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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제목은 독일어로 ‘Spitzendeckchen’, 컵이나 화분 아래에 놓는 작은 장식용 깔개라는 뜻이다. 공포물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이 단편영화는 영어권 나라에서 <Vienna Waits for You(빈이 당신을 기다린다)>라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장식용 깔개라는 뜻을 지닌 원제는 주인공 안나가 입주하는 아파트의 장식물들을 상징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안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새출발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나온 아파트에 입주한다. 하지만 저렴한 임대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거나 음산한 소리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류의 공포물은 아니나, 본 후에 으스스한 느낌이 밀려오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독일어 영상이며 영문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의 필름 아카데미에 다니던 도미닉 하틀(Dominik Hartl)이 졸업논문으로 2012년 제작한 작품이다. 다수의 단편 영화제에 초청을 받더니 이듬해 상하이 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창문을 탈출하는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조롱하는 대상은 ‘아파트’라는 존재다.

치워도 다시 나타나는 ‘Spitzendeckchen’를 바라보는 안나

관리인의 고백처럼, 이 까칠한 아파트는 혼자 있기를 원치 않으며 새로운 입주자를 구해 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괴물’ 같은 곳이다. 또한 이 괴물은 어떤 형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아파트의 마루, 벽, 가구, 장식물의 집합체다. 안나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젊음’을 빼앗기고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파트에서의 탈출을 포기하고 스스로 그 곳의 일부가 되어 소멸해 간다. 괴이한 분위기의 아파트 내부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을 참고하여 스튜디오 내에 세트를 지었으며, 급속도로 늙어가는 안나의 모습은 특수 분장으로 처리하였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지은 지 수백 년 되었을 법한 호텔이나 주택에 묵을 때가 있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거나 만졌을 법한 복도나 가구, 장식물을 보면 가끔 이 물건들에 생명이 깃든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하여 으스스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