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2017년 한해 최고의 국내 음반은 무엇인가? 당장 이별을 택한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음반이 떠오르고, 성기완의 부재에도 존재감을 과시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앨범도 생각난다. 포크음악 중에서는 김목인의 음반이 특히 좋았고, 오랜만에 돌아온 검정치마의 정규음반도 훌륭했다. 그 어떤 베테랑보다 뜨거웠던 신인 새소년, 이스턴사이드킥 해체 후 새 출발을 알린 ADOY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최고로 꼽을 만한 음반들을 뒤로하고 나만의 음반으로 꼽고 싶은 앨범들도 더러 있는 법이다. 여기 오롯이 나의 리스트로 간직하고 싶은 2017년 음반 리스트가 있다.

* 순서는 발매일 순이며 분량 한계상 리스트에서 재즈, 힙합, 아이돌 팝은 제외하였습니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
(201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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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하 끝잔향). 2016년의 끝자락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의 안다영이 이끄는 '안다영 밴드'의 출사표로 우리 앞에 나타난 이 밴드는, 그 길고 범상치 않은 산문체의 이름만큼이나 사려 깊은 가사와 콘셉트, 차분한 음의 서사로 내 귀를 잡아끌었다.
끝잔향이 2017년 한 해 동안 발표한 몇 차례의 작업물에서, 그 정체성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포스트락이나 슈게이징의 전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들의 음악에 대한 섣부른 예단이나 결론을 종용하기도 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허나 적어도 이 앨범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만큼은 장르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묵직함과 인공미를 덜어내어 보다 자연스러운 소리와 솔직한 언어, 느리지만 격조 있게 공간을 채워가는 느린 춤으로 끝잔향만의 세계를 묵상하는 데 성공했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 MV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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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해 끝잔향보다 더욱 잠잠히, 그러나 보다 깊은 심연과 거대한 세계를 동시에 그려낸 앨범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일 것이다. 2015년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모던록 음반', '올해의 음반' 등 2개 부문 수상을 하고도 그해 활동중지를 결정해야만 했던 밴드 로로스의 빈자리를 대신하겠다는 듯, 도재명은 반가운 사운드와 인상적인 연출로 2017년의 한 켠을 풍성히 장식했다.
완연한 포스트락의 몸짓에서 실험적인 팝의 언어로, 같은 듯 다르게 이어지는 로로스의 유지는 때로 공허할 만치 무심하고 서늘한 반주 위 차분하고 낭랑하게 제시되는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타이틀곡 ‘토성의 영향 아래 (Feat. 이자람)’의 가사처럼 일상의 철학으로 완성하는 본 앨범 속 '알레고리의 숲'은 우리가 그동안 시(詩)라고 불렀던 감성과 다르지 않다. 그 같은 작은 감동으로부터 절절한 록의 격정까지, 완벽한 드라마로 이 앨범은 듣는 이와 소통한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Feat. 이자람)’ MV

 

홍혜림 <화가새>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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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2집으로 돌아온 홍혜림의 <화가새>는 소소한 일상을 관조하는 세심한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지난 1집 <As A Flower>(2012)이나 EP <HONG HEALIM>(2015)처럼 건반 사운드를 기조로 소리에 대한 여러 시도를 얹어 아름다운 정경을 그리되, 현악 스트링 등 일부 악기 편성은 덜어내고 가사에 보다 집중해 그 의미와 상징성을 더했다.
일상의 생각을 꼼꼼히 스케치한 에세이집을 음반과 함께 엮어, 수필 한 편 한 편에 조응하는 각 트랙 속 가사의 서정을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꼼꼼한 편곡과 입체적인 소리 묘사로 채워 넣는다. ‘둥지 짓는 새’를 ‘부리로 연필 삼는 화가새’로 비유한 작가의 표현처럼 '언어적 사고와 상상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음악이 되며 음악이 청자에게 다시 그림과 음악이 되는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다.

홍혜림 ‘산책’ MV

 

팎 <살풀이>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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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쎈’ 음악 중 가장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는 음반은 긴 활동 끝에 첫 정규음반을 발표한 어비스의 <Recrowned>(2017.09.19)인 듯하지만 팎의 <살풀이>도 그에 못지않은 공격성과 에너지를 품고 있다. 프론트 맨 김대인이 밴드 '아폴로18'와 '아트모' 시절의 변칙적이고 세련된 역량을 이어가면서도, '팎'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맛보기로 보였던 장르 혼종의 파괴력을 더욱 농밀하게 선사한다.
그 주제를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로 설명하는 본 앨범의 기괴한 의식과 태도는, 단출한 밴드 구성으로 시도하는 원시적 강렬함과 보컬 김대인의 걸쭉하고도 날카로운 공격성으로 재현된다. 그런지와 슬러지 메탈, 하드코어 펑크를 어지러이 뒤섞으면서도 그와 같은 해외의 전통을 토속적인 사이키델릭으로 종합하는 <살풀이>의 사운드는 분명 이 앨범만의 것이다.

팎 ‘살(煞)’ 공식 쇼케이스 영상

 

한승석 & 정재일 <끝내 바다에>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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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한승석과 음악감독 정재일이 만나 3년 만에 내놓는 본 신작은 작금의 국악과 현대음악 크로스오버가, 비단 의미 있는 시도나 이색적인 사운드로 만족하고 마는 것이 아닌 조화롭고 안정적인 구상으로 어느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잘 들려주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소리가 뒤섞일 때 주고받는 합이 좋은 인터플레이가 있는가 하면 함께 하는 콤비플레이가 훌륭한 경우도 있다. <끝내 바다에>는 후자에 충실한 음반으로서, 한승석의 드라마틱한 소리 표현과 이를 떠받치는 정재일의 다채로운 사운드 프로덕션이 일정한 호흡 및 좋은 궁합으로 공존하여 각 노래마다 기세 좋고 인상적인 서사를 펼쳐낸다.

한승석 & 정재일 ‘자장가’ 라이브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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