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희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일상에 가깝다. 가을 오면 손이 가는 머플러, 감기기운 돌 때 찾아 마시는 유자차처럼 자연스럽다. 모난 데 없는 선, 차분한 색감의 그림인데 마음이 동한다. 그는 우리 모두를 스쳐 간 순간들을 그린다. 특별할 일 없는 삶에도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 민경희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진실이다.

민경희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그림이든 글이든 좋다고 했다. 올해 여름 민경희의 책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이 출간되었다. 책에는 그를 오늘까지 데려온 시간과 사람, 그리고 여러 날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위로하기 위하여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그 사람의 편을 들었고 때로는 굳이 위로가 아니더라도 말을 배설한다는 것 자체에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말을 시작하려면 일단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기.
그 상황들을 간단하게 알려주기.
그리곤 나의 억울함들을 토로하기.

이어 상대방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나에 대해 부족하지 않은 애정.
들어줄 시간.
그리고 나의 편을 들어줄 에너지.

- 민경희,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2017) 가운데

 

민경희는 늘 사유하며 살고자 한다. 사유(思惟)는 그저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일컫지 않는다. 사유는 정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동적인 단어다. 사유를 위해서는 의식을 부러 깨워야 한다. 생각을 더 깊고 넓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사유다. 민경희는 치열한 사유가 자신을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볼 때마다 새로워서 그를 사유하게 하는 영상을 소개한다.  

Min Kyung Hee Says,

“누군가에게 사인하는 일이 조금 늘어났습니다. 마지막에는 어떤 말이라도 붙여야 할 텐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누구누구 님 사유하며 살아요’라고 마무리 짓곤 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뭘 하며 살자고 권유하는 자체가 사실은 ‘네가 뭔데?’라는 반문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주는 고마운 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조그마한 애정표현의 방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적어봅니다. ‘사유하며 살아가자’고.

어릴 적부터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끊임없이 이해하려 했고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판단을 했고요. 이것들은 나다운 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취향을 만들어준다든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게 해주었죠.

이 영상들은 내 방에 숨겨 놓은 보물 상자 같은 느낌의 영상들입니다. 여운이 가시지 않아 보물 상자에 넣어두고 자주 꺼내어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애정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라고.”

 

1. 2013년 제67회 토니상 시상식 뮤지컬 〈Matilda the Musical〉 중 ‘Naughty’, ‘Revolting’, ‘When I Grow Up’ 메들리

 “삶이 불공평한 걸 알았다고 그게 그저 웃으며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항상 꾹 참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보잘것없는 것들, 보잘것없다는 말 같은 게 널 멈추게 하지 마. 너도 그렇게 말하게 될지도 몰라, 그것도 괜찮은 거 같다고. 그건 옳지 않아.”

이 영상을 애정 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공감되기 때문이겠지. 어른이 되는 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고 그것은 불공평함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알았다고 해서 그저 그렇게만 살아가는 것이 어른일까 라는 반문도 해보았다. 여기 이 영상에 그에 대한 해답이 있다. 자신의 말을 들리게 하려면 때로는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이었다.

 

2. Jacob Collier ‘Close To You’

언젠가 어느 펍에서 이 영상을 보고 반했다. 그래서 찾아본 결과 이 청년은 1994년에 태어나 그래미 상까지 받은 어마어마한 영국인이었다. 22살에 대부분의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할까, 타고난 사람일까.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음악과 영상 자체도 잘 만들어서 자주 손이 가는 영상 중 하나다. 아, 9월 27일에 첫 한국 내한을 한다고 해서 표를 샀다. 무척 기대된다. 이 인터뷰가 나올 즈음 다녀왔을 텐데, 그땐 제이콥 콜리어에게 더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3. 영화감독 봉준호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 영화창작 과정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거두절미하고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그분을 아직은 만날 수 없으니 영상으로 목마름을 채우는 수밖에. 그중 시네필이 시네필에게 하는 조언과 영화를 사랑하는 봉준호 감독의 모습이 모두 나오는 영상을 찾았다. 영화 창작을 두렵게 하는 것들이 왜 두려운 건지 이유를 알려주는 영상이다. 영화 창작자뿐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또, 내가 애정 하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 본인의 입으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와 당시 했던 생각들을 말해주는데 어찌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4. 영화 <피나(Pina)>(2011) 속 ‘O Leaozinho’에 맞춰 춤추는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피나(Pina)>(2011)에서 독일의 무용수 Lutz Förster(루츠 프르슈터)가 Caetano Veloso(카에타노 벨로조) 의 음악인 ‘O Leaozinho’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움직임이라는 건 무엇일까, 손이라는 것은, 표정이라는 것은……. 짧은 영상에 내가 사모하는 것들이 모두 모여 있다.

 

5. 단편영화 <9월이 지나면>(2013)

단편영화 <9월이 지나면>

고형동 감독의 작품이다. 풋풋한 시절의 배우 임지연과 조현철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지연이 나카야마 미호의 포즈를 따라 했을 때 승조의 표정이라든가, 승조가 지연에게 그린데이(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불러 주었을 때 지그시 감은 눈을 뜨던 지연의 시선이라든가. 불편한 구조 없이 매력적인 이 영화는 지금 이 시기에 보면 딱 좋을 것 같다. 

“9월은 항상 좀 힘들더라고.”
“지금도요?”
“아니 지금은 그냥 그래.”

<9월이 지나면>(2013) 중에서

  

작가 민경희는?

민경희는 경험과 대화들로부터 시작된 관계들을 끊임없이 사유하는 작가다. 이를 글로 풀어내거나 간결하고 차분한 색감을 이용하여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일러스트로 구성해내기도 한다. 최근에 출판한 책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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