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출신의 재즈 색소포니스트 얀 가르바레크(Jan Garbarek)의 음악은 재즈 클럽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듣는 것보다는 한적한 대자연을 여행하면서 듣기를 추천한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대자연 풍광을 만끽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깨끗하고 냉철하며 이지적인 그의 음악은 환경 재즈(Environmental Jazz)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많은 여행 사진가가 그들이 찍은 풍경 사진 슬라이드의 배경음악으로 얀 가르바레크의 음악을 선택하는 이유다. 그는 노르딕 재즈(Nordic Jazz)를 대표하며 가장 유럽적인 재즈를 추구하는 뮤지션으로 손꼽힌다.

앨범 <Visible World>(1996)의 'Red Wind'

 

전쟁 포로의 아들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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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가르바레크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중 노르웨이에 억류된 폴란드 포로였다. 어머니는 노르웨이 농부의 딸이었지만, 당시 노르웨이 법규 문제로 그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국적을 가질 수 없었다. 얀 가르바레크는 어린 시절 북유럽에 와있던 미국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매료되어 콜트레인의 ‘Giant Steps’을 한 소절씩 따라 연습하곤 했다. 그리고 15세에는 오슬로(Oslo)에서 열린 재즈 대회에 우승하며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를 맨 먼저 알아본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조지 러셀(George Russell)은 그를 두고 “장고 라인하르트 이후 유럽 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첫 재즈 뮤지션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앨범 <Rites>(1998)의 타이틀곡

 

세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곡 ‘M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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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자렛(우)과 함께

얀 가르바레크는 독일의 신생 재즈 레이블 ECM에서 음반을 내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같은 레이블 소속의 키스 자렛과 유러피언 쿼텟(European Quartet)에서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 자렛과의 두 번째 음반 <My Song>(1978)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녹음되었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My Song’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색소폰 음색을 들은 재즈 팬들은 이 곡의 연주자가 누군지 확인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생소했던 ‘얀 가르바레크’ 라는 이름이 전 세계 재즈 팬에게 명확히 각인되었다.

자렛-가르바레크 콜라보의 대표곡 'My Song'

 

힐리어드 앙상블과의 콜라보

얀 가르바레크는 한때 미국의 ‘아방가르드 재즈’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는 “프리재즈가 정말로 자유로운 것이라면 왜 모든 프리재즈 음악이 비슷한 걸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포크와 인디언 음악에 뿌리를 둔 곡을 만들어 ECM 뮤지션들과 함께 발표했다. 실험적인 시도에 대한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음반 판매는 신통치 않았고, 그의 개인 빚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중 중세음악을 하는 영국의 보컬 그룹 힐리아드 앙상블(The Hilliard Ensemble)과의 콜라보 앨범 <Officium>(1994)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앨범은 ECM의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음반 중 하나로 남았다.

앨범 <Officium>의 'Parce mihi domine'

 

유럽을 대표하는 노르딕 재즈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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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

어린 시절 재즈 음악을 알게 해준 존 콜트레인, 10대의 젊은 그를 재즈 신에 데뷔하도록 한 조지 러셀, 협업을 통해 그를 성공적인 뮤지션으로 이끈 키스 자렛 모두 미국 재즈 뮤지션이었지만, 얀 가르바레크는 나이가 들수록 미국 재즈에서 멀어졌다. 대신 유럽의 중세 교회음악이나 민요에 기반을 둔 유럽적인 재즈를 선보이며 ECM을 대표하는 색소포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2004년에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킴 카쉬카쉬안(Kim Kashkashian)과 함께한 앨범 <In Praise of Dreams>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그해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상을 받았다. 그의 딸 안자(Anja) 또한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이다.

독일 부르크하우젠 재즈 페스티벌(2006)

 

얀 가르바레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