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조킹은 은근한 그림을 그린다. 성인을 위한 그림으로 유명해졌지만, 그의 그림에는 단순히 '야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맛이 있다. 민조킹은 선(線)을 다루는 데 능하다. 쓱쓱 그은 선 같은데 신기하게 꿈틀거리며 이야기를 만든다.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에 얼굴이 달아올랐다가 은밀한 상상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 사랑을 했던 사람이라면 민조킹의 그림에서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누구나 맞는 연애의 순간을 꾸미지 않고 그리기 때문에.

민조킹은 독립 출판물 <귀엽고 야하고 쓸데없는 그림책>, <연애고자>에 이어 출판사를 통한 <모두의 연애>까지 세 권의 책을 만들었다. 설레고 달콤할 때, 권태, 폭풍 전야, 뜨거운 순간……. 그의 책에 연애의 모든 표정이 들어 있다.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민조킹은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었다. 좋은 작품을 지치지 않고 그리기 위해서는 쉼이 필수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 그가 정말로 푹 쉬고 싶을 때 보는 음악과 영화를 보내주었다.

 

Minzo.king Says,

작업할 때 한번 집중하면 내리 몇 시간 일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손목에 무리가 생기고 쉽게 지치곤 했다.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1시간 30분 일을 하면 20분은 꼭 쉬기로 나만의 룰을 정했다. 이 20분은 과열된 머리를 식히고, 잠을 깨면서 리프레쉬 하는 시간이다. 따뜻한 차를 세팅하고 거실 소파에 깊숙이 눌러앉아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들을 때, 비로소 온전한 ‘휴식’이 찾아온다.

 

1. PREP ‘Cheapest Flight’

한남동의 어느 조용하고 어두운 술집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제목이 뭔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마침 같이 온 친구가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어쩜 제목까지 완벽한 이 곡에 꽂혀 한동안 매일 들었다. 음악과 함께 버무려진 기억은 어째 진한 잔향으로 남아 오랜 시간 머무는 힘을 가졌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던 날의 분위기 때문인지 저녁 시간 창밖 가로등 불빛을 보며 이 음악을 들으면 그때가 생각나며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2. 영화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1999) 속 'Thomas Newman'의 음악을 배경으로 비닐봉지가 흔들리는 장면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등장하는 영상이다. 관능적인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되었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엔 형언할 수 없는 작은 소용돌이가 가슴속에 일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같이 바람 부는 가을날에는 실제로 길거리에서 비슷한 장면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땐 영화 속 릭키처럼 가던 길을 멈추고 캠코더 대신 내 눈에 담는다. 이 장면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나 의미는 차치하고 불규칙하게, 그러나 어쩐지 규칙적으로 맥없이 춤추듯 흔들리는 비닐봉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에 왠지 모를 평안함이 찾아온다. 계획되지 않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나는 사랑한다.

 

3. 영화<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 Chou)>(2001) O.S.T, Salyu의 'Erotic'

이와이 슌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좋아하는 영화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다. 아주 우울했던 시기에 이 영화를 보았고 긴 여운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우울하고 싶을 땐 새벽에 이 영화를 봤다. 아름다운 사운드와 영상 속, 14살들의 충격적인 방황은 내 사춘기 시절과 겹치며 서글픈 마음마저 들게 했다. 그런데도 주인공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밴드 ‘릴리 슈슈’의 음악을 들으면 나도 자유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암흑을 걷는 듯했던 10대, 뜨겁게 우울했던 20대를 지나 조금 권태롭지만 안정된 30대를 보내는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O.S.T의 모든 곡을 좋아하지만, 특히 1번 트랙 ‘Arabesque’, 3번 트랙 ‘Erotic’, 9번 트랙 ‘Glide’를 좋아한다. 참고로 릴리 슈슈는 영화에서 만들어 낸 가상의 가수이고, 사운드트랙을 실제로 부른 것은 일본의 가수 Salyu이다. 영상은 Salyu가 부른 3번 트랙 ‘Erotic’의 라이브다.

 

4. 영화<멋진 하루>(2008) O.S.T, 푸디토리움 '10:12 AM'

푸디토리움(김정범)이 음악 감독을 맡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로 꽤나 완성도 있는 우리나라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랙의 각 타이틀이 모두 10:12 AM, 이런 식의 시간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인공 희수와 병운이 함께하는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재즈를 좋아하고 즐겨 듣는 우리 부부는 영화를 보며 “와 사운드 죽인다!”를 연발했다. 이 영화는 쓰임새가 아주 다양한데, 쉴 때뿐 아니라 드라이브할 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작업을 할 때는 아예 영화를 틀어 놓기도 한다.

 

5. 영화<도프(Dope)>(2015) 속 엔딩 댄스 장면

개인적으로 흑인 음악에 담긴 특유의 소울과 세련된 비트를 좋아해서 즐겨 듣는다. 90년대 힙합 중 펑키한 곡들을 좋아하는데 이 엔딩 영상 속 음악도 그중 하나다. 영화 <도프>는 흑인 청소년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용을 떠나 이 엔딩 영상은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영상이다. 영상 속 주인공이 디지털 언더그라운드(Digital Underground)의 ‘The Humpty Dance’에 맞춰 추는 춤은 단순하고 코믹하다. 가끔 기분 좋으면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따라하곤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민조킹은?

2014년 독립 출판물 <귀엽고 야하고 쓸데없는 그림책> 출간을 시작으로 회사와 그림을 병행하다 현재는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2016년 <모두의 연애>를 출간, 현재 저스툰(www.justoon.co.kr)에서 웹툰 <쉘 위 카마수트라>를 연재하고 있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쓴다.

민조킹 인스타그램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