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나문희가 77세의 나이와 연기 인생 56년 만에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대상을 비롯한 6관왕을 차지하며 2017년의 연말 트로피를 휩쓸었다. 생애 열일곱 번째 영화이자, 자신의 첫 주연작이기도 한 <아이 캔 스피크>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이 영화에서 나문희는 누군가의 엄마, 또는 할머니가 아닌 ‘옥분’이라는 주체적인 인물로 등장해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연기를 펼친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라는 쉽지 않은 캐릭터에 도전한 나문희의 의미 있는 연기에 수많은 영화제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제54회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나문희의 수상 소감

나문희는 수상소감으로 “나의 친구 할머니들. 내가 이렇게 상 받았다. 여러분들도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서 상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70대의 나이에 공로상이 아닌 여우주연상의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끝없는 도전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믿고 보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매력 포인트 몇 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아이 캔 스피크>는 크게 두 챕터로 전개된다. 민원왕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그리는 티격태격한 앙숙 구도는 영화 전반부에 깨알같이 삽입되어 관객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내 옥분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심이 밝혀지며 분위기가 전환되고, 이 영화의 발판이 되었던 2007년 미 의회 공개 청문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휴먼 코미디라는 대중적인 틀 안에 녹여낸 영화는, 용기 있게 전 세계 앞에서 증언한 그녀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제시한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차마 못 한 이야기를 ‘민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분출하려 했던 민원왕 할머니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영리하게 비틀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신스틸러를 다 모았다

‘옥분’의 이웃 봉원동 사람들. 왼쪽부터 배우 염혜란, 성유빈, 이상희
‘민재’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명진구청 사람들. 왼쪽부터 박철민, 정연주, 이지훈

특유의 예의 바르고 말끔한 이미지로 극 중 옥분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우 이제훈의 연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각각 탄탄한 연기력과 매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총출연해 완성도를 높인다. 먼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나문희와 모녀지간으로 출연하며 연기 호흡을 쌓은 배우 염혜란이 옥분이 운영하는 수선실의 VIP 손님이자 둘도 없는 친구 '진주댁'으로 분해 허물없는 우정을 보여준다. 앞서 영화 <파파로티>(2013)에서 이제훈의 아역을 맡았을 만큼 똑 닮은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성유빈은 4년 만에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민재’(이제훈)의 동생 ‘영재’를 차분하게 연기한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스카우트>(2007),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김현석 감독 대부분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배우 박철민이 맡은 ‘양팀장’은 도깨비 할매 옥분의 민원 폭주를 20년간 몸소 감당해온 ‘산증인’이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특유의 능청스럽고 감칠맛 나는 연기를 펼쳐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코믹한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나문희라는 배우의 설득력

무엇보다 희로애락이 한데 뒤엉킨 영화에서 우직하게 극을 이끌어 가는 나문희의 에너지를 잊을 수 없다. 자칫하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전반부의 코믹 요소가 후반부에 숨겨둔 영화의 ‘진짜 이야기’로 전환하는 흐름이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오롯이 나문희라는 배우가 지닌 설득력 덕분이다. “나라를 위해서, 배우들을 위해서,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서 한몫하겠다”고 말한 나문희는 정말 남김없이 다 쏟아부었다.

<아이 캔 스피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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