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쓰던 백 년 전, 당시 일반적인 여성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들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남성과 똑같이 투표를 하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만들고,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일들은 사실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일입니다. 하지만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언제나 남성들보다 더 많이 견뎌내고 있습니다.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트리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유리천장을 부숴버린 장면들도 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함께 보시죠.

 

삭발 머리를 한 저항의 아이콘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Sinéad O'Connor. Via El espanol

1992년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 헌정 공연이 열렸습니다. 시네이드 오코너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관객석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이유는 그녀가 2주 전 SNL에서 불렀던 노래 때문인데요. 밥 말리의 ‘War’를 부르며, ‘인종차별(Racism)’이라는 가사를 ‘아동학대(Child abuse)’로 바꿔 불렀습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린 뒤, "진짜 적과 싸우자"라며 퇴장해버렸습니다. 이는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건 은폐 및 각종 인권문제 은폐 의혹에 대한 항의 표시였지만,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인 관객들의 야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야유가 이어지자 그녀는 결국 ‘I Believe in You’의 피아노 전주를 멈추고, 다시 한번 무반주로 ‘War’를 부릅니다.

Sinead O'Connor 'War' (밥 딜런 데뷔 30주년 공연)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는 1966년 12월 8일생으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1987년 데뷔 앨범<The Lion and the Cobra>로 이름을 알렸으며, 1990년 ‘Nothing Compares 2 U’로 빌보드 차트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각종 공연이나 방송 출연, 시상식 등의 출연을 전부 거부했습니다. 이는 전쟁을 용인하는 분위기나, 소수민족에 대한 경시, 반여성적 태도, 또는 극단적인 상업주의 등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는데,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악 퍼포먼스(Best Alternative Music Performance)’ 부문에서 수상했음에도 그래미 어워드의 출연을 거부했습니다. 그녀가 보여줬던 날 선 그 모습은 이전까지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Sinead O'Connor 'War' at SNL

 

살아있는 전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Aretha Franklin. Via Bust

1998년 뉴욕 비컨 극장에 셀렌 디온, 글로리아 에스테판, 아레사 프랭클린, 샤니아 트웨인, 머라이어 캐리, 캐롤 킹 등 당대 최고의 여성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존심 강한 최고의 뮤지션들이 한데 모인 이유는 바로 ‘VH1 Divas’ 공연 때문이었습니다. 백인 남성 위주의 서구 사회에서 ‘VH1 Divas’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이 콘서트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후로도 휘트니 휴스턴, 다이애나 로스, 티나 터너, 스티비 닉스 등 최고의 여성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콘서트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의 존경을 받는 아레사 프랭클린은 그 중심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이들을 이끌었습니다.

Aretha Franklin 'A Natural Woman'(Kennedy Center, 2015)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1942년 3월 25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1961년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 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음악계에서는 솔의 여왕으로 불립니다. 특히 1967년에 녹음된 ‘Respect’는 여성의 당당함을 노래한 곡으로, 인권운동 축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자존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번 받기도 힘든 그래미상을 21차례나 수상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여성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입성했으며, 1991년에 그래미 레전드상(Grammy Legend Award)을 받았습니다. 2008년에는 <롤링 스톤>지에서 선정한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순위 중 엘비스 프레슬리를 밀치고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녀는 여성 아티스트 중 플래티넘 싱글(100만 장 이상)을 가장 많이 만들어냈으며, ‘Amazing Grace’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 앨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전설입니다.

 

그래미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버린 아델(Adel)

2017년 59회 그래미 시상식은 앨범 <25>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아델과 앨범 <Lemonade>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비욘세의 수상 여부로 후보발표 직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결과는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노래 등 주요 3개 부문을 포함, 아델이 5관왕에 올랐고, 비욘세는 뮤직비디오상을 포함한 2개 부문을 차치했습니다. 그래미상을 석권한 후, 수상 소감을 전하던 아델은 비욘세를 향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내며 “올해의 앨범은 레모네이드(<Lemonade>)”라는 말과 함께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버립니다. 그래미상의 권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말 멋진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성과 실력을 겸비한 파급력 있는 아티스트가 모두가 지켜보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한 이 일은 그래서 더욱 각별합니다.

Adele의 그래미 "Album of the Year" 수상소감 (2015)

아델(Adele)은 1988년 5월 5일생으로 잉글랜드의 런던 북부 토트넘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2006년 친구가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데모 영상이 계기가 돼 XL 레코딩스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2008년 1월 발매한 데뷔 앨범 <19>는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큰 상업적 성과를 거뒀습니다. 데뷔앨범은 영국에서 쿼드러플 플래티넘, 미국에서는 더블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2009년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안았습니다. 아델은 2011년 두 번째 정규 앨범 <21>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엄청난 상업적 성과를 거뒀습니다. 2012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해 6관왕에 오르면서 여성 단일 최다부문 그래미를 수상했습니다. 이 외에도 브릿 어워드 2관왕,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3관왕 등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21>은 영국에서 1985년 이후 가장 오래동안 차트 1위에 머문 앨범이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현재까지 2,800만 장 이상을 판매했습니다.

Adele 'Hello'

 

Writer

지큐, 아레나, 더블유, 블링, 맵스 등 패션 매거진 모델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개러지 록밴드 이스턴 사이드킥(Eastern Sidekick)과 포크밴드 스몰오(Small O)를 거쳐 2016년 초 밴드 아도이(ADOY)를 결성, 팀 내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최근 첫 에세이집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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