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상업영화의 해일 속에서도 좋은 독립영화는 계속해서 탄생해왔다. 그중에서도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관객들을 매료시킨 영화라면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2017년 12월 국내외 대작들 사이에서 개봉한 웰메이드 독립영화를 두 편을 소개한다. 오랜 연인이 겪는 상황과 감정을 과장 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그려낸 영화 <초행>과 흑백영화 특유의 낭만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블랙코미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다. 두 편 모두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머쥐었다는 점, 독립영화가 주목하는 배우들이 두루 출연한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녔다. 무엇보다 ‘저예산 영화’로 생각하기 어려운 뛰어난 완성도와 감각적인 연출이 어김없이 마음을 훔친다.

 

<초행>

The First Lap |2017|감독 김대환|출연 김새벽, 조현철

방송국 계약직 ‘지영’(김새벽)과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수현’(조현철)은 7년 차 커플이다. 결혼 적령기가 다 됐는데 직장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서로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에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잔뜩 깔려 있다. 장편 데뷔작 <철원기행>(2016)으로 주목받은 김대환 감독의 신작으로, 청춘들이 느끼는 현실의 불안과 고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놓인 인물들의 관계와 일상적 상황에서의 작은 파장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거나 심각한 영화는 아니다. 잔잔한 사건 속 불쑥 튀어나오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이를 뻔뻔스럽게 풀어가는 배우들의 애드리브와 재치가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야기를 채워가는 특별한 연출방식에 있다. 김대환 감독은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주인공은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할까’라는 식의 큰 상황만 던져 놓고, 배우들이 알아서 각자의 이해와 애드리브로 공간을 메꾸도록 했다. 즉 이 영화는 '결혼의 의미'라는 거시적 질문의 답을 찾고자 했고, 그래서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미시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걷기왕>(2016), <그 후>(2017) 등 작품에서 자신만의 호흡으로 캐릭터를 꾸려온 김새벽이 ‘지영’ 역을 맡아 애써 힘주지 않는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차이나타운>(2015), <마스터>(2016), <터널>(2016) 등 영화에서 짧지만 굵은 인상을 새긴 배우 조현철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엉뚱함과 장난스러움을 잃지 않는 ‘수현’ 역을 찰떡같이 소화한다.

김대환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70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베스트 이머징 디텍터상, 제32회 마르델플라타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안았다.

<초행>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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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Merry Christmas Mr. Mo|2017|감독 임대형|출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전여빈

“큰병원에 얼른 가보셔야 돼요.”라는 한마디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내 암 선고를 받은 ‘모금산’(기주봉)의 덤덤한 얼굴을 비춘다. 생의 마지막 카운트다운은 이렇게 갑작스레 시작되고, ‘미스터 모’는 젊은 시절 꿈이었던 영화를 만들려는 일생일대의 계획을 세운다. 영문도 모른 채 그에게 소환된 영화감독 아들 ‘스데반’(오정환)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모두가 ‘도대체 이걸 찍어서 뭐하느냐’ 힐난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의상과 스텝을 모사하는 모금산의 모습은 무척이나 진지하다. 어딘가 촌스럽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슬랩스틱은 그래서 비극적인 상황과 정교하게 맞물리며 감정의 과잉 없이도 마음을 건드리는 힘을 발휘한다.

다섯 개의 장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감독이 사용하는 이미지는 정갈하게 절제되어 있고 위트가 넘치면서도 사랑스럽다. 찰리 채플린의 단편영화를 레퍼런스 삼아 엉뚱하지만 사려 깊고, 담담하지만 경쾌한 화법과 스타일을 101분의 러닝타임에 오롯이 박았다. 이 속에서 기주봉은 별다른 대사 없이 여러 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슬랩스틱으로 분위기를 주무르며 더할 나위 없는 연기를 펼친다. 연기 40년 차 베테랑 배우의 얼굴과 몸에 배어있는 체념과 달관의 태도는 희극과 비극 사이를 적절히 넘나들며 짠한 감동과 유머를 동시에 선사한다. 여기에 고원희, 전여빈, 오정환 등 독립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예들이 출연해 신선한 에너지를 더한다. 관전 포인트를 하나 더 꼽자면,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독특한 엇박의 정서와 멜랑콜리한 감흥을 자아내는 사운드트랙이다. 명불허전 인디 신 최고의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체 음악을 직접 만들고 연주했다.

단편 <만일의 세계>(2014)로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은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돼 넷팩상을 안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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