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레거시 앨범 <Eye in the Sky>(1982)의 35주년 기념 박스 세트가 출간되었다. 모두 3장의 CD, 1장의 블루레이 디스크, 2장의 바이닐과 60여 페이지의 기념 책자, 그리고 2009년 사망한 멤버 에릭 울프슨(Eric Wolfson)의 작곡 일기로 구성된 이 세트의 기획은 전설적인 앨범 <Eye in the Sky>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Eye in the Sky> 박스세트 Unboxing 영상

<Eye in the Sky>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약 15년간 존속한 영국의 정상급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의 여섯 번째 앨범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푸른 바탕에 이집트의 ‘호러스의 눈’ 금색 문양이 새겨진 앨범 재킷은 당시 음반 컬렉터의 필수 아이템 중 하나기도 했다. 이 앨범의 인트로 연주곡 ‘Sirius’는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즈(Chicago Bulls)가 선수를 소개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였고, 이벤트 효과 음악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곡이다. ‘Sirius’와 앨범 타이틀곡 ‘Eye in the Sky’의 실황 영상을 감상해 보자. 노래를 자주 하지 않는 알란 파슨스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리드보컬을 맡았다.

Alan Parsons Live Project ‘Sirius’, ‘Eye in the Sky’(2013)

1948년생인 알란 파슨스는 18세에 영국 대중음악의 산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음향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참여한 레코딩을 몇 개만 꼽아보아도, 비틀스의 <Abbey Road>, <Let It Be>, 소프트 록 그룹 암브로시아의 데뷔앨범 <Ambrosia>,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 등 음악사에 기념비적인 앨범이 여럿이다. 그는 음향 엔지니어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영화 분야의 스탠리 큐브릭 감독처럼 되겠다”며 레코딩 디렉터의 영역까지 끊임없이 발을 넓혔다. 미국에서 천오백만 장 이상 팔린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Dark Side of the Moon>(1973)에서는 그를 ‘Important Contributor’라고 표기할 정도였다. 알란 파슨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차기작 프로듀싱 요청을 거절하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당시 유행에 따라 앨범의 첫 곡은 ‘인트로’ 연주가 차지했다. 인트로 ‘I Robot’

알란 파슨스, 그리고 그와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만난 에릭 울프슨이 주축이 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15년간 다양한 세션 뮤지션들과 함께 10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며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의 정상급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의 스틸리 댄(Steely Dan) 처럼 이들도 공연 투어에는 나서지 않았다. 스틸리 댄이 공연을 자주 하지 않았던 것은 무대 공포증 때문이었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경우 스튜디오에서의 미묘한 음향 효과를 라이브 공연에서 재현하기가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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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울프슨(좌)과 알란 파슨스(우) 콤비의 전성기 때 모습

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의 인기는 점차 낮아졌다. 11번째 앨범을 제작하면서 두 사람은 음악적 방향성에 이견을 표하며 결별하게 된다. 결국 이들의 11번째 앨범은 그룹 이름이 아니라 에릭 울프슨의 솔로 앨범으로 출간되며,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15년 역사는 끝이 난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발라드 ‘Time’(1981)

알란 파슨스는 연이어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Alan Parsons Live Project’라는 이름으로 투어에 자주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EMI의 부사장으로서 EMI 산하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운영을 잠시 맡기도 했지만, 더 많은 창작 활동을 추구하기 위해 운영직은 이내 내려놓고 음악 컨설턴트나 프로듀서 일을 계속했다. 2010년에는 후학 양성을 위해 자신의 음향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집대성한 <The Art and Science of Sound Recording> DVD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Don’t Answer Me’(1984)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히트 싱글이 되었다

알란 파슨스는 수많은 명반이 태어난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터줏대감 같은 인물이었으며 레코딩 프로듀서로서 그만큼 성공한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도 후회는 있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전성기 때 라이브 공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점이다. 그는 지난 2013년에 “우리도 90년대 중반이 아니라 80년대 말부터 라이브를 시작했다면 그 누구보다 성장했을 것이다”라며 후회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