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닐 패트릭 해릭슨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영화는 그저 움직이는 그림(Moving picture)일 뿐인데, 왜 우리는 영화에 매료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영화 속 스크린을 이루는 것은 물론 그림이지만, 그것을 입체적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톰 포드 감독이 패션 디자이너를 넘어 영화감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그림 같은 영상들이 단순히 감각적인 면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 더욱 깊은 층위의 감정을 입혀준 것이 바로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음악이다. <싱글맨>과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음악적 호흡을 함께 맞춰 온 이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톰 포드 영화’를 완성했는지 살펴보자.

 

<싱글맨> 

<싱글맨> 포스터

영화 <싱글맨>(2010)의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는 쉽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골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사랑했던 연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상실감과 무력감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리고 영혼이 아닌, 껍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 ‘싱글맨’으로서의 공포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과 비슷한 싱글맨인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를 만나게 되며 다시 한번 ‘삶’을 꿈꾸게 된다.

조지와 케니의 수영 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신은, 조지가 케니와 함께 수영하는 장면이다. 슬픔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사랑과 삶을 견뎌내리라는 조지의 감정이 이 장면을 통해 너무나 영화적이게 표현되었다. 시종일관 회색빛의 세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그는 수영하러 가자는 뜬금없는 케니의 도발에 넘어가고, 맨몸으로 아이처럼 물로 뛰어든다. 조지는 냉철하고 시니컬한 ‘교수 조지’를 옷과 함께 벗어 던지고, 밀려오는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살아있는 그 순간 그대로가 넘쳐 흐르는 것이다.
 

<싱글맨> 스틸컷


이때 흐르는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음악 ‘swimming’은 반복되는 고독과 절망의 여정 속에서도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조지의 감정을 영상 위에 덧입힌다. 환희와 슬픔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음악이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가 영화 <싱글맨>을 통해 만들어내는 음악은 때론 공포스럽고 처연하다. 단순히 연인이 죽었기 때문에 느끼는 슬픔에만 음악적 코드를 맞추기보다는, 결코 본연을 사랑할 수 없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싱글맨으로서의 슬픔과 공포, 의심을 함께 녹여낸다. 톰 포드와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직접적인 대사와 설명으로 처리하기보다, 철학적인 영상미와 구체적인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즈음에서, <싱글맨>의 O.S.T snow를 첨부한다. 밀려오는 여러 감정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A Single Man> O.S.T. ‘Snow’

 

 

<녹터널 애니멀스> 

<녹터널 애니멀스> 포스터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면서 양면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기쁘면서도 슬플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x이면서 동시에 y가 될 수 있는 아주 복합적인 존재다. 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양면적인 감정을 스크린 안에 담기 위해 노력했고, 감독들은 스크린에 음악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감히 말하자면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7)는 바로 그 예 중의 하나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불편한 영화다. 피가 낭자하는 것도 아니고 공포감을 부추기는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관객들은 강렬한 스토리에 ‘압사당하는 듯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사랑을 배신당한 남자가 자신의 심정을 잔혹한 픽션에 담아 헤어진 연인에게 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의 배신과 그에 응하는 잔혹한 복수, 빨강과 초록이 뒤섞인 원색적인 화면들이 이어지고, 속은 불편하다 못해 메스꺼워진다.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에 복수뿐만이 아닌, 지독한 슬픔과 사랑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음악은 영화 속 분노를 중화하고 그 안에 담긴 유악함과 슬픔, 사랑과 좌절을 뚜렷이 나타낸다.

<녹터널 애니멀스> 오프닝신


<녹터널 애니멀스>의 오프닝 신을 살펴보자. 3분가량 이어지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춤은 고속 촬영되어 실제보다 느리고 길게 진행된다. 여인들의 모습이 추하게 보이도록 아주 노력한, 다분히 의도적인 이 영상에서도 ‘아름다움’과 ‘공허함’이 느껴질 수 있는 것은 그 위에 흐르는 음악의 힘이 크다. 이 오프닝은 앞으로 보게 될 영화의 모습이 너무나 추한 날것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과 사랑,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언질 받는 느낌마저 든다.

<Nocturnal Animals> O.S.T. ‘Table for two’

영화 속에서는 생각보다 음악이 그리 자주 나오진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음악은 오프닝과 엔딩신에서 뚜렷하게 들려오는데, 특히 성기고 엉킨 감정의 타래 끝에서 들려오는 엔딩신의 음악이 가히 일품이다. 그때 흐르는 ‘Table for two’라는 음악을 첨부한다.

영화는 감정의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영화 <싱글맨>과 <녹터널 애니멀스>를 이미 보았다면,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들을 단순히 배경음으로만 여기지 말고 인물이 말하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감상해보자. 훨씬 더 깊이 있는 감정의 층위가 우리에게 전해올 것이다.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