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아쉬움 속에 스튜디오 지브리는 해체했지만 다행히 그 계보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2017년 국내 개봉한 <메리와 마녀의 꽃>은, 지브리의 꿈과 낭만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물론 오늘날 3D 애니메이션이 더 익숙할 아이들까지 만족시킬 동심 가득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비주얼로 또 하나의 꿈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3차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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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

 

1. 메리의 동심

<메리와 마녀의 꽃> 속에 들어찬 동심과 낭만은 곧 주인공 메리의 순수한 호기심과 지체 없는 용기로 그려진다. "변화를 원할 때 메리처럼 용기 있게 한 발을 내디디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전언처럼 주인공 메리는 궁금한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전형적인 모험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어찌 보면 충동적인 사고뭉치처럼 보이지만 예의가 있고 자기 일에 책임질 줄도 아는 이 빨간 머리 소녀가, 할머니 시골집에 왔다가 우연히 신비로운 숲을 발견하면서 줄거리는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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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가 그렇듯 이 이야기 역시 메리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메리는 정원사 제베디 할아버지가 조심하라는 주의를 준 것이 무색하게도 꽃받침을 끊어뜨리고, 할머니 샬롯과 이웃 소년 피터가 가지 말라는 안개 낀 숲에 한사코 들어서며, 마녀 교장 멈블추크의 숱한 경고에도 거짓말을 하여 결국 사건을 키운다. 메리의 못 말리는 호기심에 어떤 이는 속이 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그만한 나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법한 작은 실수와 거짓말이다. 도리어 메리는 언제든 실수를 바로 잡을 용기와 솔직함을 가진 소녀로서 벌어진 사건을 거침없이 해결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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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건 메리는 항상 거침이 없다

 

2. 관객의 향수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지브리 내에서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로 꼽히던 사람이고, 참여 제작진의 80%가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이니만큼, <메리와 마녀의 꽃>은 그 무대의 비주얼로 우리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바라고 기대해왔던 환상적이고 아기자기한 상상력을 다양하게 교차하여 보여준다. 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직접 비행 장면이나 부유감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는 요네바야시 감독의 비행 장면 연출은 지브리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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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자주 등장하는 비행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 영화에는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과 한쪽에 자리한 신비로운 숲, 그리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 만나게 되는 마법학교 엔돌 대학의 세계 등 <천공의 성 라퓨타>(1986)와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모노노케 히메>(1997)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같은 지브리 대표작들 속 세계가 하나로 녹아 있다. (실제로 감독은 21세기의 <마녀 배달부 키키>를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국 작가 메리 스튜어트의 아동 소설 <작은 빗자루(The Little Broomstick)>을 원작으로 차용했다는 마법학교 설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해리포터 시리즈' 속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떠오르게 하기도 해 또 다른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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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팬이라면 반가워할 익숙한 이미지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3. 영화 밖 낭만

주인공 메리의 콤플렉스가 도리어 자랑이 되고 성장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은 성장동화에 흔히 기대하는 특유의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찬 분위기를 전달한다. 동시에 그만의 분명한 철학도 있다. 과학과 마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교훈은 기술과 인간, 또는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고, '인간의 힘으로 손을 대선 안 되는 힘'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자연스레 상기하며 영화 밖 그만의 이상과 낭만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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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제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 같은 주제나 세계관의 작품이 무거운 철학이나 지브리를 향한 그저 아련하고 슬픈 향수로만 이어지지 않는 것은 복잡한 플롯이나 불편한 장면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볍고 경쾌한 모험에 초점을 맞춘 연출 덕분이다. 이를 위해 작품은 시종일관 음악이 끊이지 않도록 해 귀를 즐겁게 하면서도 메리의 불행이나 상처는 감추어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낸다. 만일 스릴 넘치는 모험이나 지브리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지브리를 사랑한다면 또는 춥고 삭막한 겨울에 어울리는 밝고 따뜻한 서정을 원한다면 마음에 들 법한 귀여운 작품이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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