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러스트레이터 겸 타투이스트 슈니따(Shunita). 그는 여행지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일러스트를 그린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는 곳이지만 그곳에도 분명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슈니따는 그들의 삶을 그리기도 하고, 골목 골목마다 담긴 예쁜 풍경을 소소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타투 역시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슈니따는 여행자의 몸에 새긴 타투 한 조각이 여행자와 함께 여행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타투이스트 슈니따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여행의 한 조각'이라는 뜻을 담았다.

감성적인 드로잉으로 인정받는 슈니따, 그가 영화를 보고 색감을 떠올렸다. 슈니따가 떠올린 색은 ‘빨강’. 그렇지만 그 빨강은 영화마다 다른 채도와 명도를 지녔다. 그가 어떤 영화에서 무슨 색을 떠올렸는지 들어보자.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도 무척 아름답다.

 

Shunita Says,

“<시인의 사랑> <로맨틱 홀리데이> <우리는 사랑일까>. 이 영화 세 편에서 각기 다른 빨강을 떠올렸다. 이 영화들은 모두 사랑의 근본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을 알고, 또 잃는 모습을 그린다. 이 세 편의 영화에서는 모두 사랑의 원초성을 의미하는 빨간색이 잘 느껴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가장 순수하게 사랑한다. 만나서 기쁘고 헤어져서 슬퍼한다. 그러나 세상에 정확히 똑같은 색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 속 사랑도 조금씩 다른 색을 띤다. 세 편의 영화에서 느낀 사랑의 농도를 내가 느낀 대로 표현해보았다.”

 

#채도가 낮고 분홍에 가까운 빨강
가장 순수하고 풋풋한, <시인의 사랑>

아내는 시인에게 말한다. "처절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냐."
시인은 말한다. "야, 너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진상 떠는 게 그렇게 좋냐?"
이 대화에서 느껴지듯, 시인은 결혼은 했지만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시인은 우연히 들른 도넛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소년을 만난다. 사랑을 몰랐던 시인이지만 소년을 통해 사랑을 알아간다. 시인은 소년을 만나 시를 알고 사랑을 안다.
<시인의 사랑>을 보면서 나는 첫사랑이 무엇인지 보았고 느꼈다. 조금은 미성숙하고 서툰 사랑. 이제 막 붉은 기가 올라오는, 발그레한 두 볼처럼 핑크에 가까운 빨강. <시인의 사랑>을 보고 떠오른 색이다.

 

#명도와 채도가 적당한 빨강
클래식과 사랑은 영원하다,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의 상처를 가진 여자 주인공 아이리스와 아만다는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긴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고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변한 사랑 때문에 아파했던 그들이지만, 새로운 사랑은 소리도 없이 찾아온다.
<로맨틱 홀리데이> 속 사랑에는 어떠한 연애의 기술도 없다. 단지 그들의 솔직한 말과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사랑법을 구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눈에 그 사랑은 어떠한 요령도 섞이지 않아 순수한, 그냥 빨강이었다.

 

 

#바랜 느낌의 빨강
오래되어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사랑,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 속 남편은 아내에게 아주 짓궂은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그중 하나는 아내가 샤워할 때마다 찬물을 끼얹는 것. 매일 계속되던 이 장난은, 아내가 떠나가는 날 끝난다. 남편은 "그냥 나중에 늙으면, 수십 년 동안 내가 매일 이 짓을 했다고 고백하려 했어."라고 읊조린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과 결혼 생활은 결말을 맞는다. 죽을 때까지 평생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지만, 남편의 "가."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아내는 새로운 사랑을 향해 떠난다. 빨갛던 그들의 사랑에서 붉은 기가 다 빠져버렸다. 힘없는 색, 빨강이 사라진 사랑에 남은 건 이별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빨간빛이 바랜 사랑도, 원래는 아주 붉게 빛나던 사랑이었다고.

 

그림 슈니따

 

Writer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남미 생활에서 얻은 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주제로 일러스트 여행 콘텐츠제작, 독립출판, 벽화 그리고 라이브 페인팅 작업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라이브 페인팅, 작은 동네 미술관을 여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끔 여행그림책을 만드는 수업을 한다. 올해부터는 타투 작업도 시작해 여행자를 위한 타투를 작업 중이다.
슈니따 인스타그램(일러스트레이터) 
슈니따 인스타그램(타투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