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는 <1987>일 것이다. <1987>은 1987년 벌어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흘러간 그해를 실감 나게 그린 영화다. 오는 14일이 故 박종철 열사의 31주기인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관람 등이 화제가 되며 1980년대를 제대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 비단 <1987>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영화가 그 시대를 다루면서 스러진 사람들을 잊지 말자고 말해왔다. 그중에서도 2012년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작품 <남영동1985>는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불과 30년 전, 서울

<남영동1985>는 故 김근태 전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985년, 김근태 전 의원은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비롯한 경찰들로부터 22일 동안 끔찍한 고문을 받고 나온 그는 구체적으로 기억을 되살리고 기록한다. (덧붙이자면 <1987>에서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장’의 실제 인물은 당시 대공수사처 수장이었던 박처원인데, 그의 최측근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다. 박처원은 1988년 이근안의 도피를 지시하고 돕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만큼, <남영동1985>는 당시 상황을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1988년 6월 30일 출소 소감을 밝히고 있는 김근태, 옆은 인재근 여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시대를 그대로 담아낸 영화

<남영동1985>는 관객을 고문실에 가둬버린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의 배경은 오로지 어둡고 축축한 고문실뿐. 그곳에서 관객은 주인공 ‘김종태’(박원상)와 함께 고문받는다.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이 김종태의 얼굴에 물을 들이부을 때, 옷을 발가벗기고 정신마저 씹어 삼키려 할 때마다 숨을 멈추게 된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충격과 괴로움은 보는 사람을 덮친다. 

<남영동1985> 스틸컷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한 괴물을 비출 때다. 김종태를 고문하는 경찰들의 고민은 너무도 일상적이다. 애인이 나를 떠날까 봐, 봉급이 깎일까 봐, 야구 중계를 듣지 못할까 봐…. 그들이 김종태의 얼굴을 물에 처박으면서, 그의 발가락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서 태연히 나누는 대화는 진정한 공포로 다가온다. <남영동1985>는 누구라도 당할 수 있었고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었던 시대를 참혹하리만치 까발린다.

 

고개 돌려서는 안 될 진실

그러나 괴로워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불과 30년 전에 있었던 사실이자 누군가는 죽음으로라도 지켜내고자 했던 진실이다. 오늘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성취라 부를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모두 그 시절을 치열히 살아낸 자들로부터 이어지지 않았겠는가.
끝으로 <남영동1985>의 주연배우 박원상이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덧붙인다. 정지영 감독은 무대 인사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단다.

“여러분은 두 시간 힘드시겠지만, 이 작품을 만든 우리는 두 달 힘들었고, 과거의 그분들은 평생을 힘들어하다가 돌아가셨거나 지금도 아파하고 계십니다.
두 시간만 함께 아파하고 기억해봅시다. 그걸로 그분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남영동1985>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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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