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의 최고 적기로 꼽는 시기는 11월. 한국은 본격적인 겨울 날씨가 시작되지만 홍콩은 이 무렵 선선해 가벼운 가을 옷차림으로 다니기 좋다. 그리고 12월부터는 세일 기간이 시작되니 쇼핑이 주목적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홍콩 여행 시기는 바로 겨울일 것. 그런데 홍콩 여행객들이 부쩍 늘어나는 이맘때 소개하고 싶은 곳은 쇼핑센터가 아닌, 미술 공간들이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아시아의 허브로 자리 잡은 홍콩에서 예술이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콘텐츠지만, 알고 보면 이곳에서는 세계 현대미술계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와 행사가 끊임없이 개최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세계적인 갤러리가 홍콩에 지점을 오픈해 운영 중이고, 2013년 출범한 아트 바젤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아트페어로 자리 잡았다. 또 미술품 경매의 중심지이기도 하니, 경매 전에 프리뷰 전시를 관람할 기회도 많다.

11월 초, 홍콩을 여행하며 반나절을 투자해 현대미술 갤러리에 찾아갔다. 시내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여러 갤러리가 모여있으니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페더 빌딩 외관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한 곳은 센트럴에 자리한 페더 빌딩(Pedder Building). 1924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이 건물에는 7개의 갤러리가 모여있고 그중에서도 가고시안 갤러리, 펄 램 갤러리, 리만 머핀 갤러리는 대형 아트페어에 빠짐없이 초대되는 영향력 있는 갤러리들이다.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

가고시안 갤러리의 그룹전 작품 설치 전경

페더 빌딩 7층에 자리한 가고시안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며 뉴욕, 런던, 비버리 힐스, 로마, 아테네, 파리, 제네바 등에 갤러리가 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홍콩에 문을 연 것은 2011년. 기획전이나 개인전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그룹전으로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페더 빌딩에 방문했을 때가 바로 그룹전 기간이었다. ‘ARCADIA’라는 제목 아래 앤디 워홀(Andy Warhol), 제프 쿤스(Jeff Koons),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백남준 등의 작품이 한데 모여있어 올스타전이라 할만한 수준. 소속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한 만큼 종종 거장들의 놀라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룹전이 끝난 뒤 11월 23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는 영국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최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개인전이 열리니, 이 기간 홍콩을 여행한다면 가고시안 갤러리에 꼭 방문해볼 것.

가고시안 갤러리 홈페이지 

 

 

펄 램 갤러리(Pearl Lam Galleries)

펄 램 갤러리의 전광영 개인전 작품 설치 전경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한 층만 내려오면 펄 램 갤러리가 자리한다. 1993년부터 갤러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펄 램 대표가 2005년 상하이에 오픈한 갤러리로, 중국에 기반을 두고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에 4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소속 작가들은 아시아 작가뿐 아니라 서구 작가들도 많고, 디자인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펄 램 갤러리에서는 마침 한지를 이용해 작업하는 한국 작가 전광영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본래 전시 기간은 10월 말까지였지만 11월로 연장 전시 중. 이 전시가 끝난 뒤 11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는 중국 작가 조우 양밍(Zhou Yangming)의 개인전이 개최된다.

펄 램 갤러리 홈페이지 

 

 

리만 머핀 갤러리(Lehmann Maupin Gallery)

페더 빌딩 4층에 자리한 리만 머핀 갤러리에 들어서자 파란 공간이 펼쳐진다. 10월 26일 시작한 미국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의 개인전이 12월 30일까지 열리는 중이다. ‘Rise and Fall’이라는 설치 작품이 갤러리 전체를 채우고 있다. 풍경과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답게 장소 특정적인 이번 작품에도 수많은 푸른 선의 오르내림을 통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스의 작품 설치 전경

뉴욕에 기반을 둔 리만 머핀 갤러리는 1996년 레이첼 리만과 데이비드 머핀이 합작해 만들었고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해 알리며 명성을 쌓았다. 현재 홍콩에서 전시 중인 테레시타 페르난데스 외에도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들이 소속돼 있으며 한국의 서도호, 이불 작가를 미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리만 머핀 갤러리 홈페이지 

 

화이트 큐브(White Cube)

페더 빌딩을 벗어났다면 센트럴에 자리한 또 다른 갤러리, 화이트 큐브로 발길을 옮겨볼 것. 페더 빌딩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1993년 영국에서 시작한 화이트 큐브 갤러리는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작품을 주로 전시해왔고 데미언 허스트를 발굴해낸 갤러리로도 유명하다. 2012년 오픈한 홍콩 화이트 큐브에서도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해 소속 작가들인 길버트 앤 조지(Gilbert & George),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등 대형 작가들의 전시를 해왔다.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 가본 이들이라면 들어서자마자 흡사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왕 공신 개인전 작품 설치 전경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중국 작가 왕 공신(Wang Gongxin)의 개인전이 개최 중이었고, 11월 16일 미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개인전이 오픈해 내년 1월 13일까지 계속된다.

화이트 큐브 홈페이지 

 

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

화이트 큐브와 같은 건물의 17층에는 페로탱 갤러리가 자리한다. 에마뉘엘 페로탱이 1990년 설립했고, 파리, 뉴욕, 홍콩, 도쿄에 갤러리가 있으며 2016년 서울에도 진출했다.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를 소개하며 일찌감치 유명해졌다. 홍콩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가들의 개인전이 이어지는데, 11월 17일부터 12월 22일까지 한국작가 김홍석의 개인전이 열리는 중. 다음 전시로는 내년 1월 19일부터 3월 17일까지 일본 조각가 가토 이즈미(Izumi Kato)의 개인전이 개최된다.

페로텡 갤러리 홈페이지 

 

홍콩 아트 센터(Hong Kong Arts Centre)

홍콩 아트 센터에서 전시 중인 후이 와이 컹의 작품 ‘Synchronize @ Rock’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들을 둘러봤다면 완차이 역에서 가까운 홍콩아트센터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갤러리들에서 잘 알려진 거장들의 전시를 볼 수 있다면, 이곳은 그와 사뭇 다른 소박한 분위기. 15층의 복합문화예술 건물로 극장, 갤러리, 스튜디오 등에서 동시대 문화예술 콘텐츠를 소개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추고 홍콩예술계의 창작 산실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가볼 만한 전시공간은 14층의 괴테 갤러리(Goethe Gallery)와 4, 5층의 파오 갤러리(Pao’s Gallery). 홍콩 아트 센터에 방문한 날은 마침 괴테 갤러리에서 ‘Anywhere Out of the World’라는 이름의 새로운 전시가 시작한 날이었다. 독일 예술에서 영향을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 후이 와이 컹(Hui Wai Keung)의 개인전으로, 그는 올해 IFVA 상(Hong Kong Independent Short Film & Video Awards)을 수상한 젊은 작가다. 11월 7일 시작된 이 전시는 12월 2일까지 계속된다.

홍콩 아트 센터 홈페이지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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