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를 겸비한 배우, 가차 없는 딴지와 독설을 날리는 코미디언, 장르를 불문하고 상식과 관습을 조롱하며 세계를 사로잡은 영화감독. 1947년생, 올해로 일흔인 기타노 다케시는 그 밖에도 스포츠 해설가, 작가, 화가 같은 다양한 직함을 가진 일본의 대표 문화예술가다.

기타노 다케시는 1980년대를 풍미한 스탠드업 개그의 일인자로 활동하다 첫 연출작 <그 남자, 흉폭하다>(1989)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하나비>(1997)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일본영화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본인의 영화 외에도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배틀로얄>(2000),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2005), 웨인왕 감독의 <여자가 잠들때>(2016)에서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루퍼트 샌더스의 할리우드 실사판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 출연하며 아시아를 넘어 헐리우드로 발을 뻗었다. 2015년 10월 25일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TV 드라마와 예능에 출연하며 특유의 수다와 유머로 인기를 끈다. 동시에 영화에서는 한없이 과묵하고 독특한 리듬을 새겨 넣으며 비속과 고귀함, 추악과 숭고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작품을 만든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미학을 ‘폭력’과 ‘순수’로 구분하여 각각 두 편씩 꼽았다. 아래 영화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보자.

(*)내외국인 막론하고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 전반에 걸쳐 공로가 인정되는 인물에게 수여되는 훈장.

 

#기타노 타케시 폭력의 미학

 

1. <소나티네>

Sonachine│1993│출연 기타노 다케시, 와타나베 테츠, 카츠무라 마사노부 

중간 보스인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를 포함한 야쿠자 일당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갔다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은둔한다.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무라카와는 부하들과 종이인형 놀이를 하거나 해변에서 푹죽놀이를 하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한편, 야쿠자들의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면서 어느 날 낚시꾼으로 위장한 킬러가 오키나와 해변으로 찾아오는데. <그 남자 흉폭하다>(1989), <하나비>(1999)와 더불어 ‘야쿠자 3부작’으로 불리는, 기타노 다케시의 네 번째 연출작. 영화는 야쿠자들의 생활을 유머러스하게 담으면서도 폭력을 담담하게 묘사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기타노 다케시는 <소나티네>로 1993년 칸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았고 같은 해 이탈리아 타오르미나국제영화제에서 골든 카리브디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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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토이치>

座頭市: Zatoichi│2003│출연 기타노 다케시, 아사노 타다노부, 나츠카와 유이 

도박과 마사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맹인 방랑자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는 남루한 행색과 달리 뛰어난 검술 능력을 가졌다. 어느날 그는 민심이 흉흉한 어느 마을의 도박장에서 게이샤 자매를 만난다. 이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분을 위장한 채 주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원수의 대상인 ‘긴조’(키시베 이토쿠)는 마을에 군림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떠돌이 무사인 ‘하토리’(아사노 타다노부)를 고용하기에 이르는데. 인물들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그린 <자토이치>는 본래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TV 시리즈다. 탄탄한 각본을 가진 원작은 다케시 특유의 폭력 미학과 만나 짜릿한 쾌감을 동반한다. 비장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농부와 목수들의 노동 장면은 뮤지컬 공연처럼 리드미컬하다. 배우가 모두 나와 나막신을 신고 신나게 탭댄스를 추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 제60회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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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순수의 미학

 

1.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A Scene At The Sea│1991│출연 마키 쿠로우코, 오시마 히로코, 테라지마 스스무

청소부 일을 하는 청각장애인 ‘시게루’(마키 쿠로우코)는 우연히 버려진 서핑보드를 줍는다. 끝이 부러진 보드에 스티로폼과 테이프를 덧붙여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바다로 나가는 시게루. 그의 옆에는 청각장애인 여자친구 ‘다카코’(오시마 히로코)가 함께한다. 서툰 방법으로 혼자 서핑을 연습하던 시게루는 새 보드를 사면서 서핑에 몰두하고, 서핑팀의 권유로 첫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카코보다 먼저 바다로 나갔던 시게루는 보이지 않고 그의 보드만 비에 젖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폭력적인 요소가 일절 나오지 않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가장 정적인 영화. 몸짓과 표정만으로 의사소통 하는 인물들의 모습,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만나 더욱 깊은 여운을 전한다.

▲ 히사이시 조 ‘silen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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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쿠지로의 여름>

Summer Of Kikujiro | 1999 | 출연 기타노 다케시, 세키구치 유스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9살 소년 ‘마사오’(세키구치 유스케)는 여름방학을 맞아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용돈을 모아 집을 나선다.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된 이웃집 아줌마(기시모토 가요코)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비트 다케시)를 동행하게 한다. 엉뚱한 행동만을 일삼는 52세 철없는 아저씨와 걱정 많은 9세 소년이 함께 떠난 여행길을 그린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채 시작한 둘만의 여행은 시간이 갈수록 잔잔한 공명을 일으키고, 마침내 어른으로서 성숙을 맞이한 기쿠지로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한다.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최우수 음악상(히사이시 조), 제21회 요코하마영화제에서 일본 영화 베스트 10편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경쾌한 선율로 영화의 분위기를 함축하는 히사이시 조의 ‘Summer’는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참고로 '기쿠지로'는 기타노 다케시의 아버지 이름이다.

▲히사이시 조 ‘Summer’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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