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A’는 프로듀서 그레이(Graye)와 포크 싱어 오요(Oyo)의 프로젝트 음반이자 팀 명이다. 애초 이들은 그레이가 좋아하는 여성의 가슴 사이즈와 오요의 가슴 사이즈가 일치한다는 이유로 가볍게 75A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2014년 발매를 예정했던 첫 음반이 무산되고, 새로운 곡을 작업하는 동안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여성혐오 이슈가 한국사회에서 가시화하면서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적 의미는 점점 풍부해졌고 곳곳에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두 팀원 또한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체감했고, 이에 각자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나누는 과정을 갖게 되면서 이 이름이 적절한지에 관한 고민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고민 끝에 이들은 결정한 프로젝트의 이름을 버리는 대신, 이를 계기로 삼아 프로젝트의 의미를 확장하는 방향을 택했다.

75A ‘Man Ray System’ MV


이들의 음반이 발매된 것은 바로 얼마 전인 2016년 11월의 일이다. 75A는 음반과 함께 진행한 두 개의 다른 프로젝트 결과물도 동시에 내놓았다. 같은 고민에서 출발한 만큼, 각 프로젝트는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독립적이다. 미술가 콜렉티브 ‘파트 타임 스위트(Part-time Suite, 박재영∙이미연)’는 ‘Man Ray System’의 영상 촬영으로 가세하였다. 노래의 제목에 따라 20세기 초의 서구 사진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가 촬영한 흑백사진처럼 초현실주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 속에,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한 다섯 명의 남성과 여성, 새, 고양이, 뱀의 신체 부위와 그 움직임을 담았다. 체모와 깃털, 피부 따위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신체 부분을 확대하여 관성적인 포르노그래피의 파편화-클로즈업 문법을 차용한 영상은, 신체의 부위를 성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거나 신체의 물리적 형태로 성별 정체성을 추측하는 일들이 특정 신체와 성별을 대상화하는 문화와 시각의 문제임을 지적하는 듯이 보인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사진가 박의령이 촬영한 동명의 사진집이다. 사진집 <75A>는 75A가 만든 노래의 가사와 음반 다운로드 코드를 담은 부클릿 역할을 하면서도 독립적인 사진집으로서 음반과 함께 또는 따로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윗옷을 벗은 75명의 여성을 촬영한 이 프로젝트는 마찬가지로 여성의 신체, 시각과 태도의 문제 같은 다양한 고민거리를 남긴다.

사진을 촬영한 박의령은 매거진 피처에디터로, 또 사진가로 문화예술계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인디포스트> 애독자라면 다양한 관심을 배경으로 글을 기고해온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진가로서 박의령은 인디 뮤지션 에레나(Elena, 정우민), 듀오 골든두들(Goldendoodle, 정우민∙박태성) 앨범 커버와 프로필 작업을 했고 젊은 스트레이트 사진가 그룹 ‘리플렉타(Reflecta)’의 멤버로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2015년 ‘제7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정우민을 촬영한 20페이지 분량의 진(Zine) <엘레나(Elena)>를 소규모로 제작·판매하였고, 2016년 대만에서 열린 독립출판물∙아트북페어 ‘Not Big Issue’에는 <Korean Girl>이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근작을 추린 사진 스티커 시트를 내놓았다. 특히 해외의 소규모 자가출판물 시장을 겨냥하여 제작한 <Korean Girl>은 작가가 자신의 지난 작업 중 선별한 작업으로서 붉은 립스틱을 바른 남성 모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잘 차려입은 여성 모델들, 인형이나 옷가지 같은 사물들, 실내외 풍경 등을 소재로 삼은 사진 8컷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속에서 그는 도시 공간의 스쳐 가는 이미지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 내부의 현재적 문화와 취향, 인물들-그중에서도 소녀와 여성 혹은 여성성-에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사진집 <75A>에서 박의령은 그간의 작업으로 선보인 ‘여성성’의 문제, 도시 공간과 젊은이들의 문화 같은 관심사를 집약하고 스트레이트-스냅숏의 방법을 고수하면서 75A 프로젝트 전반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을 함께 드러내 보인다. 사진 프로젝트의 시작은 75A 팀 명에 맞춰 브래지어를 입은 여성들을 촬영하는 기획이었지만, 작가 스스로 밝힌 대로 “예쁜 사람을 예쁘게 찍은 예쁜 사진을 하나 더 늘리는 것보다”, “누군가를 위해 포즈를 짓지 않고”, “예술일까 외설일까 논의도 필요 없는” 여성 75명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장벽이었을 모델 섭외 단계부터 작가는 사진가가 모델을 유상 혹은 무상으로 ‘고용’하는 형식이 아니라 직접 의도를 설명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타인이 정해둔 시선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여성의 선택과 주체성에 중점을 둔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지인뿐 아니라 작업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자원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의상과 메이크업, 촬영장소, 포즈 등을 거의 전적으로 모델의 의지에 따랐다. 이에 따라 흔히 ’스트리트 포토’라 불리는 특성이 개입되었다. 모델 개인의 사적 취향과 그가 위치한 장소의 특성이 부각된 것이다. 더불어 작가가 사용한 카메라는 ‘코니카(Konica)’ 사의 ‘빅미니(Big Mini)’ 시리즈 301 모델로, 스냅숏과 스트리트 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 작가 히로믹스가 사용한 시리즈(히로믹스는 201 모델을 사용)이기도 하다. 히로믹스가 1995년 캐논 공모전 수상 당시 밝혔듯, “실패할 확률이 낮은 자동카메라”의 대표적 모델로, 당시로써는 렌즈 밝기가 환한 편(f 3.5)으로 셔터스피드가 빨라 순간포착에 능하고, 피사체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졌다. 요즈음 흔히 접할 수 있는 보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찍히는 모델의 입장에서 언제나 달갑지만은 않은 자동카메라다. 박의령은 자동카메라 플래시 조명 이외 별도의 인공조명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따라서 시간대에 따라 사진의 질감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스트레이트 포토의 특성을 가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사진집을 출간한 지금, 이제는 얼마간의 의구심을 규명할 차례가 왔다. ‘몰카’ 범죄가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웃옷을 벗는다는 것이 어떤 차별성을 더 가질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75A>는 간명하고 직관적으로 답한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에로티시즘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분위기, 성적 존재이기에 이미 가지고 태어난 섹시함으로. 이들은 오히려 되묻는다. 시선의 객체로서의 여성이라는 규정을 누가 만들어왔는가를. 모델들은 물론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출판을 염두에 둔 사진집에 기꺼이 모델로 선 이들이라면, 자신들이 어떤 의지로 참여했건 사진집이 어떻게 사용될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꺼이, 보란 듯 카메라 앞에 서기를 택함으로써 자발적 선택의 관점으로 기존 시선의 방향을 역행시킨다.

75명의 여성은 사진가가 포즈와 표정에 관해 특정한 요구나 지시를 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웃지 않는다. 옅은 미소의 흔적이나 카메라를 노려보는 시선들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적인 제스처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익숙지 않아 쑥스러워하건, 프로페셔널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건 상관없이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이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여성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자발적으로 상냥하지 않고, 애교를 떨지 않고, 자신이 시민사회의 어엿한 일원임을 당당하게 긍정함으로써. 속옷 차림으로 도시 곳곳을 점유한 이 여성들을 촬영한 스트레이트 사진들은, 결과적으로 지난여름 뜨거웠던 분노의 열기가 묻어난 도큐먼트로서도 유의미한 작업이 되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잡아들 무렵, 우연히 스친 박의령 작가와 프로젝트에 관해 간략한 이야기를 나눴다. 짧은 대화의 끝에 그가 던진 질문을 생각한다. 당신이라면 이 촬영에 응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대화의 상대자만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 사진집과 75명의 무명 여성 A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당신이 답할 차례다.

영기획 인스타그램
박의령 인스타그램
75A 프로젝트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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