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가 스며 있을까? 원고의 오류를 찾고 고치는 사람, 작가 옆에서 끊임없이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 적확한 말을 찾아 헤매는 사람까지. 책 읽는 건 잠시 접어두고 책 만들며 웃고 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자.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가 일순 찡해지는 것들로 골랐다. 일본 콘텐츠 특유의 과한 표현이나 장면이 없지 않지만, 가끔 만화 같은 영상도 힘이 될 때가 있지 않은가.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地味にスゴイ! 校閲ガール・河野悦子 | 2016 | 연출 사토 토야 | 출연 이시하라 사토미, 스다 마사키, 혼다 츠바사, 에구치 노리코, 아오키 무네타카 | 원작 미야기 아야코, 소설 <교열걸>

아주 어린 시절부터 패션 잡지 에디터를 꿈꾼 ‘코노 에츠코’(이시하라 사토미). 우여곡절 끝에 패션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배치된 부서는 교열부다. 생각지 못한 시련에도, 그는 부서 이동의 날을 기약하며 들이닥치는 교열일을 성실히 해낸다. 그를 비롯한 교열부 사람들은 보통 독자들이 크게 개의치 않을 부분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의 오류를 점검하고 개연성을 확인하는 교열부의 모습을 보면 너무 과장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어쩔 수 없이 뭉클해진다. 그들은 교열을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전력을 다해 도와주는 일’이라 표현한다. 타인을 전력으로 돕는 일을 사명으로 삼은 자의 마음이 더욱 귀하다. 덧붙여 개성 강한 교열부 팀원들의 속사정을 알아가거나,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주인공의 화려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큰 매력.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스틸컷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눈앞에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해내야 한다. 그것이 자칫하면 평범하게 반복될 일상을 의미 있고 소중한 나날로 바꿔주는 방법이란 것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었다.”

“꿈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현재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수수하지만 굉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중에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명장면

 

<중쇄를 찍자!>

重版出来! | 2016 | 연출 도이 노부히로 | 출연 쿠로키 하루, 오다기리 죠, 사카구치 켄타로, 마츠시게 유타카, 야스다 켄 | 원작 마츠다 나오코, 만화 <중쇄를 찍자!>

유도 유망주였던 주인공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 부상으로 더는 유도를 하기 힘들게 된 그는 만화 매거진 편집부로 취직한다.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밀고 당기기나 마감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중쇄를 찍자!>의 미덕은 모든 인물을 두루 살핀다는 데 있다. 저마다 이야기를 가진 편집부원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여줄 때, 편집부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영업부 스토리도 따뜻하게 비출 때, 독자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서점 직원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 이 드라마가 얼마나 사려 깊은지 알게 된다. 특히 많이 회자된 에피소드는 만화가의 어시스턴트 이야기. 오랜 세월 노력했지만 빛 보지 못한 자의 이야기를 덤덤한 듯 다사롭게 풀어낸다.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로 잘 알려진 쿠로키 하루의 새로운 얼굴과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독한 주인공 마츠시게 유타카의 다채로운 표정을 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중쇄를 찍자!> 스틸컷

“믿어주지 않는 게 슬픈 게 아니다.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그리고 비참해서…… 사실은 내가 가장 믿고 싶다. 나의 힘을. 꿈을 향해 올라갈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생각해라! 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일을 해라. 항상 자신에게 물어봐라. 내 일이라고 가슴 펴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지.”

- 드라마 <중쇄를 찍자!> 중에서

<중쇄를 찍자> 중 한 장면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 2014 | 감독 이시이 유야 | 출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죠, 쿠로키 하루, 와타나베 미사코, 코바야시 카오루 | 원작 미우라 시온, 소설 <배를 엮다>
일본 개봉 포스터와 한국 개봉 포스터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설명해보라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겨우 생각해서 답한대도 방향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영화 <행복한 사전>의 주인공 ‘마지메 미츠야’(마츠다 류헤이)는 ‘서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북쪽에 해당하는 쪽’, ‘보수적 사상’이라는 두 가지 뜻을 즉석에서 내놓는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낱말의 의미를 찾고, 숨겨진 말을 찾는다. 찾아서 모으고 정돈한다. 그 노력은 결국 <대도해(大道海)>라는 사전을 만들기 위한 것. 영화는 시종 잔잔하게 흘러간다. 단어를 채집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그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해 절로 집중하게 된다.
<대도해>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년. 그 시간을 꼬박 한 권의 사전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의 의미를 아는 일’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긴 세월을 아낌없이 사전에 쏟는다. 고요하지만 맘을 동하게 하는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2017’ 초청작인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은 <이별까지 7일>을 연출한 이시이 유야 감독 작품.

<행복한 사전> 스틸컷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요.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줄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바로 대도해입니다.”

-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행복한 사전> 메인 예고편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