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에 대한 찬사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운드 연출이 탁월하다’라는 말이다. 그의 영화 <컨택트>를 보고 나온 친구가 비명처럼 내지른 한 마디, “사운드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연기, 영상미, 스토리가 아닌 ‘사운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에서 유독 전쟁(폭력)의 공포를 많이 다룬다. 그리고 이 ‘공포의 질감’을 세세하게 완성하는 것은 바로 사운드다. 사운드를 통해 드니 빌뇌브의 세 가지 명화를 더듬어보자. 어쩌면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매뉴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 전쟁의 소리로 공포를 완성하다 <그을린 사랑>(2011)

<그을린 사랑> 버스 학살 신

전쟁의 비극을 다루는 <그을린 사랑>에서 ‘전쟁의 소리’는 그 자체로 공포를 완성한다. 진정한 공포엔 음악이 필요 없다. 영화 내에서 죽음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음악이 사용된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음악은 그 공포가 지나가고 나서야, 그 자리를 더듬듯 묵직한 음으로 뒤늦게 들려올 뿐이다. 이 소리는 과장되지도 않는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총소리마저 너무나 현실적이다.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소리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너무 크게 부각하지도 않는다. 현실이어서 더욱 무서운 공포가 소리로 나타난다. 실제 전쟁에서 반복되는 죽음 위에 레퀴엠을 깔아주지 않듯, 총소리의 공명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 전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을린 공포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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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장박동으로 이루어진 음악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2015)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The Beast'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는 사실적인 묘사로 ‘극화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컷 분할과 과도한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선을 과장되게 나타내기보다, 오히려 카메라는 그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제삼자의 시선이 되기를 자처한다. 대신 이 영화의 극적 요소를 대변하는 것은 사운드다. 이 사운드는 음악과 효과음이 되어 인물의 감정에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에는 생각보다 음악이 꽤 자주 쓰이는데, 특히 이 음악은 극 중 인물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대신하는 듯한 낮은 음역대와 비트를 가지고 있다. 음악에 따라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다 보면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과 공포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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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통할 수 없는 소리의 공포 <컨택트>(2016)

<컨택트> O.S.T 2번 트랙. Jóhann Jóhannsson ‘Heptapod B’

<컨택트>의 사운드는 소통이 차단된 공포를 느끼게끔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처음으로 외계인을 대면했을 때 관객에게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방사능 보호복 아래로 들리는 그의 거친 호흡이다. 외부와 차단되어 안으로만 울리는 그 호흡은 꽤나 길고 끈덕지게 계속되며, 그 사운드를 듣고 있는 관객들도 덩달아 미지와 마주하는 공포감에 노출된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인 요한 요한슨은 음악 속에서 화음이나 멜로디를 빼고, 그 자리를 금속의 소리, 혹은 기계음으로 채웠다. 미지의 무엇에서 비롯되는 공포가 소리로 재현되는 것.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음악과 효과음의 차이는 미미하다. 외계인의 소리, 우주선의 움직이는 소리 등이 음악과 고스란히 섞여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컨택트> O.S.T의 2번 트랙으로 대체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의 나열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어떤 긴장감을 부여하는지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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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뇌 빌뇌브의 단편 <Next Floor>

드뇌 빌뇌브 단편 <Next Floor>

마지막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Next Floor>라는 단편영화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소개한 세 명화가 제작되기 전에 만들어진 이 단편영화는, 앞서 소개한 사운드의 특징을 단 11분 동안 고스란히 압축시켜 놓았다. 대사의 공백을 사운드가 어떤 식으로 채워 담으며, 어떻게 공포를 강조하는지 ‘들어’ 보자.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