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해외에는 1990년대 개봉한 영화 <킹핀>과 <위대한 레보스키>, 2012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볼링>이 있고 국내에는 유지태가 주연을 맡은 <스플릿>(2016)이 거의 유일하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볼링은, 그래서 영화 속에 담겼을 때 어둡고 거친 지하세계의 이미지로 자주 각색된다. 그럼에도 시원하게 흘러가는 볼링판과 경쾌하게 터지는 스트라이크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릿하다. 아스트랄한 유머 감각과 각 캐릭터의 괴짜 같은 매력이 버무려진 볼링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킹 핀>

Kingpinㅣ1996ㅣ감독 피터 패럴리ㅣ출연 우디 해럴슨, 랜디 퀘이드, 바네사 엔젤

한때 잘나가는 프로 볼링 선수였지만 거액의 내기 볼링 때문에 왼손을 잃고 갈고리 모양의 의수를 얻게 된 ‘로이’(우디 해럴슨). 사고가 있고 16년 뒤, 방세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한 중년의 로이는 볼링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순진한 아미쉬 교도 ‘이쉬마엘’(랜디 퀘이드)을 만난다. 그를 대단한 볼링 실력자로 착각한 로이는 이 만남을 꿈에 그리던 볼링 레인으로 복귀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온갖 사기 볼링을 계획하고 다닌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백만 달러를 건 볼링 시합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쉬마엘의 예기치 못한 손 부상 때문에 결국 로이가 의수를 낀 채 선수로 출전한다. 예전에 자신의 왼손을 불구로 만들었던 ‘빅 어니’(빌 머레이)와의 재대결. 불쌍한 로이는 시합의 최종 승자 타이틀을 챙겨갈 수 있을까.

볼링에서 킹핀은 삼각형으로 배열된 10개의 볼링핀 중, 정 가운데 위치한 핀을 가리킨다. 보통 가운데로 굴려 1번 핀을 노리면 스트라이크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핀을 모조리 쓰러트리려면 1번이 아니라 숨겨진 5번, 킹핀을 노려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핵심적 기능을 하는 킹핀을 제목으로 만든 이 영화는 <덤 앤 더머>(1994),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1998) 등의 흥행작을 남긴 파렐리 형제의 작품이다. 영화 주제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볼링이라는 스포츠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걸쭉하게 풀어낸 코미디로, 시원하게 흘러가는 볼링판과 경쾌하게 터지는 스트라이크 소리만 들어도 속이 뻥 뚫린다. 여기에 우디 해럴슨과 랜디 퀘이드, 빌 머레이 등 제 몫을 다 하는 배우들이 전형적인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113분의 러닝 타임 내내 한 시도 뻔하지 않고 빈틈없이 꽉꽉 채워 유쾌하다.

 

<위대한 레보스키>

The Big Lebowskiㅣ1998ㅣ감독 조엔 코엘ㅣ출연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주인공의 이름은 ‘제프리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 본명보다는 ‘짜샤(Dude)’로 불리길 원한다. 특별한 직업은 없고 딱히 인생의 목표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볼링장에서 시간이나 축내고 살아간다. 어느 날 그의 집에 강도가 침입한다. 백수인 제프리 레보스키를 동명의 백만장자로 오해한 괴한들이 거실 카펫에 실례를 하면서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카펫값을 받아내겠다며 백만장자 레보스키를 찾아간 백수 레보스키. 이 사건으로 인해 레보스키는 백만장자의 딸, 사라진 아내 그리고 괴한들 사이 얽히고설킨 음모와 계략의 구렁텅이에 서서히 빠져든다.

<위대한 레보스키>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지켜내는 위대한 바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과 그의 단짝 친구들은 인생 대부분을 볼링장에서 낭비하지만, 정작 볼링은 이 영화 속 주요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타고난 이야기꾼 코엔 형제의 얽히고설킨 시나리오 속 인물들 사이에서, 볼링이라는 장치는 의도 파악이 불가능한 채로 온갖 장면에 삽입되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질 뿐이다.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필립 호프만 등 명배우들의 앙상블을 감상하는 즐거움 또한 보장되어 있다. 사회를 향한 냉소와 유머, 허무주의와 유희 정신이 함께 녹아 있는 코언 형제의 수작. “쉽게 인생을 사는 레보스키는 건재했습니다.”라는 마지막 대사가 이 모든 것을 함축한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볼링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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