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리스톨에 뱅크시가 있다면 이태리 볼로냐에는 블루(BLU)라는 예명의 거리 화가가 있다. 그 역시 야밤에 그래피티 벽화를 남기고 사라진다. 블루도 거리 화가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졌고 때때로 다른 화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블루와 다른 거리 화가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서로 신경쓴다. 그는 처음 활동을 시작한 1999년에는 고향인 볼로냐에 스프레이 벽화를 그리고는 사라졌지만, 갈수록 대범하게 벽화 사이즈를 키우기 시작했고 해외의 유명한 도시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제는 벽화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온라인에 올리기도 한다. 2010년 그가 고향인 볼로냐 거리와 건물을 배경으로 제작한 동영상 <Big Bang Big Boom>을 감상해보자. 러닝타임 10분의 짧은 영상이지만 생명의 탄생과 종말을 잘 담아냈다.

블루의 그래피티 애니메이션 <Big Bang Big Boom>

블루는 특별히 고안한 롤러를 이용해 대형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008년과 2009년에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버그(Kreuzberg) 지역의 대형건물 벽에 그린 두 점의 벽화는, 2014년 시 정부의 도심개발 사업에 불만을 가진 세력에 의해 검은 페인트를 덮어쓸 때까지 베를린을 찾는 사람들이 들르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블루는 벽화를 그리는 전 과정을 고정 카메라로 담아 온라인에 남겼다. 크레인에 올라 1천 평방미터의 벽면을 좌우 상하로 오가며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직접 감상해보자.

<BLU in Berlin>(2008. 11)

2000년대 중반, 블루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거리 화가들과 협업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갔다. 중남미의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과테말라, 온두라스, 브라질에 그림을 남겼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의 ‘Art in the Street’ 행사에 초청 받아 미술관 외벽에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때 그린 벽화는 짙은 정치적 메시지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그 다음 날 바로 지워져버렸다. 유럽에서도 비엔나, 세르비아, 폴란드, 프라하, 런던, 베를린, 밀라노, 바르셀로나 곳곳을 누비며 벽화를 남겼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외벽에 그렸다가 바로 지워진 문제의 벽화

블루는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에 무료로 올려놓아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수입은 블로그 또는 몇몇 갤러리에서 판매되는 그림이 전부라고 알려진다. 공공장소에 그리는 벽화의 특성상 훼손되기도 하고 그 위에 다른 벽화가 그려지기도 해서 그의 작품은 오랜 기간 보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에서 스케치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촬영된 그래피티 애니메이션 <MU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