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희극만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오롯이 담지 못한다. 그렇다고 삶 자체가 완연한 비극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면 그도 거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이 더 현실 세계와 닿아있느냐 묻는다면 필자는 두말할 것 없이 비극을 고를 것이다. 우리는 지구별에 만연한 불편한 진실들과 부대끼며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다. 그 모든 불편함을 외면한 뒤에야 희극뿐인 세상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블랙코미디는 통찰과 재치가 동시에 돋보이는 매력적인 장르다. 유희적 존재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지적인 농담처럼 보인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낯선 나라 핀란드에는 블랙코미디의 장인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감독이 있다. 그는 1983년 <죄와 벌>을 시작으로 약 29편의 블랙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2017년 올해는 신작 <희망의 건너편>까지 발표한 현재진행형의 아티스트다. 그는 보통 부랑자, 노동자, 이민자, 불법체류자, 난민 등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카우리스마키의 관심이 이들에게 향한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가 조금은 손에 잡힐는지 모르겠다. 그의 영화엔 언제나 인간 생활의 기본 요건인 의식주를 향한 갈망이 담기지만 결코 손쉬운 감상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눈에 띈다. 핀란드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무표정의 나열이다.

 

감정의 미니멀리즘 미학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인물들은 분노할 때나 농담을 할 때도, 심지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순간까지도 줄곧 무표정을 고수한다. 그의 여러 영화에서 페르소나로 등장하는 배우 ‘카티 오우티넨’과 ‘얀 히티아이넨’의 무표정은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의 대표적 얼굴이자 심상이다. 이렇게 감정을 절제한 무표정이 남기는 효과는 뭘까.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일찍이 무표정의 선례로 남은 영화들이 있다.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대사로 처리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무표정으로 대신했다.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로 유발된 웃음 뒤에 자연스레 페이소스가 따라오는 것은 키튼과 채플린의 무표정이 남긴 위대한 성취 중 하나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 역시, 감정의 가지치기 후 남겨진 태고의 밋밋한 표정들이 되려 페이소스를 촉발한다.

카티 오우티넨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병폐 속에서, 무표정만큼 적절한 응답이 있을까. 어찌 됐건 우리는 이 세계 안에서 분투하며 살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무표정은 최소의 비용으로 이루어내는 나름의 훌륭한 항거 방식이다. 가장 정적인 얼굴이 곧 커다란 동력을 가진 얼굴인 셈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음악

그의 영화에 빠지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주류 사회의 변두리를 근근이 유랑하는 소시민들에게도 유희는 있기 마련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음악이다. 큰 비용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진입 장벽이랄 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흔하디흔한 것들이 이들의 팍팍한 삶에 끼어들 때 이 세 가지 유희의 소구는 유독 특별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한 시간 반짜리 러닝타임인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는 소박한 무대와 음악이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한다. 무표정의 미학과 더불어, 활동사진에 음악을 결합했던 무성영화 시대를 향한 카우리스마키의 예찬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보헤미안의 삶>(1992) 스틸컷

신기한 것은 영화가 내뿜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세계관이 따뜻함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위기에 처한 인물을 처지가 조금 나은 이웃이 선뜻 돕는다.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나 ‘쿨’한 태도로. 이 대목을 감상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온정주의가 문제를 해결한 순간의 ‘안도감’이라는 편협한 결론이다. 언제까지나 이 연대는 계층의 벽까지 허물지는 못한다는 지점이 주요하다. 그저 오늘 하루 정도는 어렵지 않은 자가 당장 난처한 자를 돕고, 도움을 받은 자는 나름의 방식대로 성의를 돌려줄 뿐이다. 씁쓸한 뒷맛까지 지우긴 어려울 테지만 분명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이 폐쇄적인 연대의 힘을 믿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냉소가 넘쳐나는 그의 영화들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 희망의 불씨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희망의 건너편> 포스터
<희망의 건너편> 스틸컷

카우리스마키가 올해 발표한 신작은 제목마저 <희망의 건너편>이다. ‘희망’과 ‘건너편’이라는 단어의 조합에 호기심이 생긴다. 희망의 건너편에는 과연 희망보다 더 희망적인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과는 다른 암울한 어떤 것이 도사릴 것인가. 아직 국내 개봉이 요원한 상태나 지금보다는 많은 관객이 이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기를 바라며 대표 작품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스틸컷

카우리스마키식 유머가 폭주하는 작품이다. 김무스를 연상시키는 뾰족 머리와 그 머리를 닮은 뾰족구두가 시그니처인 여덟 장정이 있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즈’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는 이들은 툰드라를 떠나 미국 진출의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 형편없는 음악이라는 평가와 함께 캐스팅 매니저의 사촌 결혼식에나 가서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멕시코로 향한다. 밴드는 아메리카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에서 로큰롤, 컨트리뮤직, 하드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얼렁뚱땅 섭렵해간다. 한편, 얼마 되지 않는 수입마저 매니저의 독단과 착복으로 낭비되자 이들은 혁명을 꾀한다. 인디 영화계의 거장 짐 자무쉬의 까메오 출연 장면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까지 있는 작품.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클립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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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소녀>(1989)

<성냥공장 소녀> 스틸컷

카우리스마키의 세계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척박한 현실에서도 묘한 희망이 솟아나는 이야기와 가느다란 의지마저 상위 계층에 굴복당하고 마는 이야기로. <성냥공장 소녀>는 후자의 선상에 있는 작품이자 프롤레타리아 삼부작 중 한 편으로 거론된다. 그만큼 가장 냉소로 점철된 내러티브를 띄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성냥공장에 근무하는 소녀 ‘이리스’(카티 오우티넨)는 엄마와 계부의 생활비 벌이를 전담하지만 옷 한 벌의 사치조차 부리기 어렵다. 기계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그녀에게도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픈 욕망이 있지만 세상은 연이은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성냥공장 소녀> 클립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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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아브르>(2011)

<르 아브르> 스틸컷

가봉에서 출발해 프랑스의 르 아브르 항구에 도착한 컨테이너에서 난민들이 발견된다.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쳐 버린 소년 ‘이드리사’(브론딘 미구엘)를 경찰들이 쫓고, 구두닦이 노인 ‘마르셀’(앙드레 윌름스)은 우연히 이드리사를 발견해 자택에 숨겨준다. 그런 와중 마르셀의 아내는 난치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마르셀은 이드리사를 어머니에게 보내주기 위해 돈을 모으고 동네 주민들도 합심해 소년을 숨겨준다. 불법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는 당국의 명을 받은 경감은 마르셀의 턱 밑까지 추적하는데, 이드리사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카우리스마키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단연 공동체 의식과 따뜻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희망에 대한 담백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최근작이다.

<르 아브르>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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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이래 노동계급을 향한 애정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자칫 뻔한 감성으로 도달하기 쉬울 ‘희망’이라는 명제가 그 만의 필치로 그려낸 영화들에선 위화감 없이 녹아들고 있다. 그의 눈길이 노동자로 시작해 이제는 난민까지 가 닿았다. 냉혹한 현실감각과 위트가 공존하는 감독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세계가 궁금해진다면 누구라도 그의 영화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마친 건지도 모른다.

 

Writer

예측 불가능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을 닮은 영화를 사랑한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지금에 도착한 필자가 납득하는 유일한 진리는 '영영 모를 삶'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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