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닥친 강추위에 한껏 움츠리게 되지만, 이맘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겨울이야말로 공연계의 최대 성수기라는 것. 특히 다채롭고 풍성한 장르는 뮤지컬이다. 연말을 앞두고 대작 뮤지컬이 연이어 선보이고, 연인이나 가족 단위 관객에게 포근한 분위기를 전하는 창작 뮤지컬과 소규모 작품들도 있다. 이 계절에 찾아온 뮤지컬들 중 지금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거나 곧 개막을 앞둔 작품 네 편을 소개한다. 겨울이 배경이거나, 추위를 잊을 만한 온기를 전하는 따스한 작품들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포스터


백석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작품을 관객들은 어느새 ‘나나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2016년 11월 초연을 올려 올해 1월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따스하게도, 아프게도 한 작품이 겨울을 앞두고 재연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초연 창작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했고,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2016 뮤지컬 작품상’, ‘극본, 작사상’, ‘연출상’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공연 스틸컷


백석은 기생 자야를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3년간의 연애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런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다 노인이 된 자야 앞에 돌연 옛사랑이 나타나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상상의 이야기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스무 편이 넘는 백석의 시를 대사와 노래 가사에 녹여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 세 명의 배우와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관객들의 감성을 충전해주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올해는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강필석, 오종혁, 정인지, 최연우 배우를 비롯해 김경수, 고상호, 진태화, 정운선, 곽선영 등을 함께 캐스팅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누구라도 공연을 보고 나면, 겨울밤 애틋한 마음이 묻어나는 백석의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백석의 시가 남긴 여운은 이 겨울이 지날 때까지 마음속에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티저
공연 일정 10월 19일~1월 28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더 라스트 키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포스터


포스터를 가득 채운 새하얀 눈, 그리고 눈밭 위에 놓인 반지가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는 1980년 발표된 프레드릭 모튼(Fredric Morton)의 소설 <A Nervous Splendor>를 원작으로 한 작품. 합스부르크 황후 엘리자벳의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가 31세의 나이에 연인 마리 베체라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2009년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출간됐다. 이 이야기는 황태자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뮤지컬은 2006년 헝가리에서 초연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와 독일, 일본 등에서 공연했으며 2012년 한국에서 초연했다. 당시의 제목은 <황태자 루돌프>. 2014년 공연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이번 공연은 2017년 시즌에 <더 라스트 키스>로 제목을 바꾸고 무대와 안무, 하이라이트 장면 등에 변화를 줬다. 화려한 유럽 왕실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최신 디자인 경향을 반영해 간결한 스타일로 무대를 구성하며 기존 작품보다 더 서정적인 감성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의 음악이 극을 채우며, <레베카>, <팬텀> 등을 연출한 로버트 요한슨(Robert Johanson)이 연출을 맡고 <팬텀싱어>의 멘토로 잘 알려진 김문정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황태자 루돌프 역을 맡은 배우는 카이, 전동석, 정택운, EXO의 수호, 그리고 마리 베체라 역은 김소향, 민경아, 에프엑스의 루나가 맡았다.

공연 스틸컷


<더 라스트 키스>는 개막 직후부터 매진 소식이 들려올 만큼 올겨울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결말은 연인이 함께 죽음을 맞는 비극일지언정, 귀를 사로잡는 음악과 함께 뮤지컬로 감상하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감동을 남긴다. 겨울날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루돌프 역 전동석 '알 수 없는 길' MV
공연 일정 12월 15일~3월 11일
장소 LG아트센터

 

 

<아이 러브 유>

뮤지컬 <아이 러브 유> 포스터


로맨틱 뮤지컬을 표방하는 <아이 러브 유>는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는 작품. 1996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2004년 한국 라이선스 공연으로 초연한 이후 수차례 공연하며 흥행했다. 중소규모 로맨틱 뮤지컬의 붐을 이끌었던 이 작품이 올해 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사랑’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순간만이 아니라, 첫 만남부터 연애 과정과 결혼, 황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 정곡을 찌르는 대사로 이어가는 에피소드 속에는 관계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공연 스틸컷


옴니버스 형식인 만큼, 상황에 따라 배우들의 변신을 감상하는 것도 즐겁다. 총 2막 19장에 등장하는 60여 개의 캐릭터를 단 4명의 배우들이 연기한다. 고영빈 배우가 이 작품으로 처음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베테랑 배우 송용진이 캐스팅됐고, 조형균, 김찬호, 이충주, 정욱진도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친다. 지난 2013년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공연 무대에 데뷔한 간미연은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주목받고 있다.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차수진, 이하나, 이정화, 안은진이 연기하는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캐릭터도 기대된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연령대의 관객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일 것. 소중한 사람과의 따스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자, 지금 이 순간 혼자라 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 스팟 영상
공연 일정 12월 14일~3월 18일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포스터


러시아의 겨울 풍경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50명에 달하는 캐릭터와 러시아 귀족 상류사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걸작으로 지금까지 수차례 영화화됐다. 얼마 전에는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려, 다양한 안무로 재해석한 발레 작품으로도 만날 수 있었다. 1월에는 이 작품이 뮤지컬로 찾아온다. 러시아의 뮤지컬 프로덕션인 ‘모스크바 오페레타 씨어터’의 흥행작이 세계 최초의 라이선스 제작으로 한국 초연할 예정.
 

공연 스틸컷


이 작품은 러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가수이기도 한 율리 킴이 소설에 담긴 인간에 대한 통찰을 가사로 표현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연출가 박칼린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지난 7월에 진행한 배우 오디션에는 오리지널 작품의 연출가 알리나 체비크(Alina Chevik), 안무가인 이리나 코르네예바(Irina Korneeva) 등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행된 오디션에서 안나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는 옥주현과 정선아, 그리고 안나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장교인 브론스키 역에는 이지훈과 민우혁, 안나의 남편 카레닌 역에는 서범석이 캐스팅됐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연출가와 배우들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 대거 참여한 만큼, 또 하나의 겨울 명작이 되리라 기대된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스팟 영상
공연 일정 1월 10일~2월 25일
장소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메인 이미지 출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티저 영상 이미지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