만 이것은 ‘이란 사회’의 일상이다. 하나의 발단이 무수한 가지를 뻗는 갈등의 연쇄. 이런 방식의 서사구조에서 대사는 곧 갈등의 가지에 해당한다. 다양한 윤리가 충돌하는 상황 설정에 관객의 머리가 조금 아파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영화가 끝난 뒤 머릿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영화’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에릭 로메르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1987)

인물의 세계관과 세계관이 빚어내는 수다의 정석. 시골 소녀 레네트와 파리 출신의 미라벨이 우연히 만나 룸메이트가 되고, 둘의 가치관이 끊임없이 전해지며 이따금 부딪힌다. 갈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스럽다. 에릭 로메르의 유명한 계절 시리즈도 흥미롭지만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은 단편영화의 감수성이 녹아든 예쁜 장편이다.

 

말로 던지는 핑퐁게임, 이른바 수다쟁이를 자처하는 영화들에서 ‘수다’는 각기 다른 쓰임새로 활용된다. 여기 소개된 영화는 수다 영화의 대열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을 기준 삼아 향유할 여지도 많은 작품들이다. 훌륭한 영화가 항상 위대한 대사를 남기지도 않거니와 무의미한 대사가 무의미한 영화를 만들지도 않는다는 것. 아무 말의 힘은 종종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기도 한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Writer

예측 불가능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을 닮은 영화를 사랑한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지금에 도착한 필자가 납득하는 유일한 진리는 '영영 모를 삶'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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