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이라 외치는 런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만나보자.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왕실에서부터 어두운 뒷골목 이야기까지, 런던의 다양한 장소와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영화 5편를 소개한다.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 2010 ❘ 감독 톰 후퍼 ❘ 출연 콜린 퍼스, 제프리 러시, 헬레나 본햄 카터, 가이 피어스

“좀 더듬어야 난 줄 알지.” -영화 속 '조지 6세'의 대사 중에서

영국은 입헌군주제, 즉 ‘왕’이 있는 나라다. 왕 혹은 여왕과 왕자와 공주, 궁과 왕실, 귀족이 있는 나라인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왕국’이라는 명칭은 역설적이게도 낭만적인 이름이 되었다. <킹스 스피치>에서 보여지는 런던의 풍경은 낭만적이다. 영화 내내 30년대 런던의 풍경이 회화적인 화면에 설레는 모습으로 담겨 있다.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이 함께 산책하는 런던 리젠트 공원의 애비뉴 가든과 라이오넬의 컨설팅 룸의 장소인 33 Portland Place는 런던의 낭만을 오롯이 담아낸다.

<킹스 스피치>는 헐리우드가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스탭과 배우들이 모였고, 당연하다는 듯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석권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특히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의 연기는 놀라운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폴 베타니를 염두하고 썼다는 조지 6세역이 결국 콜린 퍼스에게 돌아간 것은 이 영화의 행운. 톰 후퍼 감독과 주연배우들은 영화촬영 3주 전부터 리허설을 함께 하며 준비를 했는데, 당시 <싱글맨> 촬영 중이던 콜린 퍼스는 매주 비행기를 타고 참석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다룬 영화의 제작에 반대의 뜻을 밝혔던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영화를 본 후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킹스 스피치>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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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 2007 ❘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 출연 비고 모르텐슨, 나오미 왓츠, 뱅상 카셀, 아민 뮬러-스탈

“한쪽이 받아치지 않으면 싸움은 안돼, 그렇지?” -영화 속 '키릴'의 대사 중에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에서 스토리의 헐리우드식 완결성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폭력성에 기반한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도식적인 스토리를 넘어선 궁극의 지점을 향하기 때문이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전작인 <폭력의 역사>와 함께 크로넨버그 감독의 대표작이자 폭력을 다룬 명작으로 꼽힌다. 일부 평론가는 이 영화를 <대부>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스턴 프라미스>에 담긴 런던의 모습은 관광엽서에 나오는 풍경이 아니다. 세메터리, 할레스덴, 그린위치 등 관광객의 동선을 빗겨난 현지인들의 공간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리얼리티를 살리자면 칙칙해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어둡고, 낡고,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도시 런던을 느낄 수 있다.

<이스턴 프라미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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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

The Prestige ❘ 2006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휴 잭맨,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파이퍼 페라보, 스칼렛 요한슨

“집착은 젊은이의 전유물이지.” -영화 속 '커터'의 대사 중에서

<프레스티지>에는 전기가 개발되고, 영화와 철도, 전화기가 발명되는 등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던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풍경이 담겨 있다. 당시는 과학적 진보에 대한 관심과 마술사 해리 후디니 같은 이들의 인기가 동시에 높아지던 시대다. 마술과 과학이 병존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메멘토>와 <베트맨 비긴즈>, <인셉션>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동명소설을 동생인 조나단 놀란에게 각색을 맡긴다. 조나단 놀란은 <메멘토>의 각본으로 유명하며, 이후 <배트맨 다크나이트>와 TV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를 거쳐 <인터스텔라>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크리스찬 베일, 휴 잭맨, 스칼렛 요한슨, 마이클 케인 등 화려한 캐스팅과 함께 니콜라 테슬라 역을 전설의 록스타 데이빗 보위가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친할아버지가 마술사였던 크리스찬 베일은 조건에 관계없이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직접 놀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프레스티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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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Blow up ❘ 1966 ❘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출연 데이비드 허밍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사라 마일즈, 피터 보울즈, 제인버킨

“나도 뭔지 모르니까 묻지 마.”  -영화 속 '주인공의 친구 화가'의 대사 중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에 담긴 런던은 소위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 불리던 시대의 모습이다. 최초로 젊은이들의 하위문화가 주류가 된 시대로서 모즈룩, 사이키델릭, 히피 패션 등이 등장한 시대이다. 196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의 원제목은 <확대>(Blow-Up)지만 영화 수입업자의 상업적인 이유로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산만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감독은 이야기의 표면이 아닌 심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토니오니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온 작품으로 거론되는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무엇보다 ‘스윙잉 런던’ 시대의 풍경과 패션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주인공 제인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레터스 투 줄리엣>, <어톤먼트> 등)와 제인 버킨(프렌치 시크의 시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영국 장편 영화 최초로 여성 누드 정면샷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이 영화의 중간에 전설의 영국밴드 야스버즈(Yardbirds)의 공연장면이 나온다. 야스버즈는 에릭 크립톤, 지미 페이지, 제프 백 등을 배출한 밴드인데, 이 영화에서는 지미 페이지와 제프 백의 공연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욕망> 예고편

 

<노팅힐>

Notting Hill ❘ 1999 ❘ 감독 로저 미첼 ❘ 출연 줄리아 로버츠, 휴 그랜트, 리처드 맥케이브, 리스 이반스

“나도 그냥 여자예요. 남자의 사랑을 바라는..." -영화 속 '안나'의 대사 중에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제작한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을 쓴 이 영화의 감독은 원래 마이크 뉴엘이였다. 하지만 그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액션영화 <에어 컨트롤>을 선택했고 결국 메가폰은 로저 미첼에게 돌아갔다. 전세계에서 363,889,678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로맨틱 영화의 고전반열에 올랐다. 개봉 당일에는 줄리아 로버츠가 방탄유리가 없는 좌석을 선택하여, 톱스타의 과감함에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다.

왜 하필 노팅힐인지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싱겁지만 노팅힐은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가 살던 곳이다. 가장 잘 아는 장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윌리엄'(휴 그랜트)이 살고 있던 파란 대문의 집이 한때 리처드 커티스 소유였다. 윌리엄의 ‘The Travel Book co’의 모델이 된 ‘Travel Bookshop’도 여전히 노팅힐에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윌리엄'(휴 그랜트)의 친구들과 만난 저녁식사 자리에서 출연료를 묻는 질문에 “천오백만 달러”라고 답하는데, 이는 <노팅힐>에서 실제 줄리아 로버츠가 받은 출연료로 알려져 있다. 각본가와 감독 모두 애나와 윌리엄의 첫번째 후보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를 생각했는데, 두 배우 모두 흔쾌히 수락을 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안나가 윌리엄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사실도 매니아들이 찾아낸 재미난 팁.

<노팅힐>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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