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키퍼스 와이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바르샤바 동물원을 배경으로 동물원 원장 얀 자빈스키(요한 헬덴베르허)와 그의 아내 안토니나(제시카 차스테인)가 겪은 실화를 다룬 영화다. <웨일 라이더>(2002)로 알려진 여성 감독 니키 카로가 연출을 맡아, 생사의 갈림길을 잔인하게 양분하는 폭력의 시대를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극복해내고 있다.

<주키퍼스 와이프> 메인 예고편

 

동물과 사람

영화는 줄거리의 주 무대인 바르샤바 동물원과 이곳에서 일하는 자빈스키 부부를 소개하는 데 초반부 시간을 할애한다. 독일군의 폭격 및 점령으로 일찌감치 동물원의 동물들이 대다수 죽임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CG가 아닌 실제 동물들을 촬영해가며 어렵게 이 장면을 포함한 것은,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고 생명은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빈스키 부부의 보편적 자애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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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안토니나와 아기 사자들

다행히 자빈스키 부부와 안면이 있었던 루츠 헤크(다니엘 브륄)가 찾아와 동물원 동물들의 몰살을 방치하느니 희귀동물들을 독일에 빌려달라고 권유함으로써 일부 동물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실존했던 베를린 동물원장이자 나치 유전학자로서 순종 혈통 복원에 두각을 나타낸 루츠 헤크가 이들 곁에 있다는 사실은, 히틀러가 강조했던 아리아인(게르만인)의 우수 혈통과 순수 아리아인 혈통 보존 주장을 연상시키며 이야기의 중요한 갈등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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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동물학자이자 나치 군인인 루츠 헤크는 결국 적일까, 아군일까

 

유대인과 비유대인

독일 총통에 오른 히틀러가 폴란드 등 이웃 국가를 침략해 점령지 안 유대인들을 그들만의 게토(ghetto)로 몰아넣고 이들을 학살하면서 본격적으로 위기가 찾아온다. 생명에 대한 존엄과 자애심으로 가득 찬 자빈스키 부부가 위험에 노출된 자신들의 유대인 친구들은 물론 두 주인공이 생판 모르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자신의 집과 동물원에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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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유대인을 대피시키는 얀

부부는 빈 동물원에 돼지를 키워 나치의 식량으로 제공하고 그 사료를 유대인 게토의 잔반으로 공급받겠다는 명분으로 그곳을 드나들며 유대인을 하나둘씩 구출하였다. 독일군 점령 시기 폴란드에서 유대인 은닉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이웃까지 즉각 사형할 수 있는 중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얀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고 안토니나는 구해낸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당시 반유대주의는 역사적으로 나치만이 아닌 폴란드 내에서도 꽤나 만연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빈스키 부부에게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하는 차별적 폭력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키퍼와 주키퍼스 와이프

실제로 무려 3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놀라운 실화 속 영웅 스토리는 자빈스키 부부 두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이 '주키퍼스 와이프'인 이유는, 앞서 <미친 별 아래 집>(2007)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소설 원작 속에 담겨 있다. '미친 별 아래 집'이라는 명칭은 폴란드에서 활동했던 나치 저항 지하조직 운동원들이 자빈스키 부부의 동물원을 암호화한 이름으로, 이 소설은 안토니나 자빈스키의 일기와 실제 역사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졌기에 특히 안토니나의 시선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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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그러다 보니 영화는 게토와 전쟁터의 잔혹한 참상을 그리기보다 보호하는 동물과 유대인을 대하는 안토니나 자빈스키의 온정 있는 시선과 손길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현대사 최악의 비극 속 살 떨리는 불안과 공포의 시간을 묘사하면서도 <주키퍼스 와이프>의 화면이 시종일관 잔잔하고 따뜻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안토니나 자빈스키 한 사람만인 것은 아니다. 얀 자빈스키는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역사 최대 규모 저항이었던 바르샤바 봉기 등 영화는 무수히 많은 우리 주변의 영웅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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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빈스키 부부만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안토니나가 심한 심신의 상처를 입은 유대인 소녀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적이 누구고 누굴 믿어야 하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고. 그래서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는 동물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때때로 아군과 적군의 피아식별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으로 손쉽게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분법으로 재단하여 공격하거나 그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한다. 허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손쉬운 생존의 길을 뛰어넘는 용기와 사랑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음을 이 영화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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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얀과 안토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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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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