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심이 없을지언정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반 고흐의 생애를 알지 못하거나 작품을 줄줄 읊지 못해도 그의 자화상이나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이 눈에 낯선 사람은 없다. 2017년 11월에 개봉한 <러빙 빈센트>는 지난 20세기를 거치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된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을, 세계 최초로 전 러닝타임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의 혁신에 앞서 반 고흐를 다루었던 지난 작품들의 전통을 둘러보며 그의 삶에 아로새긴 열정을 반추해본다.

<러빙 빈센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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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 | 1956 | 감독 빈센트 미넬리 | 출연 커크 더글러스, 앤서니 퀸, 제임스 도날드, 파멜라 브라운, 에버렛 슬로안

1956년에 발표된 미국영화 <열정의 랩소디>는 고흐의 삶을 전기적으로 풀어낸 어빙 스톤의 베스터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에서 각각 3개 부문 후보와 1개 부문 수상을 이끌어낸 명작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었지만 벨기에 복음선교회 후원의 전교사 자격을 받지 못하고 결국 오지의 탄광지대로 부임했던, 화가로서의 삶 이전 청년기의 반 고흐의 행적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기를 충실히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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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랩소디> 스틸컷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순간에도 그때마다 하고자 하는 일에 순수한 열정으로 매달렸던 반 고흐의 굳건한 모습과 영화 속 반 고흐가 바라보는 풍경이 캔버스 속 우리가 익히 아는 명화의 한 장면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당시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주연 커크 더글러스의 고흐 연기는 프랑스 화가로부터 직접 연기 지도를 받은 결과이며, 영화에 등장한 명화들은 제작자와 미넬리 감독이 반 고흐 작품의 진품 소장가들로부터 촬영을 허락받아 200여 점에 달하는 진품을 카메라에 담아낸 성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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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랩소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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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호>

Van Gogh | 1991 | 감독 모리스 피알라 | 출연 자끄 뒤트롱, 알렉산드라 런던, 엘자 질버스테인, 버나드 르쿠, 제라르 세티

1992년 한국에서 <반 고호>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프랑스 영화는 <열정의 랩소디>와 다르게, 이미 말년에 이른 반 고흐의 67일간의 나날이 2시간 30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 속 마치 관찰자 시점의 풍경화처럼 느린 템포로 그려진다. 영화는 캔버스 위에 파란색 유화를 덧칠하는 반 고흐의 뒷모습에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도착하는 기차에서 힘없이 내리는 반 고흐의 앞모습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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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호> 스틸컷

이 작품에서 자끄 뒤트롱이 연기한 반 고흐의 인상은 오프닝 시퀀스의 인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는 인정받지 못한 채 젊은 날의 열정을 오랜 시간 소진하여 이미 고독의 처연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세상에 대한 불신과 냉소적인 경계심은 더욱 예민하게 다듬어진 상태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지막 남은 작품 혼을 불태우지만 동시에 관계의 파국으로 자기마저 불사르게 되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그와 같은 반 고흐의 치닫는 광기와 마지막을 묘사하면서도 영화는 지극히 차분한 온도와 정제된 어조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원래 프랑스 미술계에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하는 모리스 피알라 감독의 감각을 통해 영화의 풍경은 내내 반 고흐의 치열한 삶과 대조된 선명하고 정갈한 매력을 더해 과한 극적 장치 없이 그 비극성을 더한다.

<반 고호> 트레일러

 

<반 고흐: 위대한 유산>

The Van Gogh Legacy | 2013 | 감독 핌 반 호브 | 출연 바리 아츠마, 예로엔 크라베, 베티 슈어맨, 피파 엘런, 키스 부트, 샌드린 라로체

2013년 국내에 들어온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네덜란드에서 방영했던 4부작 드라마를 편집하여 영화화한 작품으로, 반 고흐의 조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니만큼 네덜란드에서 자라 프랑스에서 죽은 그의 생애 여정과 그가 이 시대와 후손에 남긴 유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 고흐의 일대기와 1950년대 반 고흐의 후손이 그때까지도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던 반 고흐의 유산에 괴로워하며 이를 처분하려고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교차되어 줄거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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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위대한 유산> 스틸컷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가장 젊고 자기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가장 치기 어리게 그려진 <반 고흐: 위대한 유산> 속 반 고흐는, 그래서 더욱 외롭고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특히나 각색 및 삽입된 후손의 이야기를 통해,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기고도 생전 단 하나의 작품만을 팔았던 반 고흐의 과거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너무나도 유명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의 현재가 더욱 현실적으로 대조되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반 고흐: 위대한 유산>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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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고통과 혼란을 부추긴 것은 자기 자신의 열정이었을까, 그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의 무관심이었을까.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과 시대를 꿰뚫는 통속, 그 사이 예술은 어디쯤 위치할까. 흔히 광기로 치부하는 반 고흐의 삶을 더욱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질문들이다. 아직 보지 못한 <러빙 빈센트>의 답변 역시 기대해본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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