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동쪽 끝에 접하는 섬 ‘우도’는 예부터 땅이 척박하고 바람이 거세어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웠다. 이곳 여자들은 예닐곱 살부터 바다에 뛰어들어 가족의 생계를 잇는 해녀들이 되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희영 감독은 시사 프로그램 작가와 프로듀서로 20년간 활동하다, 2008년부터 강하고 진취적인 해녀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7년간 우도 해녀들과 교류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촬영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면 욕을 하고 심지어 돌을 던지는 분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작팀은 2년에 걸쳐 해녀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열고 설득한 끝에 비로소 그들의 일상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물숨>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해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예컨대 이들이 바다에 들어가기에 앞서 물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도록 치약을 바르거나, 씹던 껌으로 귀를 막는 등 오랜 물질 끝에 터득한 노하우. 누군가 장비를 깜빡하고 챙겨오지 않으면 그가 되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는 엄격한 규칙. 수압을 이기기 위해 ‘뇌선’이라는 두통약을 먹고, 속이 부대끼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 점심을 거르며 8시간 물질을 하는 모습. 미역에 발이 감겨 죽은 딸이 있는 바다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들어가는 중군 김정하 할머니의 사연이나, 보리빵을 좋아하던 고창선 할머니를 바다에 묻게 된 사연 등은 척박한 해녀의 삶 자체다. 갖춰 입은 건 잠수복과 물갈퀴, 허리에 두른 7~8kg의 납덩이(연철)이고 도구는 낫과 태왁, 망사리가 전부다. 그럴싸한 잠수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몸을 맡기는 모습은 이들이 삶의 터전인 바다를 어떻게 품고 지켜왔는지 알려준다.

"바다에 가면 물숨을 조심해라.
만약 숨이 다 돼서 물 밖으로 나오다가 전복이 보여도, 눈을 꼭 감고 그냥 나와라."

해녀들은 살기 위해 찾아 들어간 바다가 무덤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들은 하루에 600~700번 정도 자맥질을 반복하면서 상어 떼,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해초와 문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배를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무엇보다 경계하는 것은 욕심이다. 영화 제목인 ‘물숨’은 해녀들이 해산물을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평소보다 오래 숨을 참다가 실신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일종의 과호흡 상태다. 평생 물질을 해온 해녀들도 종종 좋은 해산물을 발견하면 숨을 참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숨을 참는 길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바뀔 수 없다. ‘숨’은 해녀들을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으로 나누고 바다의 깊이, 수확하는 해산물의 양과 질, 수입을 결정짓는다. 해녀들은 언제나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자신의 숨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숨을 안다. 여유 있게 숨을 남겨 두어야 작업을 오래 할 수 있음도 안다.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욕심 없이, 바다가 내어주는 것들을 품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영화는 우도의 봄에서 시작해 다시 찾아온 봄으로 끝난다.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해녀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순환과도 같다. 이들은 봄에 바다의 보석이라 불리는 천초를 따고, 여름에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겨울에는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뛰어든다. 감독은 수중 촬영과 지상 촬영을 50:50 비율로 구성하여 바다와 뭍,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일 넘나들며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는 해녀들의 현실을 극대화했다. 특히 항공촬영이 담아낸 아름다운 풍광은 마치 구름 위에서 제주를 바라보는 듯 환상적인 미장센을 선사한다. 또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를 쓴 송지나 작가의 탄탄한 각본과 재일 한국인 2세 피아니스트 양방언 음악 감독의 오케스트라 선율은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두 배로 전한다.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되고 싶어. 바다가 좋아.”

평생을 바다와 함께해온 해녀들이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되고 싶다.” 한다. 이들은 바다에서 어머니를 잃고 딸을 잃었음에도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멀리서 숨비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출렁해지고 저절로 눈이 빛난다. 이들이 직업적 소명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해녀'는 어쩌면 가장 낮은 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일궈온 여인들이 아닐까. 우리는 다큐멘터리 <물숨>을 통해, 어머니의 삶, 여자의 삶, 해녀들의 삶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Behind Story
감독은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2015년 <물숨: 해녀의 삶과 숨>(나남 출판사)이란 책으로 발간했다. <물숨>은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과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받았다. 국내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유럽 배급사 ‘퍼스트 핸드 필름’과 배급 계약을 맺고 국제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6년에는 ‘제1회 런던아시아영화제’와 ‘제11회 런던한국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어 제주 해녀를 세계 관객들에게 알렸다. 한때 2만 명이 넘던 해녀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어 현재 4,400명이 남았다. 영화의 배경이자 해녀의 발원지 우도에는 360명의 해녀가 산다. 제주 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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