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 Hop Honors>는 음악 방송사 VH1에서 개최하는 공연 및 시상식이다. 몇 년 전 내 책에 쓴 내용을 인용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더 나아가, 힙합에서는 아예 리스펙트를 정체성으로 삼는 정기적인 행사가 따로 있다. <Hip Hop Honors>가 그것이다. 2004년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말 그대로 명예와 존중을 근간으로 한다. 1년마다 한 번씩 힙합 선구자들의 업적을 리스펙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행사였던 2004년에는 쿨허크, 케이알에스-원, 투팍 등이 리스펙트 대상이 되었고 이듬해인 2005년에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와 아이스-티 등이 이 영예를 안았다. 이 행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선구자들이 직접 보는 앞에서 후대 래퍼들이 선구자들의 노래를 공연한다는 점이다. 후대 래퍼들은 자신이 어릴 적 듣고 자라 영향받은 노래를 무대에서 공연하며 선구자들을 향해 리스펙트를 표하고, 선구자들은 이에 감사로 화답한다.

- 김봉현,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2014)

2017년 <Hip Hop Honors>의 콘셉트는 ‘The 90's Game Changers’다. 이름하여 ‘90년대에 시대를 바꾼 사람들.’ 먼저, 팀버랜드와 함께 힙합 사운드의 흐름을 바꿨음은 물론 여성 래퍼로서 여러 선구적인 행보를 보여준 미씨엘리엇이 오프닝 공연을 담당한다. 그리고 몬텔 조단의 ‘This Is How We Do It’, TLC의 ‘No Scrubs’, 워렌지의 ‘Regulate’, 빅펀의 ‘Still Not A Player’ 등이 ‘Power Party Anthems’라는 이름으로 묶여 무대 위에서 흐른다(퍼포먼스는 타이달러싸인, 팻조, 레미마 등이 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2000년대에 수많은 힙합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여러 본보기를 남긴 하이프윌리암스가 공로상을 받고, 테야나테일러는 무대 중간중간에 투팍과 비기의 히트곡에 맞춰 댄서들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물론 프로디지를 빼놓을 순 없다. 해벅은 세상을 떠난 친구 대신 패볼로스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아, 마틴로렌스 역시 등장한다. 뮤지션은 아니지만 연기자로서 그가 쌓은 업적과 힙합 커뮤니티에 끼친 영향력을 존중한 결과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머라이어 캐리에 대한 리스펙트다. 사실 나에게 머라이어 캐리는 팝 디바로서보다는 힙합친화적인 보컬리스트로 더 강하게 남아있다. 실제로 그녀는 90년대 중후반부터 꾸준히 래퍼들을 자기 노래에 참여시켰다. 올더티바스타드, 퍼프대디, 메이스, 록스, 캠론, 제이지, 웨스트사이드커넥션 등이 그녀의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다.

Mariah Carey ‘Fantasy ft. O.D.B.’ MV
Mariah Carey ‘Honey ft. Mase, The Lox’ MV

또 2000년대 이후 발표한 그녀의 앨범들은 사실 백인 팝이라기보다는 힙합과 흑인음악이 강하게 자리 잡은 팝 앨범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00년대를 대표할 만한 질 좋은 ‘메인스트림 힙합+알앤비 사운드’가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에 쏠쏠히 담겨 있다. 또 머라이어 캐리의 뮤직비디오 리스트는 곧 ‘1990년대~2000년대 미국 힙합의 가장 쿨하고 멋 나는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Hip Hop Honors: The 90'S Game Changers, ‘Mariah Carey & When Hip Hop Went Pop’, 스티비제이를 비롯한 래퍼들이 머라이어 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무대가 시작하기 전 화면으로 나오는 스티비제이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힙합은 언더그라운드였어요. 유명해지기 전이었죠. 그런데 머라이어 캐리가 자기 노래에 올더티바스타드를 참여시켰어요. 그 후 힙합은 어딜 가도 들을 수 있었죠.” 스티비제이 뿐이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인정하는 많은 힙합 아티스트 및 관계자들이 머라이어 캐리에 대한 리스펙트를 표하고 있었다. “당신 덕분에 우리 음악과 문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됐어요.” “당신이 래퍼들과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어요.” “머라이어 캐리가 이 신을 혁신시켰어요.” 그 후 머라이어 캐리의 오래된 인터뷰가 나온다. “사람들은 음악을 자꾸만 나누려고 해요. 이건 흑인음악이야, 저건 백인음악이야 하면서요. 하지만 전 그런 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봐요.”

Hip Hop Honors: The 90'S Game Changers에서 머라이어 캐리, 다 브랫, 저메인 듀프리, 록스, 메이스가 함께 부르는 ‘Honey’ 

머라이어 캐리가 힙합에 대해 깊은 내공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또 힙합을 발전시키기 위한 명확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그런 유의 사명감 따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빌보드어워드도 아니고, 힙합에 대한 순도로만 따지면 따라올 행사가 없을 <Hip Hop Honors>에서 머라이어 캐리를 향해 리스펙트를 표하며 그녀를 힙합의 일원으로 인정했다. 그들은 이제 전성기도 다 지나고 얼마 전 공연 사고도 일으킨 머라이어 캐리를 퇴물 취급하며 무시하는 대신, 그녀의 좋았던 시절과 그녀가 쌓은 공로를 기억하고 재평가하며 지금 세대에게 그것을 알렸다. 이 광경은 나에게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와 박혔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몇 가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몇 가지는 아래와 같다.

1.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우린 10년 후에 그들에게 고마워하게 될까, 아니면 사뭇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될까.

2.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사람/대상에게 고마움과 존중을 표하는 문화 VS.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아닌 척 하고, 오히려 깎아내리고, 잘 되는 사람 끌어내리는 문화

3. 이것은 얼마 전 래퍼 허클베리피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이 글과 더없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어떤 래퍼가 예전에 가졌던 열정과 스킬을 지금은 그렇게 못 보여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에게 리스펙트란 그때와 지금이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은 리스펙트를 안 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이 사람의 어떤 부분을 리스펙트하는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다고 리스펙트를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펙트. 그게 저의 리스펙트예요.”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래퍼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힙합을 하고/살고 있다.
김봉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