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우리는 입술 사이로 여린 바람이 새어 나오는 이 이름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히고, 그다음으로는 그녀의 작품에 사로잡힌다. 꿈속의 풍경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것 같은 이미지에 반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 속에 철학적인 사유가 숨어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저 멀리 폴란드에서 흐미엘레프스카가 차분하고도 힘 있게 전해오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보자.
폴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이 길고 어려운 이름이 다소 낯설지라도, 그녀의 일러스트를 몇 편 보고 난 후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녀는 <생각하는 ㄱㄴㄷ> 등의 그림책을 펴내고, 황선미 동화작가의 일러스트를 맡는 등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다. 어디선가 오려낸 듯한 사진이나 알록달록한 천 조각을 서로 이어붙이기도 하고, 펜 대신 실과 바늘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과 작품세계에 녹아 있는 상상력까지. 한 편 두 편 작품을 접하다 보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어떤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낼지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종이 위의 물감이 떠오른다. 사실 흐미엘레프스카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특유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에서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생각>
흐미엘레프스카는 이렇게 만들어낸 이미지로 추상적인 개념에 형체를 부여한다.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지만 막상 표현해내기는 쉽지 않은 것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볼라치면 머릿속에서 뿌연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기 일쑤인 것들. 그것이 흐미엘레프스카가 주로 다루는 소재다. 아이처럼 말랑말랑한 상상력은 이러한 소재와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그림책 <생각>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투명한 유리그릇. 서로 마주보고 있어 그 속의 물체가 끝없이 늘어나는 거울.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비밀을 깊숙이 감춰둔 상자, 혹은 영화처럼 장면이 계속해서 바뀌는 화면.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
그림책 <두 사람> 역시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가는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관계는 종종 녹슬거나 한쪽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열쇠와 자물쇠 같기도, 따로 보면 각자 다른 풍경을 보여주지만 한눈에 보면 더 넓은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개의 창문 같기도 하다. 때로는 앞뒤로 엮여 있어 하나의 이야기가 온전한 책 한 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표지 같기도, 번번이 엇갈리는 낮과 밤 같기도 하다. 이렇듯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에는 신비로운 은유가 곳곳에 녹아 있다.
<여자아이의 왕국>
<여자아이의 왕국>은 이러한 은유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폭포, 폭발하는 화산, 높은 탑과 그 주변을 서성이는 매서운 용……. 신체적·감정적 변화를 고전동화 속 인물들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오래된 레이스와 실크 천을 사용한 콜라주 기법도 흥미롭지만 용을 길들이고 탑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찾아내는 등 왕국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는 주인공의 긍정적인 변화가 제일 인상적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아니라 자신만이 다스릴 수 있는 하나의 왕국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흐미엘레프스카가 새로 피어나는 어린 여성들에게 어떠한 시각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네 개의 그릇>
이렇듯 흐미엘레프스카의 가치관은 그녀의 작품이 빛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네 개의 그릇>에서는 그녀가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제목처럼 그릇 네 개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팔랑팔랑 돌아가는 바람개비, 소나기를 막아주는 우산, 새벽 내내 작가의 책상을 밝혀주는 스탠드 등 끊임없이 변신하는 그릇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이 화려한 변신에 넋을 놓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책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상상할 수 있어요. 보통 그릇 네 개도요. 이 책과 네 그릇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어요.”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어떤 마음가짐을 지닌 작가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이야기를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는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을 것인지, 그 이야기가 어떤 역할을 해낼지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읽을 때마다 이해와 해석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을 반복해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은유와 수수께끼와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한 그녀의 그림책은 독자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심어준다는 점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시(詩)와도 닮았다. 훗날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들도 고전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