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한국인들에게 인기 여행지로 떠오른 곳이라면 1순위로 블라디보스톡을 꼽을 수 있을 것. 공중파 방송에서 매력적인 여행지로 소개한 데 이어 저가항공사까지 취항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이 됐다. 2박 3일이나 3박 4일 일정으로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이 도시는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수식어답게 비행 시간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북한 상공을 지나는 러시아 국적기를 이용하면 2시간, 북한 상공을 지날 수 없어 우회 비행하는 한국 국적기를 이용하면 그보다 30, 40분이 더 걸리는 정도.

항구도시인 블라디보스톡에서 볼거리 많은 명소로 알려진 곳은 금각교나 독수리 전망대, 해양공원, 혁명광장,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지인 기차역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화명소들을 빼놓으면 아쉽다. 본래 러시아는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곳이 아니던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놓치기 아까운 문화 스폿들을 찾아가봤다.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Primorsky Stage of the Mariinsky Theatre)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 외관

세계 주요 극장 중 하나로 꼽히는 마린스키 극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게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마린스키 극장의 분관이 바로 블라디보스톡에 자리한다. 시내 중심가에서 택시를 타고 금각교를 건너자 2013년 지은 눈부신 유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최신 공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 그리고 클래식 음악회가 주로 열린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고 현지 간판이나 안내문에서도 영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지만, 마린스키 극장은 영문 버전 홈페이지를 운영하니 미리 공연일정을 확인하고 예매할 수 있다. 한 달에 20일 이상 다양한 공연을 올리므로 언제 가더라도 방문 일정 중에 한 편 정도 관람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의 ‘호두까기 인형’ 무대

1년의 절반이 겨울이고 10월 중순부터 이미 겨울 바람이 불고 있던 블라디보스톡답게 발레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이 공연 중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12월에 감상할 수 있는 연말 시즌 공연.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의 11월 공연일정도 오페라 <리골레토>, <멕베스>, <토스카>, 발레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풍성하다.

마린스키 극장 홈페이지

 

연해주 필하모니 극장(Primorye Regional Philharmonic Hall)

연해주 필하모니 극장 외관

블라디보스톡의 번화가인 아르바트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연해주 필하모니 극장은 마린스키 극장과 사뭇 다른 모습의 오래된 건물이다. 130년 전 첫 공연을 시작한 만큼 역사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실내 시설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낸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블라디보스톡 재즈 페스티벌’이 매년 11월 이곳에서 개최되고, 클래식 음악회 또한 마린스키 극장보다 더 자주 열린다. 이곳에 방문한 날은 대극장에서 공연이 없어, 대신 소극장에서 노년의 피아니스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관람했다. 공간을 느끼고 지역 출신 예술가가 표현하는 음악적 정서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해주 필하모니 극장 홈페이지

 

연해주 국립 미술관(Primorye State Art Gallery)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자리한 연해주 국립 미술관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미술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곳. 1966년 문을 열어 지난해 50주년을 맞았다.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인 일리야 레핀(Ilya Repin)의 작품이나 흑해를 주로 그린 이반 아이좁스키(Ivan Aivazovsky)의 바다 그림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작품들. 

연해주 국립 미술관 내부 
연해주 국립 미술관에 있는 일리야 레핀의 <Portrait of M.N. Galkin-Vraskoy>(1903)
연해주 국립 미술관에 있는 샤갈의 <Portrait of Brother David with Mandolin >(1914)

미술관을 거닐다 뜻밖에도 샤갈의 작품 한 점을 마주하고 놀라기도 했다. <Portrait of Brother David with Mandolin>은 샤갈이 그의 동생을 그린 것. 그러고 보니 샤갈은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본래 러시아 태생 화가다. 연해주 국립 미술관은 유럽의 대형 미술관들에 비하면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블라디보스톡이기에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으니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둘러볼 만한 곳이다. 건물 맞은 편에는 배우 율 브리너(Yul Brynner)의 생가가 있다.

연해주 국립 미술관 홈페이지

 

러시아 예술인 연합 연해주 갤러리와 아르카 갤러리

러시아 예술인 연합 연해주 갤러리 외관

블라디보스톡에는 유명한 현대미술관은 없지만 동시대에 활약하고 있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전시 공간들이 있다. 국립 연해주 미술관의 바로 옆에 자리한 러시아 예술인 연합 연해주 갤러리는 짧은 주기로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활발히 열리는 곳. 지나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듯 외부에 ‘EXHIBITION’이란 큰 사인보드가 붙어 있다.

러시아 예술인 연합 연해주 갤러리 내부

이곳을 방문했을 땐 마침 새로운 전시 오픈을 위해 한창 작품을 교체하던 날. 곧 떠나는 여행자를 배려해준 덕분에 잠시나마 다음 전시를 미리 감상했고,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바닥에 놓인 그림들을 통해 지역 화가들의 강렬한 화풍을 느낄 수 있었다.

아르카 갤러리 외관
아르카 갤러리가 자리한 골목의 그래피티

블라디보스톡에서 가볼 만한 또 하나의 갤러리는 중심가 뒷골목에 자리한 아르카 갤러리. 금세 둘러볼 수 있는 작은 화랑 규모지만 현지 현대미술계의 분위기를 한 번에 느끼기 좋다.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가야 하니 찾아가는 길이 쉽진 않지만, 그 길에서 골목 사이사이 숨어있는 흥미로운 그래피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러시아 예술인 연합 연해주 갤러리 홈페이지
아르카 갤러리 홈페이지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