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정갈하게 뒤로 빗은 머리를 푹 숙이고 물 흐르듯이 피아노를 치는 빌 에반스(Bill Evans, 1929~1980)를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꼽는다. 그의 독창적 코드는 전통적인 흑인 재즈와 다르며 유럽 클래식의 영향에서도 벗어났다. 이전 음의 주변에서 다음 음을 짚어 나가는 그의 즉흥연주 스타일을, 어떤 이는 “스토리 텔링 주법”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자작곡 ‘Waltz for Debbie’를 들어보자.

Bill Evans 'Waltz for Debbie'

그는 공연 전 리허설을 하지 않는다. 즉흥적인 연주와 멤버 간의 인터플레이(Interplay)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1958년에 녹음한 솔로 ‘Peace Piece’는 사전에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Some Other Time’ 첫 번째 코드를 가져와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이다. 이 곡을 연주하면서 빌 에반스는 아무도 없는 뉴욕 거리를 홀로 걷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한다. 이 곡은 재즈, 클래식, 무용 분야에서 늘 연주되는 스탠다드가 됐고, 영화 삽입곡으로도 자주 쓰였다.

Bill Evans 'Peace Piece'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내성적인 성격을 얼핏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종종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으며 철학책을 즐겨 보는 독서광이었다. 20대 후반 전성기가 시작될 무렵에 시작한 마약은, 건강 악화와 재정 문제로 되돌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슴 아픈 개인사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빌 에반스는 끝내 마약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가 죽은 후, 한 친구가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자살”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의 사망

195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에서 뛰쳐나온 빌 에반스는, 젊은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Scott La Faro)와 그가 소개한 드러머 폴 모티안(Paul Motian)과 함께 처음으로 자신의 트리오를 이끌게 된다. 이들은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최상의 피아노 트리오를 이루어 1961년 두 장의 라이브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와 <Waltz for Debbie>를 출반하는데, 두 장 모두 최고의 재즈 라이브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삽입곡 중 재즈 평론가 테드 조이아(Ted Gioia)가 에반스의 가장 아름다운 연주로 평가한 ‘Alice in Wonderland’를 들어 보자. 

Bill Evans 'Alice in Wonderland'

그러나 두 장의 명반을 녹음하고 불과 열흘 후 스콧 라파로는 뉴욕 인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25살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으로 빌 에반스는 큰 충격에 빠졌고, 4개월 이상 연주를 중단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유령처럼 지낸다. 그는 이때부터 마약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기와 전화가 끊길 정도로 재정적인 궁핍에 시달렸고, 잦은 주사로 인한 통증으로 한 손으로만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랜 연인 엘레인의 지하철 투신자살

▲ 빌 에반스의 연인, 엘레인

빌 에반스에게는 엘레인(Elaine)이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는데, 마치 결혼한 부부와 다름없이 모든 것을 같이 했다. 1963년 둘은 뉴욕을 벗어나 플로리다로 이주하면서 마약을 멀리할 수 있었다. 다만, 에반스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으나 엘레인은 불임이라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1973년 에반스는 LA 레돈도 비치의 연주 여행에서 네네트 자자라(Nenette Zazzara)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새로 생긴 여성에 관한 고백을 들은 엘레인은 이해한다고 그를 안심시키고는, 뉴욕 지하철에 투신하여 자살하고 만다.

에반스의 레퍼토리 중 가장 슬픈 곡 ‘My Foolish Heart’

연인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에반스는 한동안 끊었던 마약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곧 그 해 네네트와 결혼을 하고 남자아이를 가지면서 안정감을 찾는다. 입양한 딸을 포함한 네 가족은 뉴저지에 집을 마련해 한 동안 안정된 생활을 누린다.

친형이자 동료 피아니스트인 해리 에반스의 자살

1979년 해외공연 중이던 빌 에반스는, 정신분열증을 앓던 형의 자살 소식을 듣고 또다시 큰 충격에 빠진다. 두 살 위인 형 해리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였으며,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랄 때부터 서로 의지한 둘도 없는 동반자였다. 에반스의 동료 마크 존슨에 의하면, “해리의 죽음 이후, 그는 연주 의욕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실 그동안 그를 지탱한 것은 음악 자체였다. 돈이 필요해서 연주를 계속하긴 했지만 (중략) 좀처럼 생에 대한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79년 아이오와에서 연주 중인 빌 에반스

친지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바톤 루지에 있는 형의 묘지 옆에 묘자리를 마련하기까지 했다. 형의 자살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평생을 괴롭히던 만성 간염 약을 자진해서 끊었고, 병원에 실려온 지 며칠 뒤인 1980년 9월 15일에 사망했다.

▲ 빌 에반스의 묘석

팻 매스니와 라일 메이즈는 그들의 듀오 앨범 <As Falls Wichita, So Falls Wichita Falls> 녹음 작업을 하다 동경하던 빌 에반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에반스를 추모하여 당시 작업 중이던 곡에 빌 에반스가 사망한 날인 ‘September Fifteenth’라는 곡명을 붙였다. 

​▶ 팻 매스니&라일 메이즈 'September Fifteenth'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