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집에서 ‘도안 사전’ 혹은 ‘약화 사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쳐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꽃, 나무, 건물, 사람의 동작 같은 다양한 주제의 삽화를 손쉽게 찾아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전 컨셉으로, 대부분 일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아마 이것을 복사해 인쇄물을 꾸미거나, 편지에 그려 넣을 삽화에 참고하기 위해 구입했을 것이다. 지금은 구글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참고할 이미지들을 찾고, 간단히 원본을 저장할 수 있으며 또 그것들을 변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저 시절 책은 손으로 그렸음이 역력하고 조악한 품질의 이미지들로 빼곡한 반면, 동화책을 보는 것만큼이나 우리를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었다.

어느 시대건 복고적인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온갖 출판과 인쇄 기술이 정점에 달한 지금 ‘복고풍’에 몰두하고 ‘아날로그’, ‘어쿠스틱’ 같은 형용사에 더욱 빠져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것을 (과거로부터) ‘찾아낸다’는 말은 아귀가 맞지 않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핀터레스트, 텀블러, 인스타그램 등의 각종 태그는 우리를 더 ‘새로운 옛날’로 데려간다. 일러스트레이션과 서체 디자인, 이것을 결합한 상업 광고 디자인까지 오래된 것을 모으는 사람들에게 오늘 소개할 인물은 일본 최초의 직업적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히스이(杉浦 非水, 1876-1965, #sugiurahisui #hisuisugiura)다.

 

1901년, 동경미술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하던 스기우라 히스이는 평소 교분을 쌓고 있었던 구로다 세이키(黑田 淸輝, 1866-1924, 한국 화가 고희동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근대 서양화가)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가져온 팸플릿과 카탈로그, 잡지와 사진 따위를 얻는다. 그중에서도 아르누보(Art Nouveau) 작가인 체코 출신의 알폰스 무하(Alfons Maria Mucha, 1860-1939)의 작품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이 스기우라 히스이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서양식 표현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전부터 사생화에 익숙했던 점과 일본화 및 목판의 전통적인 윤곽선과 아르누보 장르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은 그가 서양화풍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아르누보가 서양에서 ‘쟈포니즘(Japonisme)’ 즉, ‘일본 취미’와 밀접했으며 그중에서도 우키요에의 평면적이고 선적인 요소들을 차용했음은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쓰코시 포목전 봄의 최신 무늬 진열회> 포스터(1914)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얻은 것은 현재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전신인 미쓰코시 포목점에서 1908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다. 당시 미쓰코시의 상업 포스터와 잡지 <미쓰코시 타임스>, <미쓰코시>지 표지를 작업하였는데, 특히 1914년에 제작한 미쓰코시백화점 포스터 <미쓰코시 포목전 봄의 최신 무늬 진열회>가 가장 유명하다. 이 포스터는 일종의 미인도인데,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세기 후반 일본의 도시 문화와 출판, 인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민간 화단에서 널리 유행한 일본적인 주제다. 당대의 미인상뿐 아니라 최신 유행의 풍속, 즉 머리 모양과 옷차림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볼 수 있는 이 포스터는 아르누보 풍을 따라 평면적이고 장식적으로 제작했다. 이후 작가의 이름을 따 이런 아르데코식 디자인의 유행은 ‘히스이식,’ ‘히스이풍’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스기우라 히스이가 ‘히스이식’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은 사실상 평면 ‘도안(圖案)’, 말하자면 평면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그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는 의의를 갖는다. 일본화라는 전통적이고 중심적인 화단과 비교하면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던 디자인이 창조적인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1912년에는 당시까지 제작한 디자인을 모아 일본 최초로 인쇄물 디자인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15년에는 <히스이 도안집 제1권>을 펴내며 디자인이 어엿한 창작 활동임을 사회적으로 각인했다.

 

1920년대의 그룹활동은 일본 상업미술운동의 창시를 이루었다고도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스기우라 히스이는 현재 무사시노(武藏野)미술대학의 전신인 제국미술학교 설립(1929년) 당시 공예도안과 초대 학과장으로 부임하고, 후에는 타마(多摩)미술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한다. 이후 미래파와 바우하우스, 다다이즘 같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인쇄디자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일본에서도 현대적인 디자이너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데 교육적인 공헌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 여파가 있었다. 1910년대의 한국 인쇄물에서도 일본의 아르누보 유행의 영향이 보이는 예가 있고, 한국 최초의 디자이너로 일컬어지는 임숙재(1899~1937)와 이순석(1905~1986) 또한 동경미술학교 유학 시절 그 영향을 받았다고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유독 아르누보 작가들의 전시가 자주 열리고, 심지어 도쿄 근처에는 대규모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 1862~1945)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일본화와 우키요에라는 전통과의 접점 때문도 있겠지만, 1920년대의 유행과 당대 ‘히스이식’ 이미지들의 영향도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아르누보 붐은 여전히 일본 디자인의 유산으로 남아 현재를 구성한다. 아름답고 장식적인 디테일과 화려한 구성에 눈이 가는 것은 1910년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도안 사전을 펼쳐 패턴화된 나뭇잎과 장식적인 꽃들을, 양감 없이 그려진 납작한 신체들을 황홀하게 구경하듯이 해시태그를 누르고 검색 엔진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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