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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후 40년이 된 그랜트 그린(Grant Green, 1935~1979)은 블루노트 레코드사의 스태프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낸 30여 장을 포함, 백 여장의 앨범 녹음에 참여한 재즈 기타리스트였다. 동시대의 웨스 몽고메리나 조지 벤슨과 같이 정상의 인기를 누리진 못했으나, 조지 벤슨이 가장 좋아하던 기타리스트로 그를 꼽았을 정도로 동료 뮤지션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가 사망한 지 10여 년이 지나 힙합 프로듀서들이 그의 펑키한 소울 음악을 경쟁적으로 샘플링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미발표곡들이 속속 출반되었고, 바이닐 음반은 한때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힙합으로 샘플링된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은 US3의 ‘Tukka Yoot’s Riddim’ 인데, 그의 오리지널 ‘Sookie Sookie’과 비교해서 들어보자.

그랜트 그린의 오리지널 ‘Sookie Sookie’
US3의 ‘Tukka Yoot’s Riddim’

43년의 길지 않은 일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면서도 큰돈을 벌지 못했고 그마저도 마약을 구입하느라 항상 쪼들렸다. 자식을 여섯이나 두었지만 객지에서 따로 살아야 했고, 장르를 불문하고 돈 되는 일을 가리지 않다 보니 지나치게 상업적이란 비난이 따라 다녔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채 캘리포니아 공연 일정을 위해 자동차로 직접 운전하여 미대륙을 횡단한 일화는 유명하다.

 

블루스가 깊게 묻어나는 기타리스트

아버지와 삼촌에게 어릴 때부터 블루스를 듣고 배운 덕분에 그의 음악에는 자연스럽게 블루스가 배어 나온다. 재즈를 연주하거나 팝, 또는 클래식을 연주해도 블루스가 들린다고 한다. 다른 재즈 기타리스트와 달리 복잡한 코드를 짚지 않고, 피크로 단음을 물 흐르듯이 친다. 고향인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실력파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그의 연주를 들어본 색소포니스트 루 도널드슨(Lou Donaldson)의 소개로 뉴욕에 진출하여 블루노트 레이블에 고용된다. 그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다.

앨범 <Visions>(1971)에 수록한 ‘Maybe Tomorrow’. 훗날 켄드릭 라마가 힙합 음악으로 샘플링했다
켄드릭 라마의 샘플링 버전 ‘Sing About Me, I’m Dying of Thirst’(2012)

 

재즈 역사상 손꼽히는 명연주 ‘Idle Moments’

그의 가장 유명한 연주곡은 앨범 <Idle Moments>(1964)의 타이틀곡이다. 15분에 이르는 긴 곡으로, 녹음에 함께 참여한 피아니스트 듀크 피어슨(Duke Pearson) 이 작곡했다. 제목의 의미대로 나른한 오후에 게으름 피우면서 느긋하게 듣기에 좋은 곡이다. 원래부터 느린 곡조인 데다 솔로로 나선 연주자들이 당초 약속보다 한 소절씩 더 연주하며 길어졌으나 마스터 테이크로 앨범에 수록되었다. 조 헨더슨(Joe Henderson)의 색소폰, 바비 허처슨(Bobby Hutcherson)의 비브라폰 등 당시 블루노트를 대표하던 콤보 구성이 돋보인다.

앨범 <Idle Moments>의 타이틀곡

 

정통 재즈에서 상업성으로의 일탈

그는 바쁘게 일했으나 돈은 모이지 않고 오히려 만 늘어났다.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과 같이 살기 위해 돈 되는 공연과 레코딩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마약 습관에 따른 문제도 있었지만, 당시 재즈 작곡으로 저작권료를 거둘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이 많았다. 소속사인 블루노트를 떠나 ‘버브(Verve)’로 잠시 이적도 해보았으나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상업적이라는 평론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점차 라디오에 자주 노출되는 펑크와 소울 음악을 시도했다. 그러자 수입도 늘어나면서 35세가 되던 해 디트로이트에 집을 마련하며 처음으로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먼저 사업가가 되어야 하고 아티스트는 부수적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음악을 하면서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프랑스에서 케니 버렐, 바니 케셀과 함께한 기타 트리오 실황(1969)

 

아들이 찾아 나선 아버지의 생애

그의 생애 마지막 모습에는 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30대 후반부터 심장에 이상이 왔고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의 공연을 위해 동부에서 서부로 자신의 차를 몰고 미대륙 횡단 여행을 강행했고, 다시 동부 뉴욕의 할렘 공연을 위해 자동차로 돌아오던 중 심장마비가 찾아온 것이다. 뉴욕 할렘 병원으로 급히 가던 도중 차 안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43세였다. 그는 여섯 명의 아이를 두었으나 로드 뮤지션의 처지로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었다. 장성한 둘째 아들 Grant Green, Jr.이 아버지의 생애를 담담하게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The Grant Green Story>(2015)를 제작하였다. 유튜브에서 세 편의 파일로 나뉘어 업로드되어 있고, 영어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The Grant Green Story> 예고편

그랜트 그린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던 부와 명성은 사후에야 찾아왔다.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음반사 창고에 묵혀둔 미발매곡들이 수십장이나 출반되었다. 1964년에 출반된 그의 명반 <Idle Moments>는 30년이 지난 1994년 <롤링 스톤> 지의 얼터너티브 차트 9위에 랭크되는 기현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가 40년 늦게 태어났다면 음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나 프로듀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