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가는 책이 나왔다. 40일 동안 호주를 여행한 내용이 담겼다. 아름다운 호주 오지의 풍경과 희귀한 동식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행 에세이임은 맞는데, 이 책에선 사진 한 장 찾을 수가 없다. 대신 펜으로 촘촘히 그린 그림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여행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요동치기 마련. 이 책에는 벅찰 만큼 행복하다가도 견딜 수 없이 짜증스러워지는, 여행의 순간순간이 솔직하게 묘사돼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신간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이야기다.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표지
펼칠 수 있게 된 겉표지는 하나의 일러스트 작품이다

 

손그림과 손글씨

<호주 40일>을 처음 펼친다면 살짝 당황할지 모른다. 깔끔하게 인쇄된 활자가 아니라 낯선 글씨가 반기기 때문에. 작가 밥장은 여행하며 직접 쓴 글과 그린 그림을 ‘그대로’ 책에 옮겼다. 이 시대에 누군가의 손글씨를 읽는다는 것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휘갈겨내린 단상과 떠오르는 대로 옮긴 문장이 도리어 진솔하게 다가온다. 무심한 듯 세밀하게 그린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책 속의 모든 그림은 밥장의 시각에서 그려졌다. 밥장은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에겐 인상 깊은 것들, 예를 들어 우연히 들른 카페의 쇼케이스나 길 위에서 만난 친구의 헤어스타일까지 세심하게 그렸다. 압도적인 풍경보다 이런 작은 마주침이 여행을 더욱 오래 기억하게 한다. <호주 40일>은 여행을 오래도록 맘에 남게 할 장면들의 모음집이다.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72~73쪽

  

사십 대 후반 막내의 기록

밥장이 무작정 홀로 호주를 여행한 것은 아니다. 이미 ‘집단 가출’이라는 이름으로 굵직한 여행을 해 온 허영만 화백이 그에게 호주 여행을 제안했다. 캠퍼밴으로 호주 중부와 북서부의 오지를 누비는 이 여행에 참여한 사람은 여섯 명. 그중 가장 어린 밥장은 자신을 ‘낡은 막내’라 부르며 ‘허영만과 형님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여섯 명이 24시간 내내, 무려 40일을 부대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여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큰 재미다.

“이렇게 된 마당에 막내 노릇 하면서 허영만과 형님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일까. 혹시 ‘꼰대’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행동으로 날 제대로 실망시킬까.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 밥장,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5쪽

“형님들, 오늘은 국에다 흰밥, 거기에 나물이랑 고추장 팍팍 넣어서 간단하게 먹자고 한다. 첫째. 국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끓이는 것도 일이지만 먹고 설거지가 많다. 잔반도 많아서 음식쓰레기 처리가 문제다. 국립공원에는 쓰레기 버리는 곳이 없다. 둘째 나물. 시금치는 어디서 구하고 골고루 다 만들어야 한다. (중략)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남이 해주는 음식에 간단한 건 하나도 없다!!”

- 밥장,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235쪽 

통영에서 진행한 밥장과 허영만 화백의 북 콘서트 라이브 중계

  

촌철살인 허영만

<호주 40일>에는 특별한 책 속 코너 ‘영만 짤’이 있다. 여행하며 허영만 화백이 한 말 중에 흥미로운 것들을 기록해둔 것. 영만 짤들을 읽다 보면 거장 만화가의 새로운 면모가 보인다. 한마디 말에 연륜이 그대로 묻어난다. 책의 감칠맛을 높이는 영만 짤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늙어서 외로운 게 아냐. 고집 때문에 외로워지는 거야.”

“잘 안 될수록 살살해. 안 그러면 그쪽이 다치거든.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무슨 겨울이 이러냐? 엿같네.”

“촌각을 느끼며 살아야 돼. 나도 내가 일흔이 될 줄 알았겠냐?”

- 밥장,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중 허영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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