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물론 치맥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이전에도 닭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치맥이 보편화하고 강력한 소구력을 확보하게 되면서, 치킨과 맥주의 조합이 갖는 영향력 또한 상상 이상으로 커져 버렸다. “치킨은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요. 살은 당신이 찝니다”와 같은 재기발랄한 문구야말로 치킨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여실히 보여준다. 맛있는 치킨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근사한 몸매나 ‘어제 시작한 다이어트’ 정도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우리의 결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맥주를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음식이 어디 치킨뿐이겠는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태동기를 벗어나 점차 성숙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맛있는 맥주뿐만 아니라 이에 걸맞은 훌륭한 음식에 대한 관심 또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치킨도 좋지만 치킨에 잠시 평온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맥주를 반드시 음식과 먹어야 한다면?
맥주 푸드 페어링의 기본

와인이나 여타 주류와 마찬가지로 맥주의 경우에도 곁들이고자 하는 음식과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스프링롤이나 샐러드처럼 비교적 가벼운 느낌의 음식이라면 필스너(Pilsner)나 쾰시(Kölsch)처럼 산뜻한 기운이 감도는 맥주와 훌륭한 짝을 이룬다. 한편 로스트비프나 바베큐 혹은 칠리 같이 풍부한 맛이 강조되는 음식이라면 스타우트(Stout)나 포터(Porter) 또는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 이하 ‘IPA’)처럼 강렬하고 단단한 풍미의 맥주가 더욱 근사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반면, 간이 그리 과하지 않은 생선구이를 더블 IPA나 복(Bock)같이 아로마가 강렬한 맥주와 함께 먹을 경우, 맥주의 풍부한 풍미에 생선의 맛이 모두 묻혀버릴 수도 있다. 또한 맵고 짠 맛이 도드라진 우리나라 음식의 경우 일반적으로 많이 마시는 페일 라거(Pale Lager)보다는 산뜻하면서도 풍부한 향을 즐기기에 적합한 벨지안 위트(Belgian Wit)나 세종(Saison) 같은 맥주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맥주 푸드 페어링의 세계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아래 두 곳부터 주목해보자.

 

조용한 동네에서 조용하지 않게
채드앤제이 크래프트 키친(Chad & J Craft Kitchen)

출처 - 채드앤제이 인스타그램

서울 지하철 3호선 백석역은 일산에 위치한 다섯 개의 역들 가운데 서울과 가장 가깝다. 대개 역세권에서 만날 법한 복잡한 상업시설을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타나는데, 채드앤제이 크래프트 키친은 이러한 주거지역 한복판에 불현듯 자리 잡고 있다. 일단 가게의 위치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곳은 맥주를 담당하는 비어마스터 채드와 음식을 담당하는 요리사 제이가 의기투합해 지난해 문을 열었다.

한때 같은 밴드의 구성원으로 음악적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이후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맛있는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함께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에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그 모험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 - 채드앤제이 제공

대략 열 종류 안팎으로 구성되는 맥주 라인업은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맥주의 수급 상황이나 고객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함께 준비하는 요리와의 조화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라 한다. 예를 들어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가 중심에 서게 되면, 이와 가장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IPA를 선별해 제공하는 식이다. 또한 제철 생선에 따라 계절마다 달라지는 ‘물고기 요리’에 대해서도 최적의 맥주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는데, 필스너 우르켈도 그러한 시도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비어마스터와 셰프가 각자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최적의 앙상블을 찾고자 애쓰고 있는데, 비교적 튼실한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주방을 총괄하고 있는 제이는 프랑스 요리를 통해 수련과정을 거치고 실무경험을 쌓은 바 있는데, 최근 일식과 프랑스 코스요리에 강점을 지닌 두 명의 요리사를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조용한 주택가 모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미심장한 도전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듯하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2동 1430-1
전화 031-906-5999
영업시간 18:00~02:00, 월 휴무

 

세련되지만 어렵지 않은 푸드 페어링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Spring Valley Brewery)

이미지 -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제공

최고급 브랜드 상점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 그리고 개성 넘치는 음식점들이 주택가 곳곳에 포진한 도쿄의 명소 다이칸야마! 봄과 가을에는 따스한 햇볕을 즐기며 정처 없이 걷기에 제격인 이곳 다이칸야마에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가 등장한 것은 2년 전 2015년의 일이다. 양조시설과 펍, 레스토랑을 하나로 결합한 일종의 브루펍(brewpub)인 스프링 밸리는 일본의 대형 맥주회사 기린(Kirin)이 설립한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다.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라는 다소 로맨틱한 이름은 19세기 후반 미국인 사업가 윌리엄 코플랜드(William Copeland)가 요코하마에 설립한 일본 최초의 근대적 맥주 양조장에서 빌려왔는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일본 내수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맥주 회사인 기린으로 성장하였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실험적이고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는 한편,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충족시키고자 애쓰는 거대 맥주 회사의 기특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미지 -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 제공

통계자료의 뒷받침은 없지만, 스프링 밸리의 주요 고객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매장 인테리어부터 메뉴 구성까지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더 선호한다고 알려진 특징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잠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와서 조용히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일어서는 ‘엄마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맥주 페어링 세트’의 경우 각기 다른 성격의 맥주에 어울리는 간단한 음식을 짝지어 보여줌으로써 맥주 푸드 페어링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눈이 번쩍 뜨이고, 콧구멍에서 거친 숨이 새어 나올 정도의 충격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맥주와 음식이 빚어내는 하모니의 단면을 소소하게 느끼기에 스프링 밸리는 부족함이 없다.

주소 도쿄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초 13-1
전화 +81 (0)3–6416-4975
영업시간 08:00~24:00, 일요일은 22:00까지

 

좋은 맥주는 그 자체로서 황홀하다. 또한,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서 훌륭하다. 그렇다면 좋은 맥주와 맛있는 음식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만난다면 그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즐거움일 것임에 틀림없다. 도전하고, 시도하고, 그리고 감동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

 

Writer

번역과 잡다한 글쓰기를 취미이자 밥벌이로 삼고 있다. 맥주 입문서 <맥주 맛도 모르면서> 출간 후, 맥주판 언저리를 맴돌며 강연과 원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안호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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