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활기에 차 있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진열대에 넘치도록 쌓인 온갖 종류의 식품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뿌듯하고 즐거운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슈퍼마켓은 뮤직비디오를 찍기에 더없이 훌륭한 공간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을 두루 갖춘 뮤지션의 음악이라면 더더욱. 알록달록한 빛깔을 머금은 슈퍼마켓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네 편을 골랐다. 좋은 음악은 덤이다.

 

1. Rainbow Chan ‘Fruit’ MV

1990년 홍콩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시드니로 이주하며 자연스레 두 가지 언어와 문화를 익힌 레인보우 찬(Rainbow Chan)은 1980, 90년대의 칸토팝(Cantopop, 광둥어 팝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크게는 일렉트로닉 팝 장르를 구사한다지만, 그 안에서 매번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소리와 분위기를 표현하며 지루할 틈 없는 곡 전개를 보여준다. 과감한 신시사이저와 둔탁한 드럼 비트를 이용해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거나, 색소폰, 플루트 같은 관악기를 더해 신비롭고 진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앨범마다 폭넓은 장르와 스타일을 차용함으로써 팔색조 같은 매력을 드러낸 레인보우 찬의 아기자기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곡, ‘Fruit’를 만나보자. 산뜻한 건반 터치와 부서지는 드럼 비트의 찰랑대는 사운드가 야채와 주스가 빼곡히 진열된 슈퍼마켓을 배경으로 신선하게 흐른다.

 

2. Clubz ‘Popscuro’ MV

멕시코 출신의 듀오 Clubz는 미끈하고 감각적인 사운드로 주목받는 젊은 감성의 일렉트로닉 팝 밴드다. 호주 어쿠스틱 밴드 허스키(Husky)에서 각각 드럼과 기타를 연주하던 멤버, 코코(Coco)와 올란도(Orlando)로 이뤄진 듀오 프로젝트로, 2013년부터 고향인 멕시코 몬테레이를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펑크, 디스코, 팝을 적절히 믹스한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음악에서 2015년부터는 전자음을 사운드 전면에 배치해 음악의 결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청량한 기타 리프와 신스 사운드가 돋보이는 싱글 ‘Popscuro’의 뮤직비디오를 보자. Clubz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은근하게 흥을 돋우는 댄서블한 멜로디와 기분 좋게 뿅뿅 거리는 건반 소리는 여전히 건재하고, 매력적인 비디오가 더해져 오감을 자극한다.

 

3. Bisiugroup ‘一隻雞’ MV

스물두 살의 동갑내기 친구들로 결성된 대만 5인조 록밴드 Bisiugroup(美秀集團)은 대만 전통민요의 복고스러움, 내지는 ‘촌스러움’을 자신들의 음악에 손쉽게 비벼낸다. 1980~90년대 대만 뉴웨이브 록 음악의 영향을 받은 보컬 고보(Gobo)와 나머지 네 멤버의 폭넓은 음악적 취향이 담겨 만들어진 비슈그룹의 음악은, ‘복고’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으면서도, 20대 초반의 젊은 에너지와 재기발랄함을 동시에 포용한다. 올해 3월 첫 앨범 <Sound Check> 발매와 함께 유튜브에 공개한 '一隻雞(A Rooster)' 뮤직비디오를 보자. 슈퍼마켓 안에서 멤버들은 각각 무표정으로 상품을 진열하고 닭고기를 손질하며 악기를 연주한다. 인간의 과도한 사육으로 인해 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닭과, 외부의 환경에 손쓸 새 없이 휩쓸리는 청년들의 처지를 하나로 바라보는 참담한 심정의 노랫말이 키치한 영상과 하나가 되어 흐른다.

 

4. 水曜日のカンパネラ ‘ユニコ’ MV

수요일의 캄파넬라(水曜日のカンパネラ)의 뮤직비디오는 슈퍼마켓이 아닌, 넓고 허름한 시장통을 무대로 한다. 2012년 우연한 계기로 팀을 결성한 이들은 코믹하고 기발한 세계관을 특징으로 하는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다. 영상에서 신나게 시장통을 활보하고 다니며 춤을 추고 음식도 먹는 범상치 않은 인물의 이름은 코무아이(コムアイ). 그룹에서 노래와 공연을 도맡아 한다. 이밖에 작곡과 편곡은 켄모치히데후미(ケンモチヒデフミ)라는 멤버가 하고, 나머지 일은 모두 디렉터 에프(Dir. F)라는 멤버가 분담한다. 각각 역할이 확실히 나뉘어진 세 명이 모여 수요일의 캄파넬라를 이룬다. 유튜브에서 이들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을 빠짐없이 찾아 감상하길 바란다. ‘보는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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