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이 ‘기괴함의 거장’,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격찬한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imus Bosch)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중세시대 작품이 아니라 근대 초현실주의 작가의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은 그가 태어나고 활동한 르네상스 시대의 보편적인 화풍과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여 5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미술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화가로, 출생연도조차 그저 추정해야 할 만큼 남은 자료가 많지 않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그림 중에서도 정확히 그의 것이라 확인된 것은 30여 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작가와 확연히 구분되는 독창적인 그림으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는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다. 그의 대표작을 통하여 기괴하고 환상적인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네덜란드 덴 보스에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동상

 

<쾌락의 정원>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490-1510), oil on oak panels, 220cm × 389cm


가장 유명한 <쾌락의 정원>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데,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으로 항상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 미술관 문 여는 시간에 가서 보지 않으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어렴풋이 감상하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그림은 중세 기독교 교회 등에서 주로 성화를 그릴 때 쓰는 세폭화(triptych), 즉 세 개의 패널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가장 왼쪽 패널은 에덴동산을 그린 것으로 현세를 나타내며 중간은 온갖 쾌락과 향연이 펼쳐지는 무대로 보이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패널은 쾌락의 끝이 어디인지를 말해주듯 지옥임이 분명한 곳에서 여러 끔찍한 방법으로 형벌을 받거나 희한한 괴물들에게 잡아 먹히며 고통받는 이들이 묘사돼 있다.

<쾌락의 정원> 중 오른쪽 패널


위 그림은 <쾌락의 정원> 오른쪽 패널 중 일부분을 확대한 그림으로 기괴함이 특히 잘 드러나 있다. 솥단지를 뒤집어쓴 새는 엉덩이가 타고 있는 인간을 먹은 후 배설하고 있으며 그 옆에도 갖가지 형태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이러한 일련의 그림들을 그린 이유는 기독교적인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생각되며,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은 시각적 설교 및 훈계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중간패널의 그림으로 알 수 있듯 쾌락 위주의 그림이 센터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그의 무의식에는 육체에 대한 탐욕이 가득 찬 것으로 보인다는 비평가의 해설도 있다.

<쾌락의 정원> 중간패널


위 그림은 중간패널의 일부분을 확대한 그림으로 상상 속에서나 생각해봄 직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경스럽기까지 해 중세시대 사람들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하지만 현대에는 쾌락의 정원을 보고 히로니무스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쾌락의 정원은 독일 작가 페터 뎀프가 소설 <보쉬의 비밀>의 소재로 쓰기도 했는데, 그도 18세 때 쾌락의 정원 그림을 처음 보고 반한 나머지 이후에 소설까지 쓰게 되었다고 한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같은 분위기의 책으로 알려진 이 책은 쾌락의 정원이 아담파라는 이단종파의 주문으로 그려졌다는 내용을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연금술, 이단, 카발라, 점성술적인 요소들이 잘 어우러진 소설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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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eronymus Bosch, or follower, <Christ Carrying the Cross>(1510–1535), Oil on panel, 74cm × 81cm


이 그림 역시 그 시대에 그려진 예수가 등장하는 거룩한 성화와는 동떨어진 그림으로 예수 주위를 둘러싼 온갖 흉악한 인간군상들의 얼굴을 잘 묘사하고 있다. 도둑들과 욕심 많고 추악해 보이는 사제 등의 인물에 둘러싸인 예수, 그러나 그는 주변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십가가를 짊어진 채 가고 있다. 왼쪽 끝에는 성녀 베로니카가 예수의 수의를 조심스레 들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벨기에 겐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성 안토니오의 유혹>

Hieronymus Bosch, or follower, <The Temptation of St. Anthony>(1500–1525), Oil on panel, 73cm × 52.5cm


<성 안토니오의 유혹>은 사막의 성인, 수도원의 성인, 은자의 성인 등으로 유명한 성 안토니오의 정신적, 영적 고통을 잘 나타내주는 그림이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외진 곳에서 열심히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성 안토니오에게 악마는 게으름, 지루함, 여성의 혼령 등으로 나타나 괴롭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전염성 질병, 특히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성인이기도 하다.

<성 안토니오의 유혹>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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