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7월 영국령 캐나다에서 두 명의 하인이 그들의 고용주와 그 연인을 살해하고 귀중품을 훔쳐 도주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뉴욕주에서 체포된 남녀는 20세의 제임스 맥더못(James McDermott)과 16세의 그레이스 마크스(Grace Marks) 였다. 당시 캐나다를 떠들썩하게 한 희대의 살인사건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맥더못은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 졌지만, 그레이스의 경우는 재심이 진행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의 여성이었으며, 두 사람의 진술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맥더못의 진술대로 적극적으로 살인을 교사한 악녀가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변론하지 못한 단순 종범으로 판결이 났고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174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사건을 픽션으로 그린 미니시리즈 <그레이스>를 소개한다.

미니시리즈 <그레이스> 공식 예고편
그레이스 마크스(좌)와 제임스 맥더못(우)의 스케치

 

그레이스는 악녀인가, 시대의 피해자인가?

캐나다 국영방송 CBC와 넷플릭스의 6부작 미니시리즈 <그레이스>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로 힘겨운 하녀 생활을 이어오던 그레이스가 어떻게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지를 추적한다. 체포된 두 살인 피의자 중 남자는 바로 교수형에 처해지나 여자는 논란 끝에 감형되는데, 이 사례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오랜 젠더 고정관념의 사례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된 세기의 재판에서 두 피의자 모두 순순히 유죄를 받아들였으나, 세부적인 역할이나 범행 동기는 오랜 논란의 대상이었고 진술 이외의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사건 발생 15년 후 정신과 의사 조던은 15년간 수감생활을 한 그레이스의 가석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그녀의 기억과 정신세계를 들어가 본다.

<The Thomas Kinnear Murder> 다큐멘터리 영상

 

마가렛 애트우드의 원작 소설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인 마가렛 애트우드는, 베스트셀러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1985)를 집필하면서 이 유명한 살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 하녀의 비천한 삶이라는 관점에 집중하여 사건 기록을 뒤지며 10여 년을 구상하여 마침내 소설 <알리아스 그레이스(Alias Grace)>(1997)를 출간하였다. 그는 환경, 인권, 현대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 작품으로 맨 부커상, 카프카상, 아서 C 클라크상에 이어,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원작에 기반하여 훌루(Hulu)에서 제작한 <시녀 이야기> 시즌 1이 2017년 에미상 8관왕에 올랐다.

<그레이스>의 원작자 마가렛 애트우드와 제작자 사라 폴리(Sarah Polley)의 인터뷰

 

19세기 캐나다를 되살린 배경

그레이스가 실제 수감되었던 킹스턴 감옥이 주요 배경의 하나로 등장한다. 1833년 건설되어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형무소 중의 하나인 킹스턴 감옥은, 199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80년 만에 공식적으로 역할을 다한 2013년부터는 일반인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또한, 촬영지로 나오는 저택에 걸린 그림은 덴마크 국립미술관의 18~19세기 그림을 무료로 임대하여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를 살렸다.

<그레이스> 메이킹 영상

 

그레이스 역의 배우 사라 가돈

캐나다 배우 사라 가돈(Sarah Gadon)은 희대의 악녀인지 순박한 희생자인지 알 수 없는 양면성을 지닌 ’그레이스’를 잘 소화했다. 캐나다 TV 드라마의 조연과 단편영화 출연으로 연기력을 쌓던 그를 영화계로 발탁한 이는 미스터리 영화의 대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감독이며, <그레이스>에서도 목사 역으로 잠깐 출연하였다. 사라 가돈은 2016년부터 영화의 주연급으로 부상하면서 대작 <그레이스>에 발탁되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사라 가돈이 출연한 단편영화 <Yellow Fish>(2012)

그레이스 마크스는 3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면되었다. 그 후 뉴욕주 북부 지역으로 간 후 모든 기록에서 사라졌다. 아일랜드의 가난한 석공의 딸로 태어나 12세에 캐나다로 이주하였고, 4년 동안 하녀로 일하다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30년의 감옥 생활을 한 것이다. 그녀의 기구한 삶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척박한 여성 인권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